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한류 효시 '사랑이 뭐길래' 中 상륙 20년

입력 2017-06-13 07:30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한류 효시 '사랑이 뭐길래' 中 상륙 20년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1997년 6월 15일 일요일 오전 9시, 중국 국영방송 CCTV 채널1에서 시청자에게 친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느낌의 TV 드라마가 흘러나왔다. 가부장적인 집안과 현대적 분위기의 집안이 사돈을 맺으며 벌어지는 일들을 유쾌하게 그려낸 한국의 '사랑이 뭐길래'였다. 시청자들은 전통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도 세련되고 도회적인 분위기를 담은 화면에 금세 빠져들었다. 신구 세대와 동서 문화 간의 충돌 과정을 코믹하게 묘사한 해프닝에 박장대소하는가 하면, 젊은 부부의 사랑 다툼에 흐뭇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시부모와 며느리가 부딪치며 소통하는 과정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이 뭐길래'는 MBC TV를 통해 1991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주말연속극으로 선보였을 때도 평균 59.6%로 역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극작가 김수현의 아기자기한 구성과 맛깔스러운 대사, 박철 PD의 노련한 연출, 주연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가 어우러져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렸다. 시집살이하는 여주인공 지은(하희라)이 고집 센 시아버지(이순재)와 허풍 심한 소아과 레지던트 남편 대발(최민수)을 슬기롭게 변화시킨다는 것이 기둥줄거리다. 여기에 여고 동창인 여순자(김혜자)와 한심애(윤여정)의 우정과 질투, 대조를 이루는 양가 아버지들의 분위기, 지은이 할머니 세 자매 역을 맡은 여운계·강부자·사미자의 구수한 입담, 지은 시누이와 친정 동생들로 등장한 임경옥·신애라·김찬우의 풋풋한 스타일 등이 흥미를 더했다.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은 누구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듬해 최수종·최진실 주연의 '질투'를 시작으로 몇몇 한국 드라마가 중국 전파를 탔어도 이처럼 히트한 사례는 없었다. '사랑이 뭐길래'는 12월 14일까지 매주 일요일 오전 9∼11시에 방송돼 평균 시청률 4.2%로 CCTV 수입 드라마 가운데 역대 2위에 랭크됐고 1억5천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들였다. CCTV는 1998년 7월부터 10월까지 채널2를 통해 재방송했다. 중장년 시청자는 가족공동체와 유교적 문화에 공감하고, 젊은이들은 연기자들의 세련된 용모와 첨단 패션에 열광했다.


중국 정부의 저임금 정책 때문에 부부의 맞벌이가 당연시되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신흥 부유층이 등장해 일부 기혼여성이 자녀교육과 가사를 담당하는 전통적 역할로 되돌아간 사회 변화를 인기 요인으로 꼽는 학자도 있다. 이민자 서울디지털대 중국학과 교수는 "그동안 경제적 무능력으로 인해 상실됐던 가부장적 권위의 부활을 보여줘 중국 남성들의 숨겨진 욕망을 채워주고 부르주아적 소비생활을 동경하는 여성들의 바람을 대리만족시켰다"면서 "만일 '사랑이 뭐길래'가 몇 해만 일찍 방송됐다면 그처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사랑이 뭐길래'가 방송된 1997년은 '한류 원년'으로 꼽힌다. '한류'(韓流)라는 말이 이때 등장해 1999년부터 중국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쓰였다. 한류는 '한국 대중문화 유행'(韓國 大衆文化 流行)의 줄임말이자 다른 문화가 매섭게 파고든다는 뜻의 '한류'(寒流)와 동음이의어다. 국내 언론에서는 2000년 2월 댄스그룹 HOT가 베이징(北京)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뒤 일반화됐다. 그 뒤 '가을동화' '대장금'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등이 바통을 이어받아 한국 드라마의 성공 신화를 써내려갔고, TV 드라마에서 비롯된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도 가요·영화·패션·게임·음식 등으로 확산했다. 일본·대만·베트남·몽골·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 등은 물론 남미와 유럽 등에 이르기까지 한류(Korean Wave)라는 신조어는 보통명사가 됐다.


한류의 진원지이자 한국 대중문화의 최대 시장인 중국이 지난해 7월부터 사드 배치의 보복 조치로 이른바 '한한령'(限韓令)을 내려 한국 문화콘텐츠에 빗장을 걸었다. 한중 합작 프로젝트가 갑자기 취소되는가 하면 한국의 배우나 CF 모델이 예고 없이 중국인으로 교체되기도 하고 한국 드라마가 방송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심지어 지난해 말부터 방송된 공유·김고은 주연의 tvN 드라마 '도깨비'가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微博) 등에서 인기를 누리자 뒤늦게 삭제 조처가 내려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대국답지 못하다' '옹졸하다' 등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한국의 정권교체 이후 한중관계 변화 가능성과 함께 한한령이 풀릴 조짐이 나타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인기 그룹 빅뱅이 출연한 음료 광고가 지난달부터 인터넷에서 선보이고 있으며 전지현과 송혜교 등 한류 스타들을 내세운 화장품 광고도 재개됐다. 싸이의 신곡 '팩트 폭행'도 가요 차트 상위권에 올라 있고 JTBC 드라마 '맨투맨'의 주인공 박해진은 웨이보에서 높은 검색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중국이 빗장을 푼다고 해도 한국의 문화콘텐츠들이 예전의 인기를 누릴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대중의 기호는 변덕스럽고 유행은 흘러가는 것이어서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질 높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또 시장을 다변화해야만 한류의 부활과 지속을 기대할 수 있다.





지난달 26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한국문화 동호회 19곳의 회원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헝가리 한류문화재단' 출범식이 열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 세계 88개국 1천652개의 한류 동호회에서 5천939만 명의 한류 팬이 활동하고 있지만 한류 동호회끼리 모여 법인을 만든 것은 처음이다. 회원은 200여 명으로 한국의 무용, 영화, 태권도, 서예, 가야금, 수공예, K-팝 등을 배우며 즐긴다. 한국(Han)과 당신(You)을 잇는다는 의미를 담아 재단 이름을 'Han-You'로 정했는데, 헝가리어로 발음하면 '한류'와 비슷하다고 한다. 외국인이 한류의 소비 대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향유하는 주체가 되는, 한류의 대상 지역과 장르가 동아시아와 대중문화에만 그치지 않고 동유럽과 다양한 분야로 확산하는 모범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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