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멸종위기 맞은 '큰 새' 구하기 대작전

입력 2017-03-11 08:01  

[연합이매진]멸종위기 맞은 '큰 새' 구하기 대작전

'황새 박사' 박시룡 "황새가 행복하면 사람도 행복"

(청주=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실재가 사라지면 망각되기 마련이다. 한편으로는 간절한 그리움과 꿈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습지생태계의 최상위자이면서 한반도 텃새이기도 한 황새는 인간의 모진 억압과 탐욕으로 한때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한 생물학자의 헌신에 힘입어 비약의 날개를 이제 막 다시 펴고 있다. 사라지긴 쉬워도 돌아오기란 무척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정성이 지극하니 부활의 그날도 머지않았다. 황새야, 날자꾸나! 다시 한 번 훨훨 날아보자꾸나!





◇ 황새와 맺은 20년 인연


"다다다닥!" "다다다닥!"

충북 청주 한국교원대학교에 자리한 청람황새공원. 기자가 이 공원 안의 사육장으로 다가가자 고요하던 분위기가 돌연 긴장과 서성거림으로 뒤흔들렸다. 캐스터네츠 악기의 요란한 울림을 닮은 경계음들. 수십 마리의 황새는 이리저리 허둥거리며 저마다 부리를 세차게 부딪쳐댔다.

"황새는 부리 두드리기로 의사소통을 한답니다. 낯선 사람이 나타났으니 조심하라는 경계의 신호를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거지요. 인간이 입말과 몸말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황새 아빠'로 불리는 박시룡 황새생태연구원 전 원장(교원대 전 생물교육과 교수)은 황새공원을 안내하면서 사뭇 감회어린 표정으로 황새 얘기를 하나하나 들려줬다. 돌아보면 어언 20여 년 세월. 1996년 지금의 황새생태연구원 전신인 황새복원연구센터를 설립해 사라진 황새 복원에 앞장섰던 그는 지난 1월로 교원대 교수에서 정년퇴임하며 연구원 원장직도 함께 내려놨다.

박 전 원장은 정든 캠퍼스를 떠나기에 앞서 1월 18일 교내강당에서 '황새를 부탁해'라는 고별 강연을 하고 자신의 소망을 간절히 전했다.

"황새는 한반도 생태계를 리셋시킬 수 있는 핵심종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잠시 살다 떠나지만 황새는 이 땅에 남아 우리 후손들에게 온전한 생태계를 누리며 살 수 있게 할 겁니다. 바로 제가 꿈꾸는 세상은 황새가 있는 풍경입니다."

그는 고별 강연을 마치고 자신이 그린 황새 수채화 작품 100점을 황새공원의 타임캡슐에 묻었다.

지난 2월 초 교내 생태연구원에서 기자를 만난 박 전 원장은 업무인계로 바쁜 가운데도 지극한 황새 사랑의 마음을 차분히 보여줬다.

"생태연구원을 출범시킬 때 과연 황새 복원을 순조롭게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됐어요. 황새 복원은 장기간의 노력과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미완의 상태에서 떠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도 남지만 후학들이 잘 해주리라 믿어요."

그러면서 "황새의 완전 복원에 100년은 걸릴 듯한데, 나는 그중 20% 정도 수행했다고 본다"고 했다. 자연의 회복이 그만큼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황새 복원은 황새가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한다. 정책적 지속성을 갖고 사업을 진행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 전 원장이 황새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다. 동물행동학을 독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그는 1987년 교원대에 부임해 박쥐의 초음파와 휘파람새의 방언 연구에 몰두하다가 희귀조류 연구가인 김수일(작고) 교수의 제안을 받고 황새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한국처럼 황새 멸종 상태였던 일본이 복원에 나서고 MBC TV가 다큐멘터리프로그램 '황새야, 황새야'를 방송하는 등 잊혔던 황새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살아나던 때였다.

어린 시절의 황새에 대한 추억이 있느냐고 묻자 박 전 원장은 "없다. 다만 어려서부터 동물에 관심이 많았다. 학부 당시 국내에 없던 동물행동학에 관심을 갖고 유학을 떠난 배경이기도 하다"면서 대학 교단에서 우연히 만난 황새의 인연과 추억이 자신에겐 더없이 소중한 보람이자 행복이라고 뿌듯해했다.



◇ 황새는 어떤 새?…그 지극한 부부애



천연기념물 제199호이자 멸종위기 1급 보호동물로 지정된 황새는 과연 어떤 새일까?

