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박근형 연출 "작품 판단은 결국 관객이 하는 것"

입력 2017-05-13 19:19  

'블랙리스트' 박근형 연출 "작품 판단은 결국 관객이 하는 것"

지원대상에서 배제됐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공연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작품에 대한 판단은 결국 관객이 합니다. 가슴을 울리고 좋은 추억을 남기는 공연을 하는 극장은 관객이 많아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자연히 관객이 없어지겠죠. 작품에 대한 가장 제대로 된 판단은 관객들이 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인 지원배제명단(블랙리스트)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던 박근형 연출은 13일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개막한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공연이 끝난 뒤 '예술검열'을 주제로 열린 대담에서 이같이 말했다.

박 연출은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논란의 도화선이 된 인물이다.

그는 2013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풍자를 담은 연극 '개구리'를 공연했다.

2016년 문화예술위원회는 지원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개구리'를 문제 삼아 이미 지원이 결정됐던 박 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를 제외하라고 심사위원들에게 압박했다.

그 결과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지원대상에서 탈락했고 이후 2015년 9월 국정감사에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런 내용을 폭로하며 블랙리스트 논란이 시작됐다. 박 연출은 이후에도 국립국악원의 협업프로그램에서 배제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당시 지원대상에서 탈락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지난해 서울시 산하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남산예술센터 무대에서 초연됐고 이날부터 남산예술센터에서 재공연을 시작했다.

박 연출은 "당시 지원금을 받았더라면 서울 대학로의 꽤 좋은 극장에서 공연했겠지만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실이 알려지며 오히려 지난해 일본 공연에서 공연비도 많이 받으며 좋은 극장에서 유쾌하게 공연을 했다"면서 "지난해 공연에서도 관객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 올해 또 좋은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게 된 만큼 저에겐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박 연출은 "'개구리'는 박정희·박근혜 대통령을 왜곡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나와 있던 이야기로 만든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자기검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작품을 만들 때 내가 만든 연극이 관객들에게 울림이 있을까, 내가 정말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걸까를 스스로와 약속하고 작업한다"면서 "가끔은 자기검열도 하지만 최근 사태로 생긴 것이 아니라 너무 상업적이지 않을까 하는 정도를 생각할 뿐, 눈치를 보거나 그런 것은 별로 없었다"고 밝혔다.






대담에는 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박 연출의 작품을 지원대상에서 배제하라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던 연극평론가 김미도씨도 참석해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김 평론가는 박근혜 정부의 검열실태를 담은 백서를 만드는 검열백서준비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이후 도 의원 등에게 이 사실을 알렸던 김 평론가는 "정치적인 보복이 있지 않을까 겁도 났고 떨면서 지냈다"면서 "이후에도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잡지에 대한 지원금이 끊기지 않을까 끊임없는 자기검열 속에서 살았다"고 털어놨다.

이날 관객으로 공연을 지켜본 도종환 의원도 즉석에서 요청을 받고 대담에 참여했다. 시인이기도 한 도 의원은 "이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돌아가 이념적인 잣대로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일이 없는 문화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도 의원은 이어 "정부가 할 일은 예술가들을 도울 수 있는 복지 등을 꼼꼼하게 설계하는 것"이라면서 "무대에서는 박수받지만, 조명이 꺼지면 막막해 하는 예술인들을 위한 여러 복지 설계 등을 고민하고 있고 제도로 뒷받침하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군인이 등장하는 4개의 에피소드를 엮어 국가폭력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작품이다. 2016년 대한민국에서 무장 탈영한 병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1945년 일본의 자살특공대에 자원한 조선인 청년들, 2004년 이라크 팔루자에서 미군에 식품을 납품하는 한국인을 납치해 살해한 무장단체, 2010년 백령도의 초계함 선원들의 이야기까지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을 교차해 보여주며 '국가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블랙리스트 논란이 오히려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지난해 초연 당시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우고 한 차례 추가공연까지 했다. 일본에도 초청돼 호평받았고 각종 연극상을 받는 등 평단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서울에서 다음달 4일까지 공연한 뒤 인천과 성남에서도 공연할 예정이다.

zitro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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