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 광화문 시국미사 이끈 나승구 신부

입력 2017-06-24 11:00   수정 2017-06-24 13:05

2년 반 광화문 시국미사 이끈 나승구 신부

"사랑의 다른 이름은 연대…아픈사람과 연대는 계속될 것"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아픈 사람들이 거기 있었으니까요."

24일 중구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만난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나승구(54) 신부는 '왜 시국미사를 했느냐'는 질문에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인터뷰용 사진을 촬영하겠다는 기자의 말에 "어떻게 찍어도 안 예쁘다"고 수줍게 웃는 나 신부의 팔목에는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색 팔찌가, 옷깃에는 노란 리본이 샛노랗게 자리했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위로하던 광화문 월요 시국미사가 만 2년 6개월의 대장정을 매듭지었다.

한국 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가 2014년 겨울 매주 수요일 광화문 광장에서 봉헌하며 시작된 시국미사는 2015년 11월부터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적극 결합해 월요일로 정례화됐다. 나 신부는 지난 12일 마지막 미사를 집전했다.

그는 2014년 7월 '유민아빠' 김영오 씨의 40여일 간의 단식,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세월호 언급 등 굵직한 사건이 반짝 주목받고 잊힌 사실을 지적했다.

극우 성향의 인터넷사이트인 일간베스트저장소 회원들과 자유청년연합 등은 진상규명을 호소하며 단식하는 사람들 앞에서 피자와 치킨을 시켜먹는 '폭식 퍼포먼스'까지 했다.

"세월호 특별법은 엉망이 됐고 2015년 2월 시행령은 한시적 조사만 하도록 만들어졌지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많이 아파했습니다. 그 아픔 속에 함께 있는 것이 우리 역할이었습니다."

한 주도 안 빼놓고 시국미사가 열리는 동안 아픈 사람들은 하나둘 광화문으로 모여들었다.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백남기 씨가 쓰러지자 농민들이 미사에 참석했고, 그해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가 반발 속에 강행되자 백발이 성성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신부님들을 찾았다.

"미사가 진행될수록 주제가 다양해졌습니다. 슬픔을 개인의 것으로 묶어두지 않고 사회적 연대의 자리로 끌고 나온 것이지요. 그건 상당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겁니다. 누군가는 이들을 가리켜 '시체 장사'라는 악한 이야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개의치 않고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라는 걸 드러낸 겁니다."

나 신부는 월요 시국미사를 매듭지은 이유에 대해 "더 하는 건 욕심일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시국미사의 목적은 이 자리를 통해 아픈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었어요. 그건 당연히 나라가 해야 할 일이었지요. 이제 새 정부가 들어섰고, 일은 해야 할 사람이 하는 게 옳습니다."







삶의 무게에 지쳐 사회 문제에 냉소적인 젊은이들도 '아픈 사람'에 속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 신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신부는 "상처받았고 처지를 벗어나기 힘들 것 같은 그분들과도 연대해야 합니다. 연대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랑이에요. 시각을 바꿔라 마라 할 게 아니지요. 분명한 건 그분들은 세월호에서 희생된 아이들처럼 모두 소중하다는 점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형 인명사고가 나면 경제적 비용을 이유로 구조를 중단하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예로 들었다.

"그렇게 누군가를 배제하고 끝내자는 건, 그만큼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거잖아요. 대개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스스로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 분들일수록 더 많은 사랑을 받아야 하고, 더 많이 소중한 것을 볼 기회를 줘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방 호수 '416호'가 눈에 띄었다.

일부러 세월호를 상징하는 416호로 배정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나 신부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올해 2월 14일 빈민사목위원장으로 부임해 와보니까 여기였어요. 이제 시국미사는 끝났지만 아픈 사람과 함께 하는 게 끝난 게 아닙니다. 함께 하는 방식 중 하나가 끝난 거지요. 우리가 더 아름다운 삶을 살 기회가 주어질 때까지 노력을 그치지 않을 겁니다."

cla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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