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하나에 밥·국·반찬 받아 군번표로 떠먹었다"

입력 2017-06-22 16:21  

"그릇 하나에 밥·국·반찬 받아 군번표로 떠먹었다"

경남 함양 80대 참전용사들, '제주 옛 육군 제1 훈련소' 생활 회상

천막 안 가마니 깔고 내무생활, 5명 당 M1 소총 1정 지급




(함양=연합뉴스) 지성호 기자 = "그릇이 제대로 없어 밥그릇 하나에 밥과 국, 반찬을 모두 받았다. 숟가락도 젓가락도 없어 군번표로 떠서 먹었다"

22일 경남 함양군 휴천면 대천리에서 만난 박순길(88) 씨는 60여 년 전 제주 옛 육군 제1 훈련소 시절을 이렇게 떠올렸다.

박 씨가 제1 훈련소에 입소한 건 6·25전쟁 발발 다음 해인 1951년 12월이었다.

1950년 7월 대구광역시에서 창설한 제1 훈련소가 제주도 서귀포시 모슬포로 이전한 뒤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당시 훈련소는 전장에 배치할 신병 교육은 다급하면서도 훈련 등에 필요한 각종 시설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박 씨는 "숙소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천막 속에 짚으로 만든 가마니를 깔고 내무생활을 했다"며 "훈련 중에 부대 주변 돌담을 쌓거나 훈련장 교단을 만드는 등 훈련시설 건립에 동원되기도 했다"라고 소개했다.

새벽 시간에 거센 바람이 불면 훈련병들이 잠을 자다 일어나 천막이 날아가지 않도록 잡고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는 "먹을 물이 없어 몸을 씻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며 "이런 생활이 계속된 탓에 훈련병들 목과 손 등에 파리만한 이와 벼룩이 기어 다녔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부대 측은 이 등을 막으려고 해충을 박멸하는 디디티(DDT)를 훈련병 몸에 뿌렸다.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힘든 내무생활 속에서도 훈련은 정상적으로 진행돼 야간 정숙 보행, 사격, 유격 등 모든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훈련병 5명당 M1 소총 1정이 지급될 정도로 무기 수급 사정은 열악했다.

훈련병들은 전투복이나 전투화 대신 작업복에다 농구화를 신고 훈련했다.

전장에서 다친 장교들이 훈련 교관으로 나서 신병을 교육했다.

그는 "훈련소 생활이 너무 힘들어 옆에 누가 있고 어떤 건물이 있었는지도 별 기억이 없다"며 "제주도 모슬포 경치가 좋았는지도 생각이 아예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6주간 훈련 후 강원도 속초의 한 전장으로 배속됐다.

이어 동부전선 351고지에서 3개월간 북한군과 교전하며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함양군 보훈회관에서 만난 박 씨는 훈련 당시를 떠올리기 싫다며 몇 번이나 손사래를 치고 눈을 감았다.

함양군 함양읍에 사는 김병환(89) 씨는 1953년 3월 제1 훈련소에 입대했다.






박 씨보다 2년여 늦게 입대한 때문인지 천막 내무생활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도 훈련병들은 슬래브 지붕으로 된 건물 속 시멘트 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잠을 잤다.

그는 "3개월간 훈련 기간 장인과 사위가 같은 내무반에서 훈련받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장인의 호적상 출생 연도가 10여 년이나 늦게 등재된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훈련을 마친 뒤 경북 포항 부대에 배속됐는데 이후 이들이 어떻게 됐는지 소식을 듣지 못했다"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훈련소 생활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박 씨처럼 김 씨도 손을 흔들며 더는 말하기 싫다며 답을 피했다.

이들은 훈련 생활을 소개한 뒤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고 눈물만 글썽였다.

제1 훈련소는 1956년 1월 해체될 때까지 전방에 보낼 신병을 길러내 서울 재탈환 등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모슬봉 남부 능선 앞에 훈련소 본부가 있었다.






공병대와 헌병대, 정훈부, 법무부대, 통신대, 부사관학교, 군수 병참대 등이 자리했다.

현재 훈련소 정문 기둥과 지휘소 막사, 의무대 건물 등이 남아있다.

사단법인 제주 다문화 교육·복지연구원은 제주 제1 훈련소에서 훈련받은 전국 경험자를 대상으로 채록 구술조사를 시행하고 있다.

채록구술조사는 2017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 공모사업의 하나로 제주 근대 문화유산으로 비중 높은 제1 훈련소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위한 것이다.

또 훈련장, 천막 막사 등 부대 시설 위치와 규모를 파악하고, 제1 훈련소가 모슬포를 비롯한 제주 전체 사회에 가져온 생활상의 변화를 조사해 제주사회를 이해하는 주요 자료로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 다문화 교육·복지연구원은 제1 훈련소 출신 생존 병사들의 고증과 체험담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제주 다문화 교육·복지연구원 관계자는 "옛 육군 제1 훈련소는 국가문화유산으로 등재 요인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며 "복원되면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성도 있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shch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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