습지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황새는 우선 크기부터가 남다르다. 두 발로 우뚝 선 키만 해도 1m에 이르고 날개를 펴면 그 길이가 2m에 달할 만큼 위풍당당하고 우아하다. 조상들이 '큰 새'라는 뜻으로 '한새'라고 했다가 이어 '황새'가 된 이유다.

사는 곳도 깊은 숲 속이나 높은 산언덕이 아니다. 풍광 좋고 드넓은 평야에 선 수령 100년 이상의 아름드리나무에 보란 듯이 둥지를 크게 틀고 논밭이나 하천, 호수 등지에서 미꾸라지, 붕어 같은 먹이를 잡아 살아간다. 수명은 30년가량이다.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사는 황새는 부리와 꼬리가 검은색인 반면에 머리와 몸통은 흰색이고 다리는 붉은색이다. 눈은 동공만 까맣고 가장자리가 노란색이며 눈 주변은 붉다. 유럽 황새는 부리가 붉은색이라는 점에서 아시아 황새와 차이가 난다.

박 전 원장은 "황새는 아시아 문화권에서 복을 가져다주는 새로, 유럽에서는 아이를 물어다 주는 새로 귀하게 대접받았다"며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아이를 낳고 키워가는 모습은 부부애 좋은 인간을 쏙 빼닮았다"고 감탄을 연발했다.

"암수 색깔이 같은 황새는 사람처럼 일부일처제랍니다. 생후 2~3년이 지나면 짝지어 번식하는데 산란 후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는 과정에서 부부가 내내 일을 나눠 함께 해요. 한쪽이 알을 품거나 새끼를 보살피는 동안 다른 한쪽은 먹이 사냥에 나서는 거죠. 덕분에 둥지는 항상 체온을 유지해 부화율이 높아지고 새끼가 태어나도 무방비로 천적에 노출되는 일이 없어요."

인간이 그렇듯 새끼를 낳아 기르는 과정이 황새 부모에게 커다란 희생과 수고를 요구한단다. 새끼가 한창 크기 시작하는 생후 4주 후부터는 하루 1kg 정도의 물고기를 먹여줘야 하는데 이는 어미의 하루 섭취량의 두 배가 넘는다. 이렇게 4~5마리의 새끼를 두 달여 동안 키우다 보면 어미는 온몸이 녹초가 될 지경. 자식을 위한 헌신적 지극정성이 인간의 그것을 빼닮았다는 이유다.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한번 부부로 연을 맺으면 이혼하는 법이 없다는 거지요. 적령기에 짝짓기를 할 때 대충 하는 일도 없어요. 신중에 신중을 기해 천생연분의 짝을 찾은 뒤 일편단심으로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겁니다. 황새복원사업 초창기 5년 동안 인위적 짝짓기를 해줬다가 모두 실패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우리 인간이 본받을 일이지요."







◇ 한반도에서 사라진 황새…주범은 농약 남용



한국의 토종 황새는 인가 근처에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점에서 외딴곳을 선호하는 러시아, 중국의 황새와 다르다. 녹음 우거진 거목에 새끼를 낳아 기른 뒤 겨울이 되면 새끼들과 함께 남녘으로 날아갔다가 이듬해 봄에 옛 둥지를 잊지 않고 찾아온다. 하지만 이런 친환경성과 인간친화력이 멸종을 재촉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박 전 원장은 황새의 멸종을 초래한 주된 요인으로 전국 산하를 황폐화시킨 한국전쟁과 무분별하고 과도한 농약 사용, 이로 인한 심각한 생태계 파괴를 꼽았다. 황새에게 한반도는 그야말로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전쟁으로 아름드리나무들이 마을 곳곳에서 사라지면서 둥지를 틀 수 없게 됐어요. 먹고살기에 급급한 시절이어서인지 사라져 가는 황새들에 누구도 눈길을 주지 못했고, 식량 증산에 몰입한 나머지 대단위 농지정리를 하는 등 생태여건이 급격히 나빠졌어요. 황새 생태계 파괴의 결정적 이유는 1960년대부터의 과도한 농약 살포였습니다. 엄청난 양의 유기소염제 살포로 농업생산은 크게 높아졌으나 쉽게 분해되지 않은 잔류농약의 피해가 생물체의 먹이사슬을 끊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 겁니다."

