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일본대사 귀국…아베 '막가파식 외교 습격' 구체화

입력 2017-01-09 10:50   수정 2017-01-09 11:12

주한 일본대사 귀국…아베 '막가파식 외교 습격' 구체화

외무상, 외국서도 한국 비판 "일본은 이행, 한국도 이행하라"

아베 '지지율제고→장기집권→개헌' 노림수…韓 차기 주자도 겨냥

日 '북핵·미사일, 對중국 대응 협조 필요'…갈등 장기화는 부담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 한국 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 설치 문제를 둘러싼 한일간 갈등이 증폭 양상이다.

구청과 시민단체 간의 갈등 끝에 지난해 12월 31일 소녀상이 설치된 이후 열흘째를 맞은 9일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가 일본 정부의 결정에 따라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귀국한다.

한국 외교부는 이런 일본의 보복 조치에 대해 유감 표명을 하는 것 이상의 대응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소녀상 설치에 대한 지지가 강한 한국 내 여론과 일본의 철거 요구 사이에서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양상이다.




◇ 日 '초강수' 외교 대응 현실화…주한 일본대사·부산총영사 귀국

나가미네 일본대사는 이날 낮 김포공항을 통해 본국으로 일시 돌아간다. 그는 출국에 앞서 김포공항에서 기자들에게 간단하게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모리모토 야스히로(森本康敬) 부산총영사는 이날 오전 김해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돌아갔다.

대사의 일시 귀국은 '단교' 다음으로 높은 수위의 외교적 대응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일본 정부가 부산 소녀상 설치를 얼마나 '중대한 사태'로 규정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일단 귀국을 한 뒤에는 대외적 명분이 없을 경우 임지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일본은 나가미네 대사와 모리모토 총영사의 일시귀국을 통해 한국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대사 소환 및 한일 통화스와프 재개 논의 주단 등의 사실상 보복 조치는 한국내에서 '소녀상 철거 불가' 여론은 물론 반일감정까지 증폭시키고 있어서 양국간 갈등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체코를 방문 중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도 공격에 가세했다.

그는 이날 현지에서 일본 기자들에게 "위안부 합의가 세계의 많은 국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의 위안부 재단에 대한 10억엔 출연 사실을 거론하며 부산 소녀상 설치에 거듭 유감을 표하고 "일본은 (한일간 합의를) 이행한 만큼 한국도 착실히 이행해 달라"고 요구했다.




◇ 아베 '털끝' 이어 "10억엔 냈다" 발언…개헌 기반강화 노림수

한일 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데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등 일본 정권의 고도로 계산된 전략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주한 일본대사 본국 소환은 4년 반 전인 2012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정부가 주한대사 본국 소환 등의 조치를 발표한 지난 6일 사전 녹화한 NHK 프로그램에서 아베 총리는 "10억엔을 냈으니 한국이 제대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소녀상을 소재로 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총공습이 아베 총리를 중심으로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된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 아베 총리는 한국에 대한 공격에 나서기 전에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한일 정부간 합의를 역행하는 것은 건설적이지 않다"고 미국에 대해 '외교상의 지원'을 요청했다.

그동안 한일간 갈등이 발생했을 경우 종종 중재자 역할을 해 온 미국을 소녀상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군화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 및 이행 과정에서 일본측이 위안부 재단에 10억엔을 출연했음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자신들은 합의를 이행했음에도 한국측이 일본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추가로 설치한 것은 합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는 논리가 국제사회에서 통할 것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아베 총리의 강공은 한국의 탄핵 정국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강공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직적인 대응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이런 도발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조기 대선 가능성, 그리고 야권의 차기 주자들이 위안부 합의 파기 및 재협상을 주장하는 것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NHK 토론프로그램에서 "한국의 정권이 바뀌어도 (한일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 국가 신용의 문제다"라고 말한 것이 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죄 편지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는 등 위안부 합의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했던 그였다.

아베 총리의 이런 막가파식 행보는 그가 꿈꾸는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개헌 행보의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개헌을 위해서는 여론의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야마구치(山口)와 도쿄(東京)에서 잇따라 정상회담을 했지만 쿠릴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 일본 귀속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꺼내지 못했다. 당연히 보수층을 중시으로 비판론이 나오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북방영토 문제에 대한 협상에 나서겠다는 생각이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는 지난 연말 이뤄진 부산 소녀상 설치를 자신의 지지율 제고의 수단으로 최대한 활용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때리기'를 통해 자신의 주요 지지기반인 보수세력을 총결집시켜 내년 9월인 임기를 2021년 9월까지 연장해, 자신이 '소명'으로 여기는 개헌을 완수하겠다는 것이다.




◇ 국내외 과제 산적 아베, 갈등 장기화는 부담

그러나 아베 총리로서도 한일 간 갈등 상황을 장기화시키는 데 대한 부담이 없지 않다.

국내에서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정치권에 요청한 생전퇴위(사망 전에 물러나 황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줌)를 위한 입법, 그가 올해 최대 과제로 제시한 '경제 최우선'을 위한 금융·경제·성장 정책의 지속적 추진이 시급하다.

또 외교적으로는 오는 20일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권과의 관계 공고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북방영토 반환 협상, 동·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 등 과제가 산적했다.

이들 과제 가운데 북한이나 중국에 대한 대응은 한국과의 공조가 절실한 만큼 소녀상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아베 총리에게도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일본은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한국의 협조가 절실하다.

지난해 북한이 몇차례 동해쪽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등에 떨어졌을 당시 일본은 사전 포착하지 못하는 취약점을 노출했었다.

그동안 일본이 한국과의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에 공을 들였던 이유 중 하나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정보 파악 능력이 한국에 비해 취약한 점이었다.

여기에 최근 중국 함선의 잇따른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 인근 진출, 중국 항공모함의 오키나와(沖繩) 본섬과 미야코(宮古) 사이의 미야코해협 통과 등 중국과의 갈등도 부담이다.

새로 출범하는 트럼프 정권도 한일간 갈등이 지속되는 것을 달가워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또 내달 한중일 정상회의 도쿄 개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의 회담 등을 통한 '안정적인 정상 외교'를 연출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의 갈등이 장기화되면 이런 기본적인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해지게 된다.

아베 총리로서는 일종의 외교상의 딜레마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아베 총리로서도 일정 기간 냉각기를 가진 뒤 한일관계 정상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choina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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