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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형상화한 연기론…연결에서 희망 찾고 싶었다"

입력 2017-06-06 11:00   수정 2017-06-06 11:17

"소설로 형상화한 연기론…연결에서 희망 찾고 싶었다"

연작소설집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 낸 이응준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우리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불교의 연기론을 모더니즘으로 어떻게 형상화할지 고민했어요. 연결돼 있음을 통해서 희망을 발견하고 싶었습니다."

이응준(47)이 새 소설집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문학과지성사)을 냈다. 단편 6편과 10쪽 안팎의 짧은 소설 3편을 묶었다. 죽음에의 충동에 시달리다가 끝내 자살의 문턱을 넘나드는 인물들이 숨바꼭질하듯 겹쳐 등장하는 연작소설집이다. 전체를 놓고 보면 자살에 관한 문학적 보고서로 읽힌다. 올해로 등단 28년차인 작가는 "제 문학적 임무는 일차적으로 마무리됐다고 생각한다. 이제 문학으로 새로운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맨 앞에 실린 '북극인 김철'은 여기저기 자살자의 유언이 적힌 한강철교에서 비쩍 마른 중년 남자가 구두와 양말을 도로변에 벗어둔 채 몸을 던질 준비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표제작인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은 수다스럽지만 자신을 멸시하는 전직 보수정당 국회의원 조근상이 필리핀에서 자살을 고민하는 이야기다.

자살을 결심할 정도라면 그 곡절은 밤새도록 이야기해도 모자랄 것이다. 국내 유일의 종자회사를 운영하던 김철은 다국적 기업의 농간에 망한 뒤 아내와 내연남, 부하직원을 살해하고 경찰에 쫓기고 있다. 조근상은 동성애자라는 '치명적' 약점을 숨긴 채 정치활동을 하다가 대학 동기인 친구에게 협박을 받고 정치판을 떠났다. 자기 모멸의 원인은 정치에 대한 미련이나 친구를 향한 배신감보다는, 자신의 방황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데 있다.

이유가 겉으로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자살도 있다. '소년은 어떻게 미로가 되는가'에서 건축가 문장규는 25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다가 돌연 뛰어내린다. 술을 마신 상태도 아니었고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의 자살은 예술가로서 탐미주의적 자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잘못 만든 작품은 이 세계에 두고두고 남아 사기를 치고 수백만 명의 영혼들을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잖아. 예술가의 진짜 범죄는 바로 그 지점에 있는 거야."(50쪽)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인물들은 시대를 비추는 역할에서 점점 물러나는 오늘날 작가들의 모습과 겹친다. 작가는 "현대의 사제"이며 소설은 "현존하는 모든 글쓰기들의 미학적 최고봉"이라는 게 이응준의 지론이다. "작가는 무용지물에 죽은 존재가 됐습니다.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은 거죠. 그런 힘든 마음이 인물들에 투영됐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이 단순하지는 않아요. 어느 누구도 허투루 죽음을 선택하거나 죽음에 굴복당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절망하는 이에게 누군가 내미는 애정의 손길을 보여준다. 삶의 방향은 예기치 못한 데서 급변한다. 김철은 투신하러 간 한강대교에서 이미 강물에 빠진 남자를 구하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조근상이 가방에 극약인 파라티온을 가지고 다니는 걸 보고 그를 돕는 이는 우연히 같은 숙소에 묵게 된 전직 대학교수 한승영이었다.

조근상의 마음을 돌리는 데는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승영은 그저 조근상의 고민을 들어주고 어깨에 손을 얹으며 위로했을 뿐이다. "거기서 승영은 소년, 두 주먹을 단단히 쥐고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지붕 위에 피뢰침처럼 서 있는 한 소년을 보았다." (144쪽)

조근상은 어울리지 않게 온종일 차이콥스키 교향곡을 듣는다. 그 역시 동성애자로서 평생 괴로워했다. 차이콥스키는 콜레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조근상은 그러나 비소 같은 독극물을 마셨을 때도 콜레라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는 점을 근거로 그가 자살했다는 '음모론'을 편다. 차이콥스키에게도 한승영 같은 인물이 있었다면 삶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작가가 던지는 질문이다. 278쪽. 1만2천원.

dad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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