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쉼터·관광자원으로, 사랑을 속삭이는 공간으로 변신
공동체 기억 바탕으로 '옛것과 새것'이 함께 숨 쉬는 공간 변모
[※ 편집자 주 = 도시 외곽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대신 옛 도심을 되살리는 도시 재생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미국 뉴욕시는 2009년 맨해튼 서남쪽 폐(廢)고가 철로를 '하이라인'(Highline)이란 녹지 공원으로 꾸몄습니다. 이곳은 연간 6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관광 명소로 거듭났습니다. 도시 재생은 공동화한 낡은 도시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천덕꾸러기도 보물단지가 됩니다. 수명을 다한 폐역과 폐철로, 폐교, 옛 골목 등 '오래된 기억들'이 새 숨결을 얻으면서 힐링·관광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낡고 오래된 것이 관광객을 끌어모아 도시를 살리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보물단지로 거듭나 지역경제 활성화에 견인차 구실을 하는 공간들을 3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전북 전주 아중역은 2007년 전라선 복선화와 이용객 저조로 운행이 중단된 폐역이다.
2011년 최종 폐지가 결정된 뒤에도 오랫동안 방치된 까닭에 역사와 폐선로 주변은 잡초가 자라고 쓰레기가 쌓이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이를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전주시와 철로 소유주인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체험 행사인 레일바이크 사업 추진에 합의했다.
전주시로부터 민간위탁을 받은 한 업체가 지난해 3월부터 폐철로를 오가는 4인승 레일바이크 30대를 운영 중이다.
1.6㎞ 구간에는 여러 형태의 LED가 달려 있고 반환점에는 자동회전판이 설치돼 되돌아오도록 설계됐다.
주말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 또는 연인들이 즐겨찾는 명소로 자리매김 중이다.
전주시는 방치된 아중역사 주위도 1억8천여만 원을 들여 녹지와 휴식공간 등을 갖춘 '시티가든'으로 조성했다.
가든에 팥배나무와 꽃 복숭아, 공조팝나무 등 나무 14종 5천800여 그루와 억새, 화초 등 51종 3천900여 본을 심었다.
경관 블록과 계단도 새로 단장해 주민과 관광객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쉼터로 탈바꿈시켰다.
군산시 경암동 철길은 2008년부터 기차 운행이 중단됐지만, 고즈넉한 마을 모습과 어울려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철길로 손꼽힌다.
주택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기차가 다니던 이곳은 신문용지를 실어 나르던 2.5㎞의 짧은 철길로 2008년 기차 운행이 중단되면서 폐철로를 활용한 탐방 길로 다시 태어났다.
이젠 시간이 멈춰버린 곳, 1930년대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한 곳으로 불리며 추억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충북 제천 공전역도 힐링 공간을 탈바꿈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공전역은 제천시 북서쪽에 있는 작은 간이역으로 1959년 1월 문을 열었다.
충주와 제천을 통학하는 학생들과 장을 보러 나가려는 주민들이 이 역을 이용했다.
한때는 연간 10만 명이 넘게 이용하는 등 규모도 제법 컸다.
그러나 농촌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교통 발달로 이용객이 줄면서 2008년 12월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 폐역으로 전락했다.
역사는 4년간 방치되다 2012년 한 목공예가를 만나 '우드트레인'(Woodtrain)이라는 자연치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과거 기차역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면서 역 구내에서 편백을 이용한 공예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주변 비경과 힐링 공간이 접목되면 관광자원으로써 활용 가치가 높을 것이란 판단은 적중했다.
역무실은 작가 작업실로 이름만 바꾸었을 뿐 옛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동심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어른들도 찾는 휴식공간이 됐다.
인근에는 울고 넘는 박달재와 배론 성지, 탁사정 등 유명 관광지가 있어 힐링과 관광을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경북 문경에는 지역 8경 중 1경인 진남교반(鎭南橋畔) 부근 폐철로(석현터널)에 길이 540m, 폭 4.5m인 '오미자 테마 터널'이 조성됐다.
14∼15도 온도를 유지하는 이 터널은 터널 밖 50m 지점에서도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입구 안으로 20여m 들어서면 영상·자막으로 사랑을 고백하거나 가족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이벤트 홀이 있다.
200여m 들어가면 오미자 전시 코너, 조형물, 와인바가 있고 조금 더 들어서면 그림, 도자기, 예술품 등으로 장식한 갤러리가 있다.
터널 안쪽 100여m 구간에는 와인을 숙성하는 저장고를 마련했다.
아울러 폐철도 구간인 경북 포항시 북구 우현동 유류저장고∼신흥동 안포건널목 2.3㎞ 구간도 실개천과 인공 폭포를 갖춘 도심 숲으로 탈바꿈했다.
전북 순창 향가유원지 인근 폐철도 1.3㎞ 구간, 경춘선 운길산역∼춘천시계 48㎞ 구간에도 자전거길이 조성돼 라이더들의 방문지로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각지에서 폐역·폐철도를 휴식공간이나 관광자원으로 만드는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이유는 폐역·폐철도 활용으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많기 때문이다.
폐역·폐철도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도심 미관을 해치고, 우범지역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레일바이크, 공원 등의 공간으로 조성하면 미관을 살리는 동시에 휴식·레저공간 확충 등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쇠퇴하는 옛 도심의 재생과 아스팔트로 둘러싸인 도심 생태계 복원이라는 장점도 있다.
공동체의 기억을 바탕으로 역사·문화·힐링이 공존하는 공간, 옛것과 새것이 함께 숨 쉬는 터가 제4차 산업혁명을 맞은 이 시대에 빛을 발하고 있다.
바야흐로 옛것이 돈이 되고 결국 도시를 살리는 시대가 됐다.
sollens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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