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의 시선] 동해, 누구의 바다인가

입력 2017-02-02 07:31  

[김은주의 시선] 동해, 누구의 바다인가

(서울=연합뉴스) 일제의 한반도 강압 지배가 한창이던 1919년 6월 국제수로회의(IHC)가 런던에서 개최됐다. 이 회의에는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 등 18개국이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해양 지명의 국제적 표준화와 항해 안전 국제규범을 마련하기 위한 국제수로국(IHB) 창설이 결의됐고, 2년 뒤 모나코에 본부를 둔 IHB가 설립됐다. 현재의 국제수로기구(IHO)는 1967년 모나코에서 열린 제9차 국제수로회의에서 국제수로기구 협약이 채택된 후인 1970년에 창설됐다.

1929년 국제수로국 회원국들은 국제표준 해도집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를 발행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로비로 이 해도집에서 동해 수역은 '일본해'로 표기됐다. 이후 세계 각국의 지도에 '동해'대신 '일본해'가 공식적으로 채택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식민지였던 한국은 회의에 대표를 파견할 수도, 동해 수역 표기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도 없었다.

1937년과 1953년 '해양과 바다의 경계'의 2차 개정판과 3차 개정판이 각각 발행됐다. 그러나 한국은 계속해서 일제 식민지였거나 전쟁을 겪고 있어서 손을 쓸 수 없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7년에야 한국은 IHO에 가입했고 1962년 제8차 정기총회부터 정부 대표단을 파견해 표기 변경을 요구했다. IHO는 1970년대 초부터 4차 개정을 추진했으나 '동해'와 '일본해' 표기 논쟁 등이 공론화되면서 현재까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1991년 유엔 가입 이후 1992년 유엔지명표준화회의(UNCSGN)에 처음으로 동해 표기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2002년부터는 '동해 단독표기' 주장의 현실적인 한계로 '동해'와 '일본해'의 명칭 병기를 주장해왔다. '일본해'가 관행적으로 널리 사용돼온 것이 현실이고 국제규범이 병기를 권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일본해'단독표기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여 년간 한일 양국이 대립해온 동해 표기 문제는 2012년 런던에서 열린 제18차 IHO 총회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오는 4월 24∼28일 모나코에서 열리는 제19차 총회로 연기됐다.

'동해' 명칭의 사용은 2천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 동명왕 편에는 동명성왕의 꿈을 기록하면서 "북부여국의 자리에 고구려가 건국될 것이니 북부여는 이곳을 피하여 동해 가의 가섭원으로 나라를 옮기라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지금까지 알려진 '동해' 지명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이때가 대략 기원전 59년으로 추정된다. 이는 '동해'라는 명칭이 삼국의 건국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국사기에는 15차례, 삼국유사에는 14차례 '동해'가 언급된다. 414년 건립된 광개토대왕릉비에도 '동해' 명칭이 나타난다. 제3면 묘지기의 숫자를 기록하면서 물가를 뜻하는 '매(買)'를 붙여 '동해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일본이라는 국호가 생긴 것은 6세기 말엽으로 알려졌다. 그러니 '동해' 명칭의 등장은 '일본해' 명칭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일본 국호의 등장보다 훨씬 앞선 것이다.

2천 년도 더 전인 중국의 기록에도 '동해'라는 명칭이 나온다. 후한서, 산해경 등의 고전에는 여진족들이 만주 남쪽 바다를 '동해'라고 부른다는 구절이 나온다. 러시아의 고지도들도 17세기에서 19세기 중반까지 동해 수역을 '동해,' '한국해'로 표기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일본은 서양 고지도 조사 결과를 근거로 '일본해' 명칭이 이미 19세기에 국제사회에서 확립됐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 고지도 상에서 동해 수역은 동해, 조선해, 한국해, 중국해, 일본해 등 다양한 명칭으로 혼용됐으며, 당시에는 해양 지명 관련 권위 있는 국제기구가 없었으므로 고지도 상의 특정 명칭을 국제적으로 공인된 명칭이라 볼 수 없다. 게다가 '일본변계략도(1809)', '신제여지전도(1844)' 등 그 무렵 일본에서 제작된 다수의 지도가 동해 수역을 '조선해'로 표기하고 있다. '일본해'가 '동해'를 대신해 사용이 확대된 것은 1897년 라페루즈의 항해기에서부터이다.

IHO 결의안, UNCSGN 결의안 등 국제규범에 따르면 2개국 이상이 공유하고 있는 지형물의 지명은 일반적으로 관련국 간 협의를 통해 결정하며, 합의하지 못하는 경우 각각의 국가에서 사용하는 지명을 병기하도록 한다.

지명에 국가명을 넣는 것은 그 지명이 해당국 소유이거나 해당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경우이다. 일본은 한국, 북한, 러시아처럼 동해 수역을 둘러싼 국가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에 일본의 국명을 사용한 '일본해'라는 명칭은 옳지 않다.


지난 20여년간 정부, 민간단체, 학계, 재외동포 등을 중심으로 '동해' 표기를 관철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됐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국제기구, 주요 언론기관, 지도제작사, 출판사, 학회 등에서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는 사례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한국 외교부와 일본 외무성 조사에 따르면, 2000년(일본 조사)에는 2.8%만이 '동해/일본해'를 병기했으나, 2005년(일본 조사)에는 10.8%가 병기(상용지도의 경우 18.1%)했고, 2007년(한국 조사)에는 23.8%가, 2009년(한국 조사)에는 28.07%가 '동해/일본해'를 병기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등 주요국은 여전히 '일본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많은 전문가도 IHO의 공식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중립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주요 외신들도 한국 관련 기사에서 '동해'가 아닌 '일본해'를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유명 검색사이트들도 지도서비스에서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동해' 병기를 관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1997년 IHO 총회 이후 2002년, 2007년, 2012년 총회에서 줄기차게 동해 표기를 둘러싼 싸움을 벌였다. 이번 총회를 앞두고 양국 정부의 물밑 외교전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 차원의 효과적이고 치밀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동해연구회와 같은 학술단체나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 등 민간의 노력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미주 한인의 목소리' 같은 재외동포 단체가 동해 병기안 통과를 위한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반크는 2000년부터 동해 홍보영상 제작 및 SNS 홍보, 전 세계 교과서, 웹사이트, 백과사전에 표기 시정 촉구, 동해 표기 영문 세계지도 제작 및 해외 배포, 동해 표기의 정당성을 소개하는 웹사이트 구축, 글로벌 동해 홍보대사 양성 등의 활동을 해오고 있다. 2월21일부터 26일까지는 연합뉴스와 공동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동해 표기를 주제로 국가브랜드업 전시를 개최한다.

우리의 애국가는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한다. 그만큼 우리 민족에게 '동해'는 단순한 바다의 명칭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동해는 우리에게 한국을 상징한다. 신라 문무왕은 동해에서 호국대룡이 되어 국가를 수호하겠다는 유언을 남겨 그 유해가 동해 대왕암에 뿌려졌다. 여러 신라의 왕들이 유해를 동해에 뿌려달라고 한 것은 동해를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관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다 이름 '동해'는 한민족의 삶 속에서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우리는 '동해'가 담고 있는 의미를 후손에게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것이 일제강점기에 어이없이 잃어버린 '동해'라는 이름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다. (글로벌코리아센터 고문)


ke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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