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노인들의 '아름다운 동행'…꼬깃꼬깃 모아 10년째 기부

입력 2017-01-29 09:10  

쪽방촌 노인들의 '아름다운 동행'…꼬깃꼬깃 모아 10년째 기부

2008년부터 볼펜 조립해 번 천원씩을 모아 총 1천100만원 쾌척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35년 전 인천 번화가인 신포동에서 오락실을 운영한 이정성(75)씨는 친구의 빚보증을 잘못 서줬다가 인생이 뒤바뀌었다.

당시 거금 8천만원을 잃고 신용 불량자 신세가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위층 커피숍에서 불이 나 노래방도 쑥대밭으로 변했다. 커피숍 업주가 화재 보험에 들지 않아 모두 타 버린 오락실 기계는 보상조차 받지 못했다.

이후 아내와도 이혼하고 아들과 딸마저 엄마를 따라 이씨의 곁을 떠났다. 파산 선고장을 손에 쥔 '외톨이 인생'이 시작됐다. 30대 후반이었다.

15년 전인 2002년부터는 동인천역 인근의 한 모텔에서 지냈다. 25만원을 주고 이른바 '달방' 생활을 했다.

차량 에어컨 부품이나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을 모텔로 가져와 조립해 주고 한 달에 15만∼25만원을 버는 쳇바퀴가 10년이나 굴러갔다.

이씨는 "부업거리가 있으면 모텔비를 내고 그렇지 못하면 다음 달은 밀리는 '한 달 살이'였다 "고 당시를 기억했다.

2011년 일거리가 오랫동안 끊어져 3개월 치 모텔비를 내지 못했고 결국 거리로 쫓겨났다.

우연히 만난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인천의 한 쪽방촌에 자리를 잡은 게 6년 전이다. 태어나 지금까지 28번이나 이사한 끝에 정착한 곳이 6.6㎡(2평)짜리 허름한 판잣집이었다.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얻어먹고 쪽방촌 내 공동작업장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한 달에 20만원 가량을 벌었다.

지난해 5월 소방도로가 나면서 작업장이 철거됐고 이씨는 인근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작업장으로 옮겨 자활 근로를 계속했다.

그는 요즈음 괭이부리마을 작업장에서 볼펜 등 문구 용품을 조립해, 한 달에 20만원 가량을 번다.

노인급여 20만원까지 더하면 한 달 생활비는 40만원이 고작이다. 쪽방 월세 16만원을 내고 나면 식비와 교통비 등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도 빠듯하다.

이씨를 포함해 인천에서 유일하게 남은 판자촌 밀집 지역인 만석동 쪽방촌 노인들은 최근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찾아 141만원을 기부했다.

인근 인현동, 북성동, 계산동 쪽방촌 주민들과 무료 급식소를 이용하는 노인 등 400여 명도 동참했다. 문구 용품을 조립해 받거나 폐지를 팔아 받은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지폐와 누런 동전들을 내놓았다.

김중미 작가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기도 한 만석동 쪽방촌은 주민 70%가량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대부분 자활 근로로 생계를 이어간다.

이들의 기부활동은 2008년부터 벌써 10년째다. 총 성금은 1천100여만원에 달한다.





이씨는 "우리보다 못한 사람도 많다"며 "금액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의"라고 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우리가 받은 걸 돌려주고 베풀어야 한다"며 웃었다.

박종숙 인천쪽방상담소장은 29일 "쪽방촌 어르신들이 공동작업장에서 일하면 하루에 5천원을 벌기도 쉽지 않다"며 "몇천만원, 몇억원씩 후원하는 분들에 비하면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어르신들은 하루 일당 전체를 내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기업체나 관공서로부터 다양한 도움을 받기만 하던 어르신들이 한번 적은 금액을 기부한 이후 10년 동안 계속 이어왔다고 밝힌 그는 "어르신들이 나누는 기쁨을 아시는 게 기부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뭉클해 했다.

s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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