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하반기 들어서는 연례행사처럼 증권사별로 주가 수정 전망치를 발표한다. 주가 예측의 가장 큰 목적인 시장의 안정과 투자자들의 안내판 역할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는 나중에 평가될 일이지만 한국 증권사들의 주가 예측은 국제금융시장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상위 1에 속하는 부자들조차도 보는 눈이 곱지 않다.
가장 많이 비판하는 점은 한국 증권사의 주가 예측은 시장 흐름에 너무 민감하다는 점을 꼽는다. 다른 금융변수와 마찬가지로 주가도 선제적으로 예측해야 본래의 목적인 시장안정과 투자자들에게 안내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한국 증권사처럼 시장흐름을 쫓아 대증적 혹은 사후적으로 예측할 경우 오히려 시장과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실물경제 지표와 다른 금융변수와 달리 주가 예측이 아무리 전문가들의 감(感)('정성적 예측'이라 부른다)을 중시하더라도 시장이 조금만 변할 때마다 수정 전망치를 그것도 추세마저 바꾼다면 한국 증권사들이 내부적으로 주가를 예측하는 기법이나 모델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 증권사 가운데 자체적으로 주가예측모델을 개발해 놓은 증권사가 몇이나 되나? 외국인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 중의 하나다.
경제성장률과 같은 실물통계도 아닌데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주가를 예측하는 것도 놀라고 있다. 다른 변수와 달리 주가는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수치를 들어 예측할 수 없고 설령 맞았더라도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 외국인들의 시각이다. 우리 내부에서도 같은 지적이 많다. 주가 수준 전망보다 투자전략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추세전환 예측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권고한다.
군집성 주가 예측 관행도 한국 증시에서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 고질적인 악습이라 보고 있다. 군집성 주가 예측이란 직전 연도에 주가 예측을 잘한 사람의 시각으로 다음 연도에 주가 예측이 쏠리는 현상으로 특히 한국 증시에서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맞으면 모두 맞고 틀리면 모두 틀리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이런 예측 관행은 예측자가 자신감이 없거나 후에 책임을 면하기 위해 자주 사용한다.
이런 관행은 주가 예측에서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한국에서 경제성장률을 전망하는 기관은 40개가 넘지만 대부분 한국은행이 제시한 전망치에 상하 0.5% 범위에 몰려있다. 극단적으로 한국에서 성장률을 예측하는 기관은 한국은행밖에 없다고 국제금융시장에서 자주 지적을 받아 왔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밖에 주가 예측에 대해 결과 중시형 평가도 한국 증시발전에 저해요인으로 꼽고 있다. 투자자들의 이익을 목표로 하는 증권사의 속성상 이런 평가는 이해되지만 코로나 직후처럼 주가가 상승할 때 낙관론자만 일방적으로 평가받고 비관론자들은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풍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다.
모든 전망에 대한 평가는 결과와 함께 과정도 중시돼야 한다. 낙관론자들이 왜 주가를 밝게 보는지와 비관론자들이 왜 주가를 어둡게 보는지 그 요인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봐야 낙관적 시각은 주식 수요로, 비관적 시각은 주식 공급으로 작용해 한국 증시의 고질병인 쓸림 현상과 심한 변동성이 줄어들면서 균형을 찾을 수 있다. 이제는 주식을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나?
한국 증시 발전을 위해서는 주가 예측은 반드시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시장안정과 투자자들에게 안내판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를 위해 앞으로 주가 예측은 '사후적'보다 '선제적'으로, '수치 전망'보다 '추세전환 예측'으로, '인기영합적 군집형 예측'보다 '소신이 있는 다원적인 예측'으로, '결과'보다 '과정'을 동일하게 평가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부자들이 증권사의 예측을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재테크 변수 가운데 예측하기가 가장 어렵지만 가장 쉽게 수정해 예측치를 내놓은 것이 주가다. 주가는 하루 간격으로 더 심하게 말하면 장중에도 오르내림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증권사와 전문가가 내놓은 주가 예측이 자주 틀리고 신뢰가 땅에 추락함에 따라 주가를 예측하는 방법도 많이 변해왔다.
국내 증권사가 1990년대까지 주가를 예측하는 방법의 하나로 가장 많이 활용했던 지표가 엔·달러 환율 움직임이다. 그때까지 일본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엔·달러 환율 움직임이 주가에 여전히 3개월 정도 선행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갈수록 그 정도가 약화되고 있어 지금은 거의 활용을 하지 않는다.
