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게 멈춰버린 내면의 풍경…김애란 소설집 '바깥은 여름'

입력 2017-06-29 08:40  

차갑게 멈춰버린 내면의 풍경…김애란 소설집 '바깥은 여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김애란(37)이 네 번째 소설집 '바깥은 여름'(문학동네)을 냈다. '비행운'(2012) 이후 발표한 단편 7편이 실렸다. 20대 시절, 작가는 특유의 명랑한 딴청으로 비루한 현실에 돌파구를 만들었다. 등단 이후 15년간 조금씩 스스로를 갱신한 그의 소설에는 어느새 웃음기가 줄었고 먹먹함이 짙어졌다.

표제는 '풍경의 쓸모'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182쪽) 예외 없이 무언가를 잃고 상처를 간직한 인물들은 한겨울 한국과 태국의 온도차 만큼이나 세상의 흐름에서 떨어져 있다. 바깥은 여름이라도 마음속은 겨울이다.

맨 앞에 실린 '입동'의 젊은 부부는 52개월 된 영우를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잃었다. 화자가 보험회사 직원이라는 이유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소문을 옮기는 이웃 사람들은 더 깊어질 수 없을 것 같았던 부부의 상처를 더욱 후벼 판다. 도배를 새로 하면서 발견한 영우의 흔적, 벽지에 적어놓은 제 이름을 보고는 흐느낄 수밖에 없다.

소설은 타인의 불행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향한다. 꽃잎 가득한 벽지와 영우의 글씨 앞에 주저앉아버린 아내에게서 화자는 '꽃매'를 본다. "아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꽃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36쪽)

공감의 한계 또는 소통과 이해가 불가능한 세계는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려진다. '가리는 손'에서는 한 노인이 십대들과 실랑이 끝에 숨지고, 그 장면을 목격한 재이가 주동자라는 오해를 받는다. 단지 아버지가 동남아시아인이라는 이유에서다. 작가는 다문화청소년에 대한 편견을 부정하지만 섣부른 판단도 내리지 않는다. '틀딱'이라는 말을 내뱉는 재이는 어쩌면 겉보기처럼 순수하고 약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침묵의 미래'는 김애란 소설로는 드물게 관념적인 우화다. 소수언어박물관에 전시된 이들은 사실상 감금된 상태로 관람객을 향해 모국어를 몇 마디 들려주고 춤추며 노래한다. 멸종위기에 처한 언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세워진 이 박물관에선 다른 부족끼리 말을 섞는 게 금지돼 있다. 의사소통 세계가 통일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맨 마지막에 수록된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 이르러서야 작가는 절망적 고통을 타개할 실마리를 던진다. 계곡 물에 빠진 학생을 구하려다 숨진 남편과, 혼자 남은 아내 명지의 이야기다. 스코틀랜드의 사촌 언니 집에 장기간 묵게 된 명지는 스마트폰 음성비서 시리(Siri)와 말을 섞는다. 시리는 주위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예의'라는 자질을 갖췄지만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다.

명지는 누군가의 삶을 구하러 자기 삶을 버린 남편에게 아직 화가 나 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과 함께 숨진 아이의 누나에게서 편지가 온다. 동생이 마지막에 움켜쥔 게 차가운 물이 아닌 선생님 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남편은 죽음이 아닌 삶으로 뛰어든 게 아닐까.

작가의 말이다. "오래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272쪽. 1만3천원.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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