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지 바뀌는 건 한순간"…빈부 역전된 베네수엘라·콜롬비아

입력 2017-01-20 10:00  

"처지 바뀌는 건 한순간"…빈부 역전된 베네수엘라·콜롬비아

내전 탈피 부국된 콜롬비아 vs 석유부국서 알거지된 베네수엘라

돈벌러 콜롬비아로 가는 베네수엘라인…"처지 완전히 뒤바뀌어"

(보고타=연합뉴스) 김지헌 특파원 = 한때 베네수엘라는 중남미 최고 부국이었다. 주변 나라 사람들이일자리를 찾으러 몰려들던 '선망의 나라'였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자랑했다. 이미 1977년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6천 달러(약 1천874만 원)에 육박했다.

그러나 올해 예상 인플레이션이 1천600%에 달할 정도로 경제가 망가져 있다. 지금은 누구도 이 나라에 일하러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반면 이웃 나라 콜롬비아는 과거 내전과 마약에 시달렸다. 당시 많은 사람이 불안을 피하고 일자리를 찾아 베네수엘라 행을 택했다.

이후 반군과의 평화협정 체결 등으로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가 성장했다. 2002년 16.3%이던 중산층이 2015년 30.5%로 증가했고, 빈곤층 비율은 49.7%에서 27.8%로 쑥 낮아졌다. .

이제는 오히려 베네수엘라인들이 콜롬비아로 몰려들고 있다. 스페인 식민지에서 '그란 콜롬비아'(Gran Colombia·대 콜롬비아)라는 한 나라로 독립한 이후 다시 분리 독립의 길을 걸어, 애증이 섞인 두 나라의 처지와 역사가 엇갈리고 있다.






◇ "평화와 일자리를 찾아 왔다" = 18일(현지시간)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한 카페에서 만난 베네수엘라 출신 엔지니어 에드가 디아스(46) 씨. 그는 "평화와 일자리를 찾아 2010년 콜롬비아로 이주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초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 회사이자 최고의 직장으로 통하는 PDVSA 직원이었다. 지금도 베네수엘라에선 PDVSA 임직원의 영향력은 막강하며 급여와 생활 수준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한때 '가난할 수 없는 나라'로까지 불렸던 베네수엘라의 경제를 망가뜨린 고(故) 우고 차베스전 대통령이 저지른 일의 희생자가 됐다.

차베스는 2003년 자신에게 반대하는 PDVSA 직원들의 파업이 일어나자 PDVSA 전체 인력의 40%에 해당하는 1만8천여 명을 단 번에 해고했다. 디아스도 여기에 포함됐다.

석유 업계는 2003년 차베스가 숙련 인력을 대거 해고하면서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의 효율성이 크게 낮아졌다고 평가한다. 졸지에 일자리를 잃은 직원들은 외국으로 나갔고, 베네수엘라와 비슷한 문화를 지닌 이웃 산유국 콜롬비아의 석유 산업이 혜택을 누렸다.

디아스 씨는 "1980년대만 해도 콜롬비아는 정치 사회 문제가 정말 많았는데 1990년대 들어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한 반면에 베네수엘라는 거꾸로 상황이 악화됐다"면서 거리 카페에서 마음놓고 커피나 맥주조차 마실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한 베네수엘라 치안을 개탄했다.