비록 장기이긴 하지만 국제유가가 주가의 9~10개월 정도 선행하고 그 정도가 여전히 높게 나오는 것은 의외다. 우리 경제구조가 여전히 원유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유가의 선행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탈원전'과 '태양광' 에너지 정책을 외쳐 왔지만 원유 의존도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음을 뒷받침해 주는 대목이다.
주가에 빨리 반영하는 지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서 발표한 각종 경기선행지수다. 이 지수가 발표된 직후 3개월 이내에 주가에 반영된다. 같은 맥락에서 반도체 지수의 주가 선행 정도도 높게 나온다. 반도체 D값과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를 이용해 선행성을 구해보면 반도체 지수는 주가에 3~5개월 정도 선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것은 2006년 이후 선행 정도가 더 높아지지 않고 있는 점이다. 실제로 우리 산업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도 그때부터 정체국면을 맞고 있다.
같은 지표라도 국내 지표보다 미국 지표가 국내 주가를 선행하는 정도가 높은 것이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국채와 회사채 간 금리 스프레드, 재고를 출하로 나눈 재고출하비율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미국 국채와 회사채 간의 금리 스프레드는 미국 기업들의 실적과 투자자들의 신뢰를 반영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처럼 미국 국채와 회사채 간의 금리 스프레드가 좁아지는 것은 미국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고 투자자의 신뢰가 높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문적이긴 하지만 이론적으로 특정 지표가 경기와 주가를 얼마나 선행하는가를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하게 교차상관계수를 구해보거나 마코브-스위치 모델, 카오스 이론, 인공신경망 등이 활용된다. 특히 마코브-스위치 모델은 주식을 살고 파는데 가장 중요한 국면전환을 파악하는데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접 추정은 하지 않지만 부자들이 주식을 사고팔 때 가장 많이 참고하는 지표다.
한 나라의 경기순환에 있어 장기선행지수와 단기선행지수, 동행지수는 순차적으로 움직인다. 장기선행지수는 경기침체를 가장 먼저 경고하고 다음으로 단기선행지수는 이 신호를 재확인해 주며 마지막으로 동행지수가 내려간다. 경기 회복기에도 같은 순서대로 움직인다. 평균적으로 볼 때 장기선행지수는 1년 전에, 단기선행지수는 6개월 전에 경기변동을 예고한다. 최근 들어 주가가 경기에 3∼6개월 정도 앞서가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선행지수와 단기선행지수는 빠르면 각각 9개월, 3개월 이전부터 주가 흐름을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증시는 고도의 복합시스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가 예측론자들은 이미 지나간 자료를 토대로 예측 모델을 개발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모델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주가 변동을 유발하는 복합변수들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다. 국내 증권회사들의 주가 예측을 되돌아보면 이런 모델들의 비효율성이 드러난다. 정작 예측이 필요할 때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더욱이 주가의 방향이 바뀌고 있거나 게임의 규칙이 변한 뒤에야 비로소 터닝 포인트를 알린다고 요란을 떠는 경우가 많다.
증시의 복잡성은 대부분 국내 증권사들이 의존하는 것처럼 불과 몇 개의 선행지표로 포착할 수 없다. 현재 미국의 경기사이클조사연구소(ECRI)가 개발한 예측 모델이 이 분야에서 세계를 평정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경제 사이클 큐브'라는 다차원적인 모델 덕분이다. 경제 사이클 모델을 보면 현실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다양한 지표를 통해 경제 내에서 형성되는 방향성 변화를 놓치지 않는다. 경제 복잡성에서 유발하는 뉘앙스나 추세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만이 최선이자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경제의 얼굴은 증시는 더욱 그렇다. 그런 만큼 국내 증권사들은 앞으로 주가를 예측할 때 '증시 사이클 큐브(security cycle cube)'라는 다차원적인 모델을 개발할 것을 권한다. 증시 사이클 큐브는 증시라는 복잡한 시스템 속에 발생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독특한 모델을 말한다. 이 분야에 가장 앞서가는 ECRI의 '경제 사이클 큐브'를 소개하면 크게 경제성장과 고용, 인플레로 삼차원을 구성한다. 경제성장은 다시 무역과 국내 경제활동으로, 이중 국내 경제활동은 부문별 장단기 선행지수로 구분된다. 이 모델을 통해 100개 이상의 선행지수를 통합함으로써 보다 정확하고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예측을 추론해 낸다.
개인 투자자들에게 이런 복잡한 증시 계기판은 필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증권회사들의 경우는 다르다. 소형 자동차보다 대형 자동차가 훨씬 복잡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듯이 증권회사들은 증시 사이클 큐브와 같은 다차원적인 주가 예측 모델을 갖추고 있을 때 비로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고 부자들로부터 잃어버렸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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