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케빈 워시 차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체제가 출범한다. 2019년 이후 제롬 파월 의장과 갈등을 겪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12명의 후보를 놓고 1년 이상 검토해 오다가 지난 1월 말 케빈 워시를 지명했다. 막판에 케빈 헤셋, 크리스토퍼 월러, 케빈 워시 등을 놓고 1주일 간격으로 바뀌어 워시의 지명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워시 차기 Fed 의장은 그동안 검토됐던 후보 중 유일하게 Fed와 시장의 경험을 모두 갖고 있다. 최종 인선 기준이었던 Fed의 독립성도 잘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과 소신이 강해 1970년대 초반 금 태환 정지 선언 이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시녀 역할을 했던 아서 번스 전 Fed 의장의 실수를 저지를 우려도 적다.
하지만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이 친트럼프 인사라는 점이다. 중립을 지켜야 할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해 왔던 방향으로 결정되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Fed의 독립성이 훼손되는 것이 아닌가는 오해와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워시가 Fed 의장으로서의 성공 여부는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시가 Fed 의장으로 정식 취임한 이후 통화정책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Fed의 목표에 대한 입장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저금리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양대 책무 중 물가 안정보다 고용 창출에 더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물가 안정 목표를 유지해 나가더라도 현재 2%인 목표선을 4%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인플레 타겟팅 논의가 지속돼 왔다. 워시는 Fed 이사로 근무할 당시 민감하고 모호한 사안에 대해서는 한번 더 검토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체크 스윙 제도를 가장 활용해 온 점을 고려하면 양대 책무는 그대로 유지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 안정을 달성하는 방안도 독특하다. 대차대조표(B/S)를 점직적으로 축소 혹은 폐지해 금융위기 이후 완전한 출구전략 없이 추진해 왔던 양적완화(QE)에 따른 기대인플레이션 심리를 잡아 흐트러졌던 금리체계(interest system)를 바로 세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명제(premise)라고까지 부르는 이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기준금리를 대폭 내릴 수 있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기준금리를 내리면 어떻게 물가를 안정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인공지능(AI)을 육성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시각은 독특하다. 생산할수록 공급능력이 확대되는 AI가 발전되면 1990년대 후반 정보 기술(IT)이 주력산업으로 부각되면서 고성장 하에 저물가라는 신경제 국면이 재현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기준금리를 변경하는 데도 모교인 스탠포드 대학에서 스승과 제자로 인연이 있었던 존 테일러 교수가 창안한 준칙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론적으로 통화당국이 기준금리를 어떻게 조정해 왔으며 그것이 과연 적절했는가를 사후적으로 검증하는 방법 중이 하나가 '테일러 준칙(Taylor's rule)'이다.
산출 공식은 실질 균형 금리에 평가 기간 중 인플레이션율을 더한다. 여기에 평가 기간 중 인플레이션율에서 목표 인플레이션율을 뺀 수치에 정책반응 계수(물가 및 성장에 대한 통화당국의 정책 의지를 나타내는 계량 수치)를 곱한다. 그리고 평가 기간 중 성장률에 잠재성장률을 뺀 값에 정책반응 계수를 곱한 후 모두 더해 산출한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테일러 준칙에 의해 도출된 적정수준보다 높아 2022년 3월 이후 Fed의 금리 인상이 얼마나 급하게 단행했던가를 입증해 주고 있다. 2021년 5월 이후 인플레이션이 불거질 당시 '일시적'이라 오판하고 평균 물가 목표제로 관리해 온 Fed가 뒤늦게 '볼커 모멘텀'으로 대처해 온 결과다.

볼커 모멘텀식 대응의 가장 큰 부작용은 'r 스타(r*)' 금리가 'r 더블 스타(r**) 금리'보다 높아진 점이다. r* 금리는 실물경기를 침체시키거나 과열시키지 않는 중립금리다. 반면 r** 금리는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또 하나의 중립금리다. r* 금리가 r** 금리보다 높아지면 금융시스템이 불안해져 금융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간다.
코로나발 인플레이션이 불거질 직전까지 20년 이상 저물가가 지속돼는 여건에서 r* 금리와 R** 금리 간의 괴리는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2022년 3월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실물경기 섹터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단기간에 급하게 올리는 과정에서 r* 금리가 높아져 지금까지 유지해 오고 있다.
r* 금리가 r** 금리보다 얼마나 높아졌는가에 대해서는 추정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다. 분명한 것은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만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더 올리면 두 금리 간의 격차가 벌어져 금융시스템이 더 불안해진다. 케빈 워시도 Fed가 금리인하에 소극적이어서 국가부도 위험이 높아지고 경기가 활성화되지 못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같은 입장이다.
파월 의장과 구별되는 것은 r* 금리가 r** 금리보다 높아진 여건에서는 물가가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중앙은행의 통제권에 들어오면 통화정책은 ‘경기부양’ 쪽으로 우선순위가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가가 목표치까지 도달할 때까지 금리인하에 소극적이면 경기를 침체시키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최대 관심사인 기준금리가 높다면 얼마까지 내릴 것인가는 테일러 준칙에 의해 적정수준을 산출하면 어느 정도 감(感)을 잡을 수 있다. 물가와 고용에 대한 정책 의향 계수를 중립적으로 놓으면 3.5%로 나온다. 올해 첫 Fed 회의가 끝나고 파월 의장이 기준금리가 중립금리에 근접했다고 언급했던 것도 이 근거에서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정책 의향 계수를 반영한 적정선은 베센트 장관이 언급한 2.5% 수준이다. 현재 기준금리 밴드의 하단보다 1% 포인트 낮아 0.25% 포인트씩 내린다면 네 차례 인하해야 한다. 적정선이라 할 수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기준금리가 1% 밑으로 내려야 한다. 과연 베센트 장관과 어떻게 조율해 나가느냐와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얼마만큼 수용할 것인가에 따라 기준금리 수준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의사록 발표, 경제전망(SEP), 점도표와 중립금리, 기자회견 등을 통한 포워드 가이던스를 축소해야 한다는 것은 당초 예상과 다른 점이다. 통화정책 여건이 종전의 이론과 관행이 더 이상 통하지 않고 미래 예측까지 어려운 뉴 앱노멀 시대에서는 포워드 가이던스가 오히려 시장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는 근거에서다. 뒤늦게 점도표를 도입하려는 한국은행에게도 커다란 시사점을 던져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지역 연준 총재의 자격요건을 강화하느냐 여부도 관심사다. 인사권으로 Fed 내부를 장악할 수 있어도 매년 4명씩 순번제로 돌아가는 지역 연준 총재는 기준금리 결정 등에 대통령 요구 등 정치적 압력에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독립성 유지, 기준금리 인하 등 Fed가 당면한 현안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만큼 위시가 가장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워시 차기 의장이 취임하면 확인돼야 할 사안인 많은 만큼 일단 증시 반응은 부정적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을 되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Fed의 독립성과 달러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지난해 탈법정화폐 거래(debasement trade)로 거침없이 올랐던 금 등 귀금속 가격은 제 자리를 찾아갈 확률이 높은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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