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무심한 표정의 여자가 달걀 하나를 깨뜨린 다음 거품을 낸다. 옆에 있는 남자는 종이학 한 마리를 들여다보더니 진짜 새인 양 날리는 시늉을 한다.
정다운 말투의 내레이션이 함께 흐른다. "그들은 서로 증오했지. 피부색 때문에, 성별 때문에, 사투리 때문에, 종교 때문에, 그리고 음악과 미술의 유파에 따라서. 사람들이 증오하는 것들의 끝은 보이지 않았대……."
18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서울예술대학교 예술공학센터에서 진행된 연극 '하이-파이 : 와이-파이 : 싸이-파이 - 현재, 미래의 설계'의 한 장면이다.
남자와 여자는 함께 등장하지만, 실제로 함께 있는 건 아니다. 무대는 하나이지만 둘이기도 하고, 둘이지만 하나이기도 하다.
실험극으로 이름난 미국 라마마 극단과 서울예대가 손잡은 이 연극은 양쪽 배우들이 각각 뉴욕과 안산에서 사전에 촬영한 영상을 동시에 투사하는 방식을 통해 완성된 작품이다.
미국 라마마 극장과 예술공학센터에서 연극을 지켜본 관람객은 자연히 하나의 무대에서 이뤄지는 연기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영상이 네 벽면에 투사되기 때문에 극의 흐름에 따라서 관람객도 35분간 몸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
연극은 1960년대 미국 작가인 로버트 패트릭의 공상과학 소설 '올 인 더 마인드'를 바탕으로 했다.
연극의 총연출을 맡은 제이슨 트루코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실험"이라고 설명했다.
예술공학센터에서는 뉴욕과 안산에 있는 남녀배우가 화상영상 기술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한 무대를 꾸미는 텔레매틱(원격 동시) 공연도 15분간 펼쳐졌다.
로버트 패트릭의 또 다른 작품인 '카메라 옵스큐어'를 현대 기술로 재해석한 것이다.
박일규 서울예대 교수는 "로버트 패트릭의 원작이 1960년대에는 너무 실험적이어서 대중화하지 못했지만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연결된 지금 우리 사회에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어 공연 가치를 높였다"고 평했다.
이번 연극은 라마마 극장 개관 55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패션 디자이너 출신의 연출가 엘런 스튜어트가 1961년 설립한 라마마 극단은 알 파치노, 모건 프리먼 등 세계적인 배우 등을 배출한 곳이다. 한국 극작가와 연출가의 작품을 꾸준히 라마마 극장에 올리며 한국과 인연을 맺어왔다.
서울예대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를 가상현실(VR)과 결합한 실험예술 퍼포먼스 '프로스페로의 꿈'도 19일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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