디아스 씨 같은 고급 인력만 베네수엘라를 떠난 것이 아니다.수도 카라카스 출신 앙헬 로드리게스(23) 씨는 지난해 11월 말 육로로 국경을 넘어 콜롬비아에 입국, 현재 보고타의 한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로드리게스 씨는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꼽히는 카라카스의 '바리오 23 데 에네로' 근처에 살았다며 "음식을 구할 수 없었고 생활비가 너무 많이 들었다"고 조국을 떠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베네수엘라에 있을 때보다 3배는 더 많이 벌고 있다. 카라카스에 남은 가족들에게 돈을 보낼 수 있어서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면서도 "관광 비자 만료 시한이 다가와 추방될 수 있어서 두렵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베네수엘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그는 말했다. 이미 정상 상황을 벗어났고 위기가 점점 악화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바뀌지 않는 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라카스에 사는 한 한국 교민은 "과거엔 전문직, 기술자, 부자 등이 나라를 떠났다면 지금은 계층과직업을 가리지 않는다"며 "모든 사람이 기회만 된다면 다른 나라로 가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콜롬비아 최대 일간지 엘 티엠포는 "베네수엘라인 콜롬비아 이주 1세대는 2002년 석유 산업의 다양한직군 종사자들이며, 2006~2008년엔 자기 회사가 망하는 것을 목격한 베네수엘라 기업가들이 경제호황을 누리던 콜롬비아로 몰려왔다"고 짚었다.

또 "이후엔 학생들이 오기 시작했다"며 "이들은 아버지로부터 '베네수엘라에는 젊은이를 위한 미래가없다'는 얘기를 듣고 왔다"고 덧붙였다.






◇ 인구 30%가 다른 나라로 떠난 '난민국가' = 베네수엘라가 호황을 구가하던 20세기 후반 콜롬비아는 최악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1964년 창설된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민족해방군(ELN) 등 좌파 반군, 반군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극우파 민병대,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메데인 카르텔과 그 경쟁자 칼리 카르텔 등이 저지르는 폭력이 나라 전체를 뒤덮었다.

반세기에 걸친 내전과 폭력으로 콜롬비아인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베네수엘라로 이주했다. 베네수엘라 전체 인구는 3천만 명인데 그 중 콜롬비아인이 약 600만 명인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그 기운데 절반 가량은 불법 체류자로 알려져 있다.






이젠 상황이 반대로 뒤집혔다. 엘 티엠포에 따르면 2003년 이래 콜롬비아에 입국한 베네수엘라인은 278만9천782명에 달한다. 비공식 입국자를 포함하면 더 많을 것이다. 이 가운데 관광 비자로 입국한 사람이 200만 명이 넘는다.

엘 티엠포는 "공식 비자를 가지고 오는 베네수엘라인들도 많지만 많은 사람이 주머니에 1페소도 없이 국경을 넘어 와 콜롬비아의 대도시들을 떠돈다"고 보도했다.

퍼블릭 라디오 인터내셔널(PRI)은 "최근 보고타엔 옥수수로 만든 빵 '아레파'(arepa)를 파는 베네수인 노점상들이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재콜롬비아 베네수엘라인협회 다니엘 파헤스 회장은 "최근 15년 사이 베네수엘라 인구의 30%가 나라를 떠났다. 우리는 21세기 난민"이라고 엘 티엠포에 말했다.




'베네수엘라 난민'을 보는 콜롬비아인들의 시선은 복합적이다. 양국은 19세기 초 분리 독립 직후부터 영토 분쟁을 벌여왔고 차베스 집권 때엔 같은 좌파 성향인 콜롬비아 반군 FARC를 지원했다.

보고타의 한 대학생은 "솔직히 말해 베네수엘라인은 귀찮은 존재들"이라면서 "그럴 일도 없겠지만, 만약 내가 베네수엘라에 간다면 나는 콜롬비아인이라고 하지 않고 페루에서 왔다고 거짓말을 할 것"이라며 좋지 않은 양국 간 국민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베네수엘라인 직원을 고용한 보고타의 한 자영업자는 "이웃을 도울 수 있어서 기쁘다. 우리 직원은 신분이 불안정한 상태지만 일은 열심히 잘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만약 베네수엘라인이 너무 많이 온다면 실업이나 범죄 등 문제가 커질 수는 있다"고 우려했다.

택시 기사 펠릭스 알론소(41) 씨는 "우리가 호의를 돌려줄 때라고 생각한다"며 "베네수엘라가 탄탄한 경제를 유지하던 시절 그들은 수많은 콜롬비아인이 살아갈 수 있도록 받아줬다"고 말했다.

j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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