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닭 복원에 힘쓰는 홍승갑 파주 현인농원 대표…35년간 15종 성공
AI 예방 위해 농장 문 걸어 잠그고 하루 2∼3차례 '불소독'
(파주=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재래닭의 색상 복원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30여 년 동안 경기도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유일하게 재래닭의 다양한 색상을 복원하고 있는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현인농원의 홍승갑(77) 대표. 1982년부터 35년간 재래 닭의 색상을 복원하고 혈통을 보존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는 재래 닭의 '대부'다. 닭의 해인 정유년(丁酉年)을 맞아 지난 3일 홍 대표의 농장을 찾았다.
"중부지방 '황계'의 맛과 약효가 탁월하다는 '본초강목' 기록을 접한 것이 재래닭 복원의 계기가 됐다"는 홍 대표는 "어린 시절 마을에 꼬리가 긴 닭이 꽤 여럿 있었는데 집에서 기르던 닭과는 색상과 꼬리의 길이가 너무 달랐다"면서 "당시에는 몰랐는데 복원 작업을 시작하면서 어린 시절 본 꼬리가 긴 닭이 재래닭인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이때부터 전국의 재래 닭들을 수집해 교배·선발·도태 등의 과정을 반복,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지금도 복원 작업을 진행 중이다.
복원 초기 국내에는 재래닭에 관한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지만 본초강목 등 몇 안되는 고화와 고문헌, 국립축산과학원 정선부 박사를 통해 일제 강점기 이전 국내 재래닭이 20여 종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품종이 우수한 닭들끼리 교배를 통해 확실한 색깔을 내도록 육종해왔고 지속적인 교배를 통해 같은 유전자가 이어지도록 하는 '고정화' 작업으로 복원을 해오고 있다.
닭은 4∼5㎡ 규모의 큰 계사에 10마리씩 넣어 키우고, 토착 균을 배양해 쌀겨 등을 발효시킨 후 사료를 먹이는 등 유기농법만 고집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농원의 닭들은 면역력이 강하고 건강하다. 계사 역시 다른 농원과 달리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홍 대표가 현재까지 복원한 색은 흑색·황색·황갈색·흑갈색·흰색·회색 등 15종이다. 현재 현인농원에서 자라는 재래 닭은 2천여 마리.
이런 노력의 결과로 홍 대표가 재래닭 가운데 처음 복원한 '현인흑계(鉉寅黑鷄)'는 2012년 5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가축 다양성 정보시스템(DAD-IS)에 이름을 올렸다. DAD-IS는 동물유전자원의 다양성을 유지·활용하기 위해 FAO가 1996년부터 운영하는 것이다.
FAO는 당시 홍 대표의 현인흑계와 국내 칡소, 축진참돈, 축진듀록, 횡성약닭, 황봉, 진돗개, 동경이 등 5축종 24품종을 DAD-IS에 등재했다.
또 홍 대표의 농원은 2012년 말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서 가축유전자원(재래닭) 관리농장으로 지정됐다. 가축유전자원 관리농장은 많은 사람들이 조상들이 기르던 우리 고유의 재래닭을 이해할 수 있도록 보존·연구하는 농원이다.
이듬해에는 재래닭의 색상을 가장 많이 복원해 년 경기도 최고'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홍 대표는 "재래닭의 색상 복원은 시간과의 싸움이고, 사라져가는 재래닭을 보존하는 일"이라며 "나아가 후손들이 가금 산업을 육성시킬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종자의 중요성이 인식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 닭의 혈통을 유지하고 그 종자를 지키기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줬으면 한다"면서 "재래닭은 일반 닭과는 달리 더디 자라 상업성이 부족하지만 화려한 색상과 아름다운 자태가 특징인 만큼 '관상용'으로 쓸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발육이 늦어 상업성은 떨어지지만 재래닭은 '콜라겐'과 닭고기의 맛을 결정하는 아미노산인 '메티오닌'과 '시스틴'이 많아 특유의 쫄깃함으로 식용으로도 닭 중 으뜸으로 친다.
홍 대표에게 사실상 전국을 휩쓸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AI)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발생 50여일 만에 3천만 마리 이상의 가금류가 도살 처분됐다"라며 "정부의 무조건적인 매몰 방식은 잘못된 것 같다"고 했다.
홍 대표는 "2002년부터 AI가 발생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매번 같은 방식의 매몰처리만 반복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면역력 강한 닭과 오리들은 매몰 처분하지 말고 상황을 지켜 보고 어떻게 살아남는지 충분히 과학적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AI를 막기 위해 그는 농장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또 LP가스를 이용한 화염기로 하루에도 2∼3차례 계사 바닥을 불로 달궈 '불소독'을 하는 등 하루 대부분을 계사에서 보내고 있다.
n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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