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틀니·선불폰' 이웃돕기의 진화…이색·맞춤 지원 확산

입력 2017-02-03 07:17  

'무료 틀니·선불폰' 이웃돕기의 진화…이색·맞춤 지원 확산

쌀·연탄 획일적 물품 전달 대신 가려운 곳 긁어주는 기부 유행

얼굴 모르는 이 돕는 '미리 내' 운동 확산…"나눔, 복지공백 메울 만큼 위력적"

(전국종합=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예부터 배고픔과 추위는 가난의 대명사였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굶주림, 살을 에는 추위에 시달리며 단 하루라도 '등 따습고 배부른' 날을 꿈꿨다.






쌀과 라면, 연탄 같은 기본적인 의식주 재료가 불우이웃돕기 대표 물품으로 자리 잡은 건 당연하다.

이웃돕기가 몰리는 연말연시가 되면 줄지어 연탄과 쌀자루를 나르는 모습은 선행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시대 변화에 따라 나눔의 모습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뤄지던 획일적인 물품 전달 대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맞춤형 이웃돕기가 늘고 있다.

충북 충주시 살미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지난 설을 앞두고 도움이 필요한 19가구를 선정해 각 가정의 형편을 고려한 선물을 전달했다.

혼자 사는 문모(87) 할머니는 식사량이 많지 않고 쌀도 비교적 여유가 있어 식재료보다는 밑반찬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통조림과 간장, 소금 등을 전달했다.

부부 모두 거동이 불편해 명절 음식 장만이 큰일이었던 김모(71) 할머니 집에는 전 부칠 재료와 만두, 약과 등을, 집 근처에 마트가 없고 몸이 불편한 이모(94) 할아버지네는 화장지와 세제, 라면 같은 생필품을 선물했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야 실속 있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각 가정을 미리 방문해 생활 환경이 어떤지, 가장 필요한 물품이 무언지 꼼꼼하게 실태 조사도 했다.

모든 가구에 일률적으로 똑같은 선물을 주는 것보다 훨씬 품이 들었지만 요긴한 물품을 받아들고 환하게 웃는 모습에 봉사자들은 예전엔 경험하지 못한 보람을 맛봤다.

살미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이종문 위원장은 "이웃 사정을 일일이 살펴서 가장 도움이 될 만한 물품을 지원했더니 일괄적으로 선물을 나눠줄 때보다 훨씬 실속이 있었다"고 말했다.






통 큰 기부로 단양의 '키다리 아저씨'로 불리는 김경운(52) 씨의 선행 역시 맞춤형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고기를 무료로 나눠준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김 씨는 자칫 영양 결핍이나 불균형에 시달릴 수 있는 학생들에게 영양보충을 해주자는 생각에서 고기를 나눠주기 시작한 게 어느덧 19년째다.

정육점 식당을 운영하는 김 씨는 지난달 24일에도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달라며 돼지고기 159㎏과 소고기 32㎏을 단양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 기탁했다.

다음에 올 손님을 위해 미리 돈을 지불하는 '미리내 운동'도 무서운 기세로 퍼져 나간다.

미리내는 자발적인 나눔 실천 운동이다. 누가 수혜자가 될지 모르지만 밥 한 끼, 빵 한 조각이 절실한 이를 위해 미리 값을 치른다.

2013년 5월 경남 산청의 커피숍에서 시작한 이 운동에 참여하는 업체는 현재 520곳으로 늘었다.

업종과 미리 내기 형태도 다양해졌다.

예전엔 한식집, 국숫집, 분식점, 카페, 고깃집 등 각종 음식점이 주를 이뤘지만 이제는 유흥업소만 빼곤 웬만한 업종은 모두 참여하고 있다.

휴대전화 판매 대리점과 중고 PC점, 내과, 치과, 동물병원에 이르기까지 없는 업종이 없을 정도다.

늘어난 가게 유형만큼이나 나눔의 종류도 화려해졌다.

고장 난 중고폰을 기증받아 수리한 뒤 휴대전화를 살 형편이 안 되는 이웃에게 선불폰으로 개통해준다. 별도 요금을 내지 않고도 일정 금액만큼 사용할 수 있다.

치아를 돌볼 여유가 없는 어르신을 위해 틀니 비용을 미리 내고 가는 치과 환자가 있는가 하면 유기견이나 유기묘의 치료와 무료 분양을 위해 성금을 기탁하는 동물병원 손님도 있다.

상품이나 서비스뿐 아니라 기술을 무료로 전수해주는 '재능 미리내'까지 등장했다.






'나눔 바이러스'의 위력은 놀랍다. 전파력이 강할 뿐 아니라 스스로 다양한 형태로 진화한다.

미리내 운동을 기획한 '미리맨'(미리내 운동본부 대표) 김준호(45) 동서울대 교수는 "처음 시작할 때는 참여 업소가 몇 곳 안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엔 가만히 둬도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오프라인 커뮤니티도 생겨났다"며 "자율적으로 팽창하고 확산하는 나눔의 위력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미리내 운동본부를 친구로 등록해 소식을 직접 받아보는 사람도 17만 명에 달한다.

이 운동이 시작된 이후 혜택을 받은 사람이 미리내 가게에 참여한 사례도 처음 나왔다.

최근 전북 정읍에서 문을 연 치킨집 주인은 헌혈증을 모아 아들의 혈액암 치료를 도와준 미리내 가게 커뮤니티의 나눔 정신에 감동해 개업과 동시에 참여 신청을 했다.

김 교수는 "나눔은 순환구조여서 누구나 도움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있다"며 "수직적으로 집행되는 복지 정책은 아무리 그물이 촘촘해도 빈틈이 생기게 마련이어서 자생적이고 수평적으로 일어나는 나눔으로 공백을 메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k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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