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를 강행한 여파에 미국 뉴욕 주식시장이 추가 조정을 받았다. 엔비디아와 알파벳 등 최근 낙폭이 컸던 종목이 반등하면서 시장을 지켰지만, 장 마감 1시간 사이에 상승분을 반납하는 등 투자자들의 혼란이 이어졌다.
현지시간 4일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서 S&P500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71.57포인트, 1.22% 내린 5,778.15로 5800선을 내줬다. 장중 반등을 시도하던 나스닥은 65.03포인트, 0.35% 하락한 1만 8,285.16으로 밀렸다. 나스닥 지수는 올해들어 5% 하락, S&P500은 1.54% 하락하는 등 신흥국 지수에 비해 부진을 이어가고 있다. 금융주와 유통, 제조업체 주가가 줄줄이 밀리면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도 670.25포인트, 1.55% 하락한 4만 2,520.99에 거래를 마감했다.
시장의 위기감이 짙어지면서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국제금가격은 트로이온스당 0.88% 오른 2,926.60달러까지 치솟았다. 관세 여파로 인한 경기 둔화 우려로 미 달러화 인덱스는 런던 ICE선물 시장에서 1.13% 내린 105.54까지 하락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날 자정을 기해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 25%, 중국은 기존 10%에 더해 10%의 추가 관세를 발효했다. 국가경제 위기 상황에 적용하는 '긴급경제권한법'에 따른 조치다. 미국 세금 정책센터 조사에 따르면 이번 관세로 인해 미국 내 가구의 내년 평균 지출액이 930달러 가량 늘어날 것으로 나타났다.
멕시코를 경유해 수입하는 자동차를 비롯해 전자 제품과 의료기기 부품, 각종 농산물 가격이 줄줄이 인상될 전망이다. 이날 실적을 발표한 미국 3위 유통업체 타겟의 브라이언 코넬 최고경영자는 콘퍼런스콜에서 "며칠 내로 과일과 채소값이 상승할 것"이라며 가격 인상을 예고했고, 전자제품 유통 전문사인 베스트바이의 코리 베리 최고경영자도 "공급업체들이 관세 부담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이번 관세 발표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많은 캐나다인들이 분노하고 있다"며 "미국은 캐나다와는 무역 전쟁을 하는 와중에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달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도 "일방적인 결정"이라며 "오는 일요일에 보복 관세 조치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하워드 루트닉 상무장관이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를 일부 완화할 가능성을 일부 시사하는 등 시장엔 혼재된 정보들이 쏟아졌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 동부시간 기준 밤 9시(한국시간 오전 11시) 취임 이후 처음 미 의회 연설에 나설 예정이다. 이날 연설은 무역 정책 변화에 대한 추가 입장과 약 4조 달러에 달하는 감세 정책 추진, 연방정부 공무원 감원 등 정부효율성위원회(DOGE) 정책에 대한 입장이 담길 전망이다. 또한 지난달 28일 언쟁을 벌인 뒤 군사 지원을 중단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입장과 NATO 유지 등에 대한 발언이 나올 가능성에도 시장은 주목하고 있다.

월스트리트는 이번 관세안이 아무런 협상 진전 소식없이 강행된 것에 대해 크게 당황하는 분위기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찰스 슈왑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식시장을 자신의 점수판으로 여긴다는 월가의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BTIG는 현재 S&P500 지수의 하락폭이 커지면서 5,800선이 무너진 뒤 추가 하락 여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 대선에서 승리한 뒤에 랠리를 펼쳐온 배경은 그의 강경한 정책에도 시장에 우호적일 것이란 가정에 근거한 것이다. 바클레이스는 그러나 이른바 '트럼프 풋'으로 불리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단기간 기대하기 어렵다며 회의론을 제기하고 있다.
시장의 비관론이 팽배하지만 대형 기술기업 가운데 최근 하락이 깊었던 엔비디아와 구글은 저가 매수가 유입되며 소폭 상승했다. 엔비디아는 전 거래일보다 1.69% 오른 115.9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번스타인의 스테이시 라스곤 애널리스트는 "시장 심리가 다소 약하지만 엔비디아 GPU에 대한 지출 수요는 강하고, 신제품 사이클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달 중순 GTC 콘퍼런스를 앞둔 기대감이 유효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엔비디아의 12개월 주가수익비율은 25배로 최근 10년내 최저 수준"이라며 과거 밸류에이션을 감안하면 저평가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날 2.34% 오른 알파벳 역시 최근 증시 하락으로 12개월 주가수익비율이 17배 수준까지 밀리는 등 S&P500 평균을 밑돌고 있다.
반면 테슬라는 이날도 4% 이상 추가 하락을 보여 270달러선 초반에 거래됐다. 테슬라는 중국 승용차협회 집계에서 상하이 공장 출하량이 전년대비 49% 감소하는 등 연초 차량 판매 부진이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존 머피 애널리스트는 캐나다와 멕시코 관세에 공급망 충격이 우려된다며 테슬라의 목표가를 종전보다 110달러 내린 380달러로 제시하고 있다. 바클레이스의 댄 레비 애널리스트도 공장 업그레이드로 인한 생산 중단 여파 등이 더해져 1분기 실적이 부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관세 충격에 제너럴모터스와 스텔란티스가 4% 넘게 내렸고, 금융주 대표 종목인 JP모건체이스는 3.98%, SPDR S&P 지역은행 상장지수펀드가 3.5% 내리는 등 미국의 경기 둔화에 대한 공포도 커지고 있다. 유통 기업들도 소비 여력 둔화와 매출 감소 공포에 베스트바이가 13%, 타겟은 3% 내렸고, 경기방어주 역할을 해온 통신주 등도 5% 가까이 내리는 등 시장 전반의 매도 충격이 이어졌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