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위키 10년…유머로 키운 '잡학다식'의 숲

입력 2017-03-13 09:30  

나무위키 10년…유머로 키운 '잡학다식'의 숲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제치고 대표 온라인 사전으로

부실 출처 검증·편향성이 여전히 한계…불투명한 운영 체제도 고민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공자(孔子)를 찾으면 '초상화가 은근히 록가수 박완규를 닮았다'는 말이 나온다. 지중해 섬나라 '몰타' 항목에선 '나라 이름의 영어 형용사를 검색하면 멍멍이(말티즈)만 잔뜩 나옴'이란 경고문(?)이 등장한다. 기자와 동명이인인 한화 이글스 4번 타자 김태균을 치면 '한국 스포츠 사상 가장 별명이 많은 선수로, 대표 별명이 김별명'이라는 소개 글이 뜬다.

이 장난기 가득한 사이트는 현재 국내에서 한국판 위키피디아보다 더 인기가 좋은 온라인 집단지성 사전인 나무위키(옛 엔하위키)다.

이 세계 유일의 나무위키가 올해 탄생 10주년을 맞았다. 일본 애니메이션 등 하위문화(서브 컬처) 분야의 정보 사이트로 출발해 과학·학술·시사 등 여러 분야를 다루는 대안 사전으로 자랐다.

◇ "B급 정서로 빚은 사전"

13일 IT(정보기술) 업계에 따르면 나무위키는 트래픽 데이터 조사 업체인 '시밀러웹'이 지난달 1일 기준으로 집계한 국내 인기 웹사이트 순위에서 11위를 차지해 한국판 위키피디아(33위)를 크게 앞질렀다.

이처럼 위키피디아를 압도하는 대안 백과의 존재는 한국이 미국·일본·영국 등 다른 IT 선진국과 확실한 차별성을 갖게 하는 요소라 할 수 있다.

검색어에 사용자 선호도를 반영하는 구글 검색도 유독 한국에서는 대중문화·스포츠·게임·교육 등의 관련 키워드를 치면 위키피디아보다 나무위키 항목을 더 상위에 노출하는 경우가 많다.

나무위키는 시밀러웹 순위에서도 네이트(13위), 네이버쇼핑(14위), 11번가(15위) 등 유명 웹서비스와 루리웹(12위), 클리앙(22위), 뽐뿌(23위) 등 유명 커뮤니티를 앞서며 10위권 진입을 넘볼 정도로 인기가 높다.

나무위키는 2007년 3월1일 일본 애니메이션 '건담' 팬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인 '엔젤하이로'의 산하 위키 사전인 '엔하(엔젤하이로의 준말)위키'로 출범했다.






엔젤하이로는 'Angel Halo'(천사의 후광)란 영어 구절을 일본식으로 읽은 말로 애초 건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우주 병기의 이름이었다.

엔하위키는 2000년대 후반부터 애니메이션·만화·인터넷 유행어·동식물 등에 특화한 위키 사전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말장난 등 농담을 섞어 쓰는 엔하위키 특유의 서술 방식 때문에 딱딱한 설명을 싫어하는 독자층을 대거 선점했고, 다양한 마니아층이 글을 쓰고 내용을 업데이트하면서 콘텐츠 규모가 금세 커졌다.

2012년 리그베다 위키로 명칭을 바꾸면서는 종합 사전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문학·국제·역사·정치·시사·교육 등 정규 백과사전이 도맡던 영역까지 대거 항목을 확장했다.

올해 기준으로 나무위키의 본문 문서 수는 48만여 개로 추정되며, 이는 한국판 위키피디아(37만여개)를 훨씬 웃도는 규모다.

IT 정책 연구 단체인 오픈넷의 허광준 정책실장은 "'B급 정서'를 좋아하는 한국의 젊은 인터넷 문화가 지식을 공유하려는 열망과 만난 결과가 바로 엔하위키"라며 "한국판 위키피디아가 다른 나라 버전보다 규모가 작고 내용이 부족했던 것도 엔하위키의 인기를 북돋우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 "우리는 백과사전이 아니다"

그러나 나무위키는 IT 업계 등에서 한국판 위키피디아의 대안이 되기엔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보 공유 사이트와 백과사전의 성격이 뒤섞인 '정체불명' 서비스라는 비판도 나온다.