박 전 원장은 "이 살충제들이 논과 개울에 있던 물고기의 씨를 말렸다"며 "황새 한 마리가 하루에 최소 40마리의 물고기를 먹어야 하고 새끼 양육 시기에는 어미 황새 한 마리가 하루 200마리가량의 미꾸라지를 잡아야 하는데 온종일 무논과 개울을 돌아다녀 봐야 10마리도 건지기 힘든 지경이 돼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는 황새 수의 급격한 감소를 가져와 한때 100쌍 정도로 추산되던 황새가 1971년에 단 한 쌍으로 줄었고 그해 4월 수컷마저 밀렵꾼의 총에 맞아 죽었다. 남은 과부황새도 1983년 충북 음성에서 농약을 먹고 신음하던 중 발견돼 창경원 동물원으로 옮겨져 외로이 살다가 1994년 33세를 일기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한국과 일본의 황새가 멸종한 때는 공교롭게도 1971년으로 똑같다. 이 해를 고비로 인구 증가세가 반전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태환경의 척도인 황새가 농약사용의 영향을 받아 수정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알 껍질이 얇아져 부화율도 형편없어지는 것처럼 근래에 나타난 젊은 부부의 불임률 증가와 남성 호르몬의 급감도 이와 무관치 않을 거라는 얘기다. 반면에 감소하던 유럽 황새는 1970년대를 고비로 농약사용이 억제되면서 회복세로 돌아서 현재는 25만 쌍이 살고 있다. 그는 "농약대국인 우리나라는 캐나다의 21.3배, 유럽의 6.5배, 미국의 5.5배, 일본의 3배에 이르는 농약을 사용한다"며 "생물들이 살 수 없는 땅에 황새 먹이가 없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 황새, 희망으로 돌아오다



척박한 여건에서 시작된 황새 복원 움직임은 조금씩 성과를 거두고 있어 희망의 빛을 안겨준다.

교원대 황새복원연구센터는 1996년 러시아에서 살던 새끼 황새 한 쌍을 들여오고 독일에서 어미 2마리를 추가 반입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 결과 2002년 중국,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인공부화에 성공했다.

이어 2009년 충남 예산에 첫 황새 테마공원인 예산황새공원이 조성되고, 2013년에는 생태연구원이 교원대에 설립되는 등 복원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됐다. 이듬해에는 복원 황새 157마리 중 60마리가 예산황새공원으로 보내졌고, 2015년엔 이 공원에서 여덟 마리가 방사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지난해 봄에는 자연 방사된 황새들이 처음으로 부화에 성공했다.

"2002년 인공부화에 이어 지난해 자연부화까지 이뤄져 정말 감개무량했습니다. 특히 자연부화는 황새의 맥이 끊긴 지 45년 만의 쾌거로 1996년에 러시아 황새를 처음 들여올 때는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지요. 이로써 황새 복원의 새 이정표가 마련됐다고 봅니다."

복원 과정에서 아픔도 적지 않았다. 방사된 황새들이 전깃줄에 앉았다가 감전사하는 일이 잇달아 발생한 것. 2015년 12월 일본으로 건너간 황새가 비행기 기류 영향으로 죽은 데 이어 지난해 8월과 10월에는 감전사로 목숨을 잃기도 해 급기야 생태연구원이 방사 중단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국내에 사는 황새는 모두 180마리. 이 중 13마리는 자연 방사된 상태이고, 나머지는 청람황새공원(100마리)과 예산황새공원(67마리)에서 하늘을 날게될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황새가 마음 놓고 하늘을 날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우리 자연에는 황새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먹이터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박 전 원장은 "우선 농사짓는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이 새는 절대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농촌에 황새 먹이가 될 생물이 되살아나게 해야 하며 이를 위해 일본처럼 정부가 제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관련해 이른바 '황새법' 제정을 제안해놓은 상태다. '논생태관리기본법'으로도 불리는 황새법은 자기 논에 생물들이 살면 현행 쌀직불제에 따른 기본금 외에 생물 다양성 향상에 비례하는 지원금을 더 주는 제도다. 선진국들은 이미 이를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농민을 농산물 생산자로만 보지 않고 생태관리자로 인정해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이 이 법의 취지다.

박 전 원장은 공존과 상생의 가치와 소망을 이렇게 피력했다.

"황새가 행복하면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환경을 살리면 황새가 살아날 수 있듯이 황새가 살아나면 우리 농촌도 사뭇 다른 모습이 될 겁니다. 자연과 격리된 채 사육장에 갇혀 사는 황새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유럽의 농촌처럼 우리도 인간과 자연이 어울려 아름답게 살 수 있는 날이 꼭 왔으면 해요. 늦어도 '황새가 있는 풍경을 꿈꾸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타임캡슐이 개봉되는 2096년까지는요."







ido@yna.co.kr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3월호 [인터뷰]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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