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으로 세상을 바꾼 부부…9년간의 고난사 '러빙'

입력 2017-02-21 18:32  

사랑만으로 세상을 바꾼 부부…9년간의 고난사 '러빙'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작…콜린 퍼스 제작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1958년 6월2일 미국 버지니아주의 백인 남성 리처드 러빙과 인디언 피가 섞인 흑인 여성 밀드레드 지터는 워싱턴 D.C.까지 가서 결혼식을 올린다. 당시 버지니아주는 인종간 결혼을 법으로 금지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부부는 한 달여 뒤 체포돼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25년간 버지니아에서 추방된다. 사건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간다.

"개인은 인종 차이를 떠나 자유롭게 혼인 여부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 또한 국가는 이러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대법원은 1967년 6월12일 버지니아주의 인종간 결혼금지법이 위헌이라고 선언한다.

'러빙'은 미국 사법역사에 한 획을 그은 '러빙 대 버지니아주' 판결의 당사자 러빙 부부의 사연을 담은 영화다. 그러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의 안정적 선택지를 모두 거부한다. 주인공의 영웅적 면모를 부각하거나 최루성 신파를 투입하지 않고, 유능한 변호사가 법정에서 벌이는 짜릿한 반전도 없다. 심지어 러빙 부부는 대법원 재판에 출석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부부가 9년간 겪은 고난을 담담하고 시선으로 따라간다. 결혼 당시 부부는 스무 살 안팎이었고 리처드는 건설현장에서 미장이로 일했다. 흑인민권운동이 불붙기도 전인 1950년대 과감하게 결혼식을 올린 건 부부의 인권의식이 남달라서가 아니다. 담당 보안관과 리처드 어머니 말대로 분별력이 없고 철이 덜 들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차라리 사실에 가깝다. 부부가 위험한 결혼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밀드레드의 임신이었다.

버지니아 농촌마을에서 쫓겨난 부부는 워싱턴 D.C.로 이주해 세 자녀를 낳고 키운다. 그러나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에 일상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의욕 넘치는 인권변호사 버나드 코헨이 부부를 돕겠다고 나서지만 리처드는 머뭇거린다. 사회적 지위와 타고난 기질, 어느 모로 보나 영웅이 될 수 없었던 부부는 복잡한 도심에서 아들이 자동차에 치여 죽을 뻔한 사고를 겪고 나서야 고향으로 돌아가 버지니아주와 소송을 시작한다.





영화 후반부를 채우는 건 법정공방이 아니라 부부의 심리 묘사다. 밀드레드가 집에서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등 희망에 무게를 두는 반면 리처드의 머릿속은 불안으로 가득하다. 누군가 자신을 쫓는다는 의심에 사로잡힌 리처드는 시골길에서 자동차를 과격하게 몰아대기도 하는데, 영화 전체를 통틀어 긴장감이 가장 두드러지는 장면이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서도 요란한 극적 장치로 관객을 흥분시키지 않는다. 대신 다섯 명 가족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 리처드가 벽돌로 쌓아올리는 건물의 뼈대와 그의 표정에 시선을 자주 고정한다. 부부가 고난 끝에 역사적 판결을 이끌어낸 힘은 정의감이나 분노가 아니라 일상에 터잡은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리처드는 집을 지을 땅을 마련해 청혼했고, 대법관에게 전할 말 없느냐는 변호사의 질문에 그저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뻔하지만 안정적인 이야기 대신 러빙 부부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은 조엘 에저턴(리처드)과 루스 네이가(밀드레드)의 연기에 빚지고 있다. 두 배우는 과도한 감정 표출을 자제하면서도 수시로 변하는 불안과 희망의 혼합비율을 정확하게 그려낸다. 에티오피아 태생으로 아일랜드에서 자란 루스 네이가는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 영화가 국내 관객의 많은 선택을 받기는 어려울 듯하다. 절제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하는데다 50년 전 미국의 인종간 결혼이라는 소재 역시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달리 보면 민족·동성간 결혼 같은 현재진행형 문제들도 비춰진다. '킹스맨' 콜린 퍼스가 드론전쟁을 둘러싼 도덕적 딜레마를 다룬 '아이 인 더 스카이'(2015)에 이어 사회성 짙은 작품을 연달아 제작했다. 123분. 3월1일 개봉.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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