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도심 오피스 시장에 전례 없는 AI 임대 모델이 등장할 전망이다. 기업들의 데이터 처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오피스가 단순 사무 공간을 너머 AI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지스자산운용은 2031년 서울역 일대에 개발 중인 '이오타 서울'에서 오피스 임대와 데이터센터 서비스를 묶은 '번들 상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입주 기업이 사무 공간을 계약하면 빌딩 내 자체 데이터 인프라 또는 외부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AI 임대 모델이 추진되는 이유는 AI 시대 기업 경쟁의 변화에 대한 분석이 있다. 이지스는 AI 시대 기업 성공의 핵심 요소를 '인재'와 '기술 실증'으로 파악하고 있다.
AI, 반도체, 바이오 등 신성장 산업에서 핵심 인재 확보는 기업 경쟁력을 좌우한다. 최근 인재들은 연봉뿐 아니라 최신 기술을 경험하고 창의적 협업이 가능한 환경을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기술 실증도 주요 과제다. AI 솔루션의 상용화를 위해서는 실제 환경에서의 검증이 필수적이다.
이런 접근법은 성수동에 만든 '팩토리얼 성수'에서 토대를 마련했다.
팩토리얼 성수의 빌딩 OS인 '탭 & 컨트롤룸(Taap & Ctrl.room)'은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인 CES에서 혁신상을 수상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싱스 기술과 현대차의 로봇이 결합된 이 빌딩은 준공 전 임대율 100%를 달성하며 기술 실증 공간으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빌딩 OS를 통해 현대차 로봇이 택배와 커피를 배달하고, 삼성전자의 사물인터넷(Iot) 및 중앙공조 기술이 실시간 작동한다.
공간이 OS를 통해 다양한 기술과 만나며 플랫폼으로 거듭난 것이다. 기업에겐 기술 실증의 장이면서 동시에 공간 사용자는 새로운 기술과 만나 진화하는 업무 환경을 누릴 수 있었다.
이오타 서울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팩토리얼 성수가 신기술 접목이 가능하다는 의미의 '테크레디(Tech-Ready)' 오피스였다면, 이오타 서울은 'AI레디(AI-Ready)' 오피스를 표방한다.
팩토리얼 성수보다 20배 이상 큰 규모인 이오타 서울에 데이터센터 연계 등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빌딩 OS와 멤버십 등 사용자 네트워크를 활용해 AI 최전선에 있는 기업과 플랫폼을 고도화한다는 전략이다.
데이터센터와의 결합은 주요 차별화 요소 중 하나다. 대부분의 데이터센터가 도시 외곽에 위치해 발생하는 지연 시간과 보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빌딩 전체가 하나의 통합 OS로 운영되며 막대한 양의 실시간 데이터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이오타 서울의 경우 오피스 뿐만 아니라 쇼핑시설과 호텔 등이 결합된 복합시설로서 상주 인원만 2만 명이 예상된다. 다양한 산업군의 기업이 협력해 기술을 실증하고 AI 활용에 필요한 데이터 확보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는 셈이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스마트폰 OS도 사용자와 앱이 늘어날수록 가치는 무궁무진해지고, 데이터라는 '유전'도 확보할 수 있었다"며 "이오타 서울도 빌딩 OS를 기반으로 기업의 기술들이 모여 진화하는 공간 플랫폼이자 데이터 허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플랫폼 전략은 기업들에 새로운 사업 기회를 제공한다. 건물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 OS와 여기서 생성되는 데이터는 AI 솔루션 개발의 핵심 자원이다. 기업이 통합 OS 활용을 위한 파트너십을 맺고 실제 업무 환경에서 검증한 AI 모델을 상용화할 길이 열린다.

이오타 서울은 7가지 핵심 기능으로 미래 오피스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먼저 '휴먼 센터드 디자인'은 사용자가 기술을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최적의 환경을 누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AI가 개인별 온습도와 조도를 자동 조절하고, 비접촉 출입 시스템으로 편의성을 높인다. 다음 'AI 레디'는 엣지 데이터센터, 고출력 전력, 액체 냉각 시스템 등 AI 운영에 필수적인 인프라를 의미한다 '넷제로'는 재생에너지 활용과 실시간 탄소 데이터 공개로 탄소중립을 실현한다.
'복합 라이프 플랫폼'은 업무, 휴식, 문화, 쇼핑을 하나의 멤버십으로 이용할 수 있는 통합 환경이다. '스마트 모빌리티'는 전기차 충전, 로봇 주차, 자율주행 배송 등 이동 혁신을 포괄한다. 미래에는 UAM(도심항공교통) 연계도 가능하다.
'혁신 커뮤니티 클러스터'는 기업 간 협업을 위한 공유 랩과 크리에이터 허브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통합 빌딩 OS'는 이 모든 기능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해 AI가 건물 전체를 최적화하는 시스템이다.
이오타 서울은 옛 남산 밀레니엄 힐튼 호텔 부지와 메트로타워, 서울로타워 부지를 재개발하는 초대형 복합단지로 연면적이 약 46만㎡ 규모다. 오피스는 2개 동으로 힐튼 호텔 부지 위에 지어지는 이오타 1은 서울의 중심이라는 상징성에 부합한 헤리티지와 웰니스 등 고급화에 주력한다. 메트로·서울로타워 부지 위에 짓는 이오타 2는 AI레디의 본체로 신기술을 총망라한 오피스에 역점을 둔다. 호텔은 글로벌 최상위 럭셔리 브랜드인 '리츠칼튼'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이오타 서울뿐 아니라 서초동 서리풀 프로젝트, 용산 나진상가 부지 등에도 동일한 AI 레디 개념을 적용할 예정이다. 각 거점이 연결되면서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하고, 기업들은 필요에 따라 다양한 입지와 규모의 AI 오피스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차세대 오피스에 주력하는 배경에는 최근 오피스 시장 수요의 중대한 변화와 맞물린다. 이지스자산운용 전략리서치실 보고서에 따르면 신규 프라임 오피스는 대부분 환경·사회·거버넌스(ESG) 인증, 스마트 빌딩 시스템, 프리미엄 어메니티 및 서비스 등 최고급 사양을 갖추고 있어 중소형·저사양 오피스가 대부분인 과거 오피스 시장과 상당 부분 차별화가 이뤄졌다.
이에 오피스 시장의 양극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실제 2010년 서울 중심권역(CBD)에 있는 초대형 오피스(2만~5만 평)의 평당 명목임차비용(NOC)은 소형 오피스(1,000~3,000평) 대비 1.9배 높았으나, 초대형 오피스의 NOC가 빠르게 오르면서 지난해에는 격차가 2.5배까지 벌어졌다.
특히 AI, 반도체, 바이오, 미래 모빌리티 등 신성장 산업 분야에서 고급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프리미엄 오피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낡고 평범한 오피스는 살아남기 어려운 시장 환경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오피스는 창의성과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플랫폼이어야 기업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며 "오피스가 비용에서 투자로, 단순 공간에서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이 전환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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