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참전 일본인 수기 '산산조각 난 신'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수많은 희생자를 낸 태평양전쟁은 일본 천황(일왕)의 개전 선언으로 시작해 항복 선언으로 끝났다.
16살의 나이에 해군에 자원해 참전했던 와타나베 기요시(1925∼1981) 역시 일왕의 명령에 따라 입대했다. 일왕제의 굳은 신봉자였던 그는 '천황폐하'의 백성으로 목숨을 바쳐 황은(皇恩)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쟁 중에도 '청정무구하게' 몸을 간직하다 일왕을 위해 몸을 바쳐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군인들이 가는 군인 위안소도 찾지 않았을 정도다.
패전 후 그는 '황공하지만' 일왕이 당연히 책임을 질 것으로 생각했다. 전쟁은 일왕 폐하의 '어명'에 따라 시작됐고 '어명'에 따라 종지부가 찍혔으며 일왕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로히토 일왕은 전쟁 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을뿐더러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적장 맥아더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와타나베는 "나의 천왕 폐하는 죽었다'고 선언하고 '천황제' 비판론자로 변신해간다.
신간 '산산조각 난 신'(글항아리 펴냄)은 일왕제를 떠받드는 신격화 교육을 받고 자란 평범한 일본인이 전후 책임을 회피하는 일왕의 모습을 보고 변화하는 모습을 담은 책이다. 와타나베가 1945년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쓴 일기를 묶은 것으로, 1977년 일본에서 출간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전후 일본이 민주주의 국가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그려 2000년 퓰리처상을 받은 존 다우어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의 책 '패배를 껴안고'에도 소개됐던 이야기다.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면서도 와타나베는 책임지지 않는 일왕에 분노와 배신에 치를 떤다. 일본인들이 모두 참회해야 한다는 '1억 총참회' 같은 구호를 들으며 일왕을 필두로 전쟁을 일으킨 책임자와 지도자들이 국민에게 참회해야 정상인데 그것을 흐지부지 넘긴 채 패전의 책임을 1억 명 모두의 탓으로 돌리는 사회에 분개한다.
그러던 어느 날 와타나베는 "천왕을 절대적인 존재로 믿었던 너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었는지 생각해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다.
일왕을 광신적으로 믿었던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무지를 반성한 그는 이후 책을 읽으며 전에는 몰랐던 세상에 조금씩 눈을 떠간다.
일왕의 막대한 재산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사람들, 전쟁 때문에 죽을 고생을 했지만, 오히려 일왕에게 고마워하면서 눈물까지 흘리는 일본 국민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왕의 전쟁책임에 대해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하는 신문과 라디오에도 문제가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는 1946년 일왕에게 편지를 보내며 일왕과 유대를 끊기에 이른다. 1946년 4월20일 일왕을 '당신'으로 호칭한 편지에서 '당신을 더는 믿을 수 없고 당신의 병사였던 지금까지의 인연을 끊고자 당신에게서 받은 금품을 돌려준다'고 적었다. 4년 3개월 29일 동안 해군 생활을 하면서 받은 봉급과 식비, 피복류, '천황'폐하의 하사품으로 받은 담배 3갑과 청주 1병까지 모두를 돈으로 환산해 4천282엔을 우편환으로 보낸 와타나베는 선언한다. "나는 이로써 당신에게 빚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장성주 옮김. 452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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