나무위키는 '종교 혐오성 기술 금지' '일반인 홍보 금지' 등 여러 편집 원칙을 명기하고 사용자들이 내용 오류를 수정하지만, 출처 명기 의무 등을 엄격하게 따지는 위키피디아와 비교해서는 서술 규정이 느슨하다.

자신의 주관적 의견을 농담과 섞어 자유롭게 서술하는 초창기 엔하위키의 문화가 여전히 강한 탓에, 편견을 배제하고 신중히 써야 할 사안에서는 '정확성'과 '편향성' 논란이 일 위험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 작년에는 '성평등주의'(Equalism)란 실제 존재하지 않는 단어가 '페미니즘을 대체하는 새 사조'라는 설명과 함께 나무위키에 등재됐고, 이후 '영국 여배우 엠마 왓슨이 언급한 사상' 등의 거짓 설명이 버젓이 붙으면서 사용자들 사이에서 큰 파문이 일기도 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의 박병호 교수는 "편향성이 강한 항목이 올라와도 이후 여러 사람의 편집과 토론을 거쳐 내용의 질이 개선되는 것이 위키 사이트의 특징"이라며 "최근 나무위키에서는 이런 긍정적 업데이트가 눈에 띄게 줄고 가벼운 말장난만 반복하려는 경향이 강해져 헌신적 편집자층의 확대가 절실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나무위키는 대문 화면에서 '우리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거나 편향적 서술이 있을 수 있다'는 문구를 최상위에 노출하고 있다.

◇ 누가 사이트를 소유하나?

불투명한 소유 구조도 골칫거리다. 위키미디어 재단이라는 명확한 비영리 법인이 이끄는 위키피디아와 달리 나무위키는 엔하위키·리그베다위키 시절부터 익명의 민간 운영자가 관리를 도맡았다. 콘텐츠 사유화나 영리화 등을 둘러싼 시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갈등은 2015년 4월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분쟁'으로 절정에 달했다. 리그베다 위키의 운영자가 몰래 부당 약관을 내세워 사전의 저작권을 독식하고 해당 콘텐츠로 돈벌이한다는 주장이 나오며 사용자들이 대거 떠난 사건이다.

나무위키는 이 사태 당시 콘텐츠 사유화에 반발한 일부 개발자들이 사전 데이터를 복사해 새로 만든 사이트다.






리그베다위키는 이후에도 운영을 계속하고 있지만 위키 사전 활성화의 엔진인 사용자층이 대다수 나무위키로 떠난 탓에 종전의 위상을 잃은 상태다.

현재 나무위키는 '우만레'(Umanle S.R.L)란 유한회사가 소유 및 운영을 맡고 있지만, 남미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이 회사 본거지라는 사실 외에 경영진이나 회사 현황 등에 관해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우만레는 비영리·영리 개념이 뒤섞인 경영 원칙을 내세운다.

나무위키는 온라인 광고 없이 100% 비영리로 관리하고 관련 사용자 커뮤니티인 '나무 라이브'에서만 영리사업을 해 서버 유지 등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한다는 것이다. 사전 편집 등 나무위키의 실제 운영은 사용자 자치에 맡기겠다고 했다.

운영 주체가 베일에 싸인 탓에 일부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의심이 적잖다. '콘텐츠 사유화를 하려는 것 아니냐', '우만레는 세금을 피해 사이트를 독식하려는 의도 아래 만들어진 페이퍼 컴퍼니(유령회사)다'라는 주장 등이 대표적 예다.

김낙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언론학)는 "불투명한 소유주의 임의적 투자에 의존하는 방식은 국내의 일부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례에서 보듯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며 "정식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유료 후원회원 모집·모금·투자 유치를 하는 것이 위키 사전의 영속성 면에서 더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t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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