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중국에 대한 관세 유예 결정으로 급등한 미국 증시가 반도체 규제 완화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대규모 투자 결정으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현지시간 13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S&P500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0.72% 오른 5,886.55로 연초 이후 관세 충격으로 입었던 손실을 모두 만회했다. 대형 기술기업들이 강세를 이어가며 나스닥 종합지수는 1.61% 뛴 1만 9,010.08로 거래를 마쳤다. 다우존스 산업평균 지수는 구성 종목 가운데 가장 영향이 큰 유나이티드헬스 그룹의 주가 폭락 여파에 0.64% 하락한 4만 2,140.43으로 장을 마감했다.
● 트럼프-빈 살만 회담, 6천억 달러 규모 투자 약속
트럼프 대통령과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MBS)의 미-사우디 투자 포럼은 두 지도자 간의 깊은 친분을 과시하는 자리였다. 첫 해외 순방지로 일찌감치 사우디를 선택했던 트럼프는 이날 주요 협정과 연설을 마친 뒤 "아주 좋은 날"이라고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렸다. 회담 내내 친근함을 드러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우디 투자 포럼 연설 중 빈 살만 왕세자를 직접 가리키며 “우리는 서로를 매우 좋아한다고 진심으로 믿는다”고 말하는 등 시종 여유를 보였다.
이번 사우디 투자 포럼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오픈AI의 샘 올트만 등을 비롯해 팔란티어의 알렉스 카프, 블랙록의 래리 핑크, 블랙스톤 회장인 스티븐 슈워츠먼, 시티그룹, 프랭클린 템플턴 등 월가와 실리콘밸리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국방장비·서비스에 1,420억 달러, GE 터빈 등 에너지 장비 142억 달러, 보잉 여객기 48억 달러 구매 등 구체적인 계약을 공개했다. 구글, 오라클, 세일즈포스, AMD, 사우디 데이터볼트(DataVolt) 등도 대거 투자 약속을 받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의 황금시대가 우리와 함께 도래할 것"이라고 연설했다. 그는 빈살만의 요청에 따라 시리아 제재를 전면 해제한다고 깜짝 발표하며 "위대해질 기회를 주기 위해"라고 설명해 중동 관계 회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미·사우디 투자 포럼 중 시리아에 대한 모든 제재 중단을 발표했다. 트럼프는 "위대해질 기회를 주기 위해 시리아에 대한 제재를 모두 해제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시리아의 외무장관과 이번 주 후반에 만나 양국간 협력을 논의할 예정이다. 트럼프의 이러한 결정은 미국과 중동 지역 국가들과의 관계 안정의 시험 무대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첫 임기 중 성사시킨 '아브라함 협정'(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 관계 정상화)의 확대할 계획에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우디를 중심으로 주변국가들과 협력, 외교적 해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반도체 관련 규제도 철회..엔비디아 강세
엔비디아와 AMD는 사우디아라비아 인공지능 업체 휴메인에서 진행하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부품을 공급한다. 엔비디아는 향후 5년간 최신 GB300 그레이스 블랙웰 프로세서 수만 대와 인피니밴드 네트워킹 솔루션을 공급할 예정이며 AMD도 100억 달러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이날 반도체 업계는 사우디 투자를 이끌어 내기 위한 미 상무부의 규제 철회로 인한 수혜도 받았다. 미 상무부는 바이든 행정부 당시 도입한 'AI 확산 규칙'을 공식 철회하고, 각 나라별 수출 범위를 재조정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이러한 규제 완화를 환영하며 "미국이 차세대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쥐고 양질의 일자리와 인프라를 창출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이러한 소식에 엔비디아 주가는 5.63% 상승했으며, 브로드컴 4.89%, AMD 4.01%, 마이크론은 5.03% 뛰었다. 여객기 구매 계약에 보잉은 2.46%, 방위 사업 등 협력 기대로 팔란티어가 8% 넘게 올랐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주목한 인플레이션 지표도 진전을 보였다. 지난 4월 한 달간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0.2% 올라 시장 예상보다 낮았고, 전년 대비 2.3%로 2021년 2월 이후 가장 낮은 상승폭을 기록했다. 관세로 인한 상품 가격 인상은 제한됐고, 달걀 가격이 한 달간 12% 넘게 내렸고, 휘발유 가격이 하락한 영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경제 지표 이후 트루스소셜에서 “인플레이션은 없으며, 가솔린, 에너지, 식료품 및 거의 모든 것의 가격이 하락했다”며 연준(Fed)의 제롬 파월 의장이 너무 느리게 움직인다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 S&P500 목표치 다시 높인 기관들…6천선 돌파 촉각
이런 가운데 월가 주요 기관과 분석가들은 미국 증시 매수가 되살아나는 점에 주목해 연말 지수 목표치를 잇따라 상향 조정했다. 골드만 삭스의 데이비드 코스틴 전략가는 올해 말 S&P 500 지수 목표치를 기존 5,900에서 6,100으로 높였다. 코스틴 전략가는 "관세율 인하, 개선된 경제 성장, 경기 침체 리스크 축소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월가에서 대표적인 강세론자로 꼽히는 야데니 리서치의 에드 야데니는 S&P 500지수가 연말께 6,500선에 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당초 관세 영향 등을 고려해 7천선이던 목표치를 낮췄으나, 미국과 중국의 지난 주말 무역 협상을 반영해 재조정한 수치다. 야데니는 미국의 침체 가능성도 35%가 아닌 25%로 하향 조정했다.
시장이 랠리를 이어가지만 경계론도 나오고 있다. 블랙록 최고경영자인 래리 핑크 회장은 이날 사우디 리야드에서 "미국의 머니마켓 펀드에 11조 달러가 묶여 있는데, 불확실성이 있을 때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현금으로 보유하려 한다”며 관세 유예 결정에도 불구하고 남은 90일간 시장이 큰 변동을 보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사 피치 레이팅스도 미국·중국의 90일 관세 유예 합의가 무역 정상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평가했다. 피치는 실효관세는 지난해 2%대에서 현재 13%수준으로 높아졌다면서 “지속성있는 합의가 없어 관세율의 불확실성이 거시경제 전망에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의 랠리 속에 S&P 500 지수에 편입 결정을 받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하루 만에 24% 폭등했다. S&P글로벌은 다음 주 거래부터 코인베이스를 지수에 정식 편입하게 된다. 500개 주요 기업을 담은 S&P500 지수는 주요 운용기관의 벤치마크로 편입 종목에 대한 자금 유입을 크게 일으키는 기회가 된다.
이에 반해 미국 최대 보험사인 유나이티드헬스 그룹은 앤드루 위티 최고경영자가 개인 사정을 이유로 자진 사임하고, 연간 실적 가이던스를 철회한 발표로 폭락했다.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은 메디케어 어드밴티지 신규 가입자의 실제 의료비가 예상보다 높다고 보고 이같이 결정했다. 지난해 말 자회사 최고경영자에 대한 총격 범행과 미 정부의 약값 인하 등 여러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발표로 미국 정부의 보험 정책에 영향을 받는 CVS헬스, 휴매나, 시그나 등이 6~9% 동반 급락했다.
대형 기술주들이 랠리를 펼친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는 3%의 감원 소식을 소화하며 약보합에 그쳤다. 테슬라는 4.93%로 이틀째 강세를 이어갔고, 전날 8% 가까이 올랐던 메타는 이날도 2.6% 강세를 기록했다. 중국발 우려를 딛고 운동화 판매에서 호실적을 보인 온 홀딩스도 11.8% 강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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