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총알 자국이 아니라 5·18 현장에 남겨진 기록"

입력 2017-01-08 08:00  

"단순한 총알 자국이 아니라 5·18 현장에 남겨진 기록"

광주 전일빌딩 탄흔들…헬기 총격 진실 36년만에 가려지나

국과수 탄흔 조사 보고서 주목…탄흔 원형보존 목소리 높아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리모델링을 앞둔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에서 찾아낸 총탄 자국이 36년 넘게 규명되지 않은 계엄군 헬기 총격의 전말을 밝힐 '판도라의 상자'로 떠오르고 있다.

5·18 현장 탄흔의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받으면서 5월 단체도 전일빌딩 등에 남아있는 탄흔의 원형 보존을 촉구하며 인근 옛 전남도청에서 124일째 천막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 36년 만에 발굴한 '판도라의 상자'

지난달 13일 광주시 의뢰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진행한 전일빌딩 총탄흔적 현장조사에서 탄흔 100여개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건물 최상층에 집중된 탄흔은 5·18 당시 옛 전남도청 쪽에서 금남로 방향으로, 비슷한 높이에서 사격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68년 12월 7층 건물로 준공된 전일빌딩은 4차례 증·개축을 거쳐 5·18 당시 10층 규모인 지금 모습을 갖췄다.

1980년 5월에는 옛 전남도청 광장에서 쫓겨온 시민이 계엄군을 피해 몸을 숨겼던 곳이자 도청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Ƌ·18 시민군 상황실장' 박남선(63) 씨는 1989년 2월 23일 열린 국회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광주특위) 29차 청문회에 출석해 "계엄군이 헬기에서 기관총을 난사했다"고 증언했다.

박 씨는 8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당시 계엄군이 헬기를 띄워 전일빌딩 방향으로 공중사격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며 헬기 사격 현장을 목격했음을 강조했다.

그는 "전일빌딩은 시민군이 옥상에 캘리버 50 기관총 등 중화기를 설치했던 자리"라며 "1980년 5월 27일 새벽에 최후까지 항거했던 시민군 여러 명이 전일빌딩 옥상에서 숨졌다"고 설명했다.

1980년 5월 당시 시민수습위원장을 맡았던 고(故) 조비오 신부, 적십자대원으로 활동했던 이광영 씨, 시민목격자 정낙평 씨, 광주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아놀드 피터슨 목사도 계엄군의 헬기 총격을 증언한 바 있다.

국과수는 지난해 9월부터 3차례 조사를 통해 전일빌딩 곳곳에서 찾아낸 탄흔 분석 보고서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국과수가 현장조사에서 밝힌 헬기 총격 가능성을 공식화하면 이 보고서는 5·18 당시 계엄군 헬기 사격 여부를 규명하는 최초의 정부 기록이 된다.


◇ 5·18 진실 또다시 격랑 속으로?

5·18 당시 무장헬기 공중사격은 광주 피해자 322명이 신군부 세력 35명을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서 첨예한 쟁점이었다.







검찰은 1995년 7월 18일 발표한 수사 결과에서 "군 자료를 보면 2군사령부가 전교사에 수송용 헬기 10대와 무장헬기 4대를 지원했고, 헬기는 모두 48시간 동안 무력시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공중사격 여부를 확인할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해 무장헬기 총격은 검찰 수사에서 명확히 드러나지 못했다.

광주특위 청문회 증언과 배치되는 수사 결과이자 5·18 진상규명 이후 나온 숱한 목격담을 부정하는 발표였다.

정수만(71) 5·18연구소 비상임연구원은 5·18 계엄군이었던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가 1980년 9월 육군본부에 제출한 '광주 소요사태 분석 교훈집' 일부를 최근 공개했다.

그 자료는 광주에 배치했던 항공기의 임무·운영 방식·문제점을 다룬 군 보고서다.

실제 실행 여부가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계엄군의 헬기 사격 요청과 항공기가 무장 시위 및 공중화력 제공을 수행하도록 한 내용이 나와 있다.

1980년 당시 총상을 입었던 40대 여성의 몸에서 추출한 총탄 파편도 주목받았다.

5·18민중항쟁 부상자회는 해당 총탄 파편을 미국 무기실험연구소(Forensic Science Consulting Group)에 보내 중화기 탄환일 가능성이 크다는 회신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헬기 총격에 대한 증언이나 주변 정황은 많지만 이를 뒷받침할 공식 기록이 없는 상황에서 국과수의 전일빌딩 공식 보고서는 담길 내용에 따라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

헬기 사격을 공식 보고서에 인용하면 5·18을 둘러싼 헬기 총격에 관한 진실은 또다시 격랑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 "단순한 탄흔이 아니라 역사의 기록"

전일빌딩 탄흔 발견을 계기로 5·18 무장헬기 총격 규명을 향한 움직임과 역사현장 보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1997년 광주은행으로부터 기증받은 유리창 3장에 대한 탄흔 분석을 지난 3일 국과수에 의뢰했다.

기록관이 분석 의뢰한 유리창은 5·18 당시 광주은행 본점 8층에 설치됐던 것들로 지름 약 2.5cm 크기의 총알구멍이 뚫려 있다.

금남로 3가에 자리했던 광주은행 옛 본점은 전일빌딩과 직선거리로 300여m 떨어져 있어 이 분석 결과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금은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부속건물로 탈바꿈한 옛 전남도청 별관에서 지난해 9월부터 농성 중인 5월 단체도 5·18 역사현장 보존의 당위성이 확인됐다며 귀추에 주목하고 있다.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전일빌딩에서 그렇게 귀중한 총탄 자국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느냐"며 "여전히 찾아내지 못한 5·18 흔적을 발굴하고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옛 도청이나 전일빌딩처럼 5·18 증거가 발견된 공공재산은 사적지로 지정해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며 "페인트로 덮어버린 옛 도청 총알 자국도 단순한 탄흔이 아니라 역사의 기록이다"고 강조했다.

h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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