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역사 2cm] 비키니 브랜드, 1946년 태평양 원폭 실험장 이름 본떴다

입력 2017-07-10 12:00  

[숨은 역사 2cm] 비키니 브랜드, 1946년 태평양 원폭 실험장 이름 본떴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체코의 최대 원자력 발전소가 최근 인턴 채용 때 비키니 수영복 차림의 심사를 한 사실이 알려져 네티즌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체코 서부 보헤미아에 있는 테멜린 원자력발전소는 예쁘고 어린 여성의 적극 지원을 희망한다는 인턴모집 광고를 낸 뒤 미인 대회 방식으로 채용심사를 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앳된 여성 10명에게 안전모를 씌우고 비키니를 입혀 발전소 냉각탑 앞에서 포즈를 취하도록 하고서 평점을 매겼다.

심사 때 촬영한 사진은 발전소 웹사이트와 페이스북에 올려놓고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추천해달라는 주문까지 했다.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으면 '2017 미스 에너지'로 뽑혀 인턴십 프로그램을 2주 동안 받는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사진을 본 네티즌은 분노했다.






"수영복을 입고 인턴십을 하라는 것이냐", "반쯤 벗은 여성으로 관심을 끌려는 역겨운 성차별이다"는 등 비판이 줄을 이었다.

악성 댓글이 쏟아지자 회사 측은 공식 사과문을 내고 "지원자 10명 모두 선발했다. 전문 기술 교육을 홍보하려고 이벤트를 열었는데 누를 끼쳐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원자력 발전소가 수영복 심사를 한 것은 생뚱맞지만, 비키니 브랜드는 탄생 당시 원자력과 깊은 인연이 있다.

수영복은 기원전 350년 전 그리스 여성이 입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어떤 모습인지는 알 수 없다.

투피스 수영복과 유사한 복식은 약 1천700년 전에 등장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있는 4세기 로마 시대 저택 '빌라 로마나 델 카살레' 모자이크 벽화에 늘씬한 여성 9명이 가슴과 중요 부분만 가린 채 공놀이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모자이크에는 후세에 ‘비키니 소녀들’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그런데도 당시 수영복을 비키니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여성 수영복은 476년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1천여 년 동안 사라진다. 로마제국과 운명을 같이 한 것이다.

고대 로마에서 여성이 재산권 행사나 직업선택 등에서 차별을 받았으나 일상 활동은 매우 자유로웠다.

침실에서는 남녀 지위가 역전돼 대개 남자는 여성 요구를 따라야만 했다.

이런 사회 환경에서 여성이 속옷 차림으로 수영이나 목욕을 하는 게 문제 될 리 없었다.

로마제국 몰락 이후에는 사정이 확 달라진다.






여성이 강이나 바다에서 신체 일부를 드러내는 것을 사회악으로 간주하고 탄압한 탓에 수영복은 자취를 감춘다.

여성 인권 암흑기라는 중세는 물론, 르네상스 시대(14~16세기) 이후에도 여성을 옥죄는 악습은 여전했다.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1466~1536년)조차 "모든 여인은 미친 암컷일 수도 있다"고 말했고, 저명한 계몽주의 학자 볼테르(1694~1778년)도 여성을 경멸했다.

평등운동의 선구자라는 장 자크 루소(1712~1778년) 역시 모든 여성 교육은 남성을 기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저서 에밀에 적었다.

1789년 프랑스 시민과 인간 권리 선언에도 "인간 권리는 태어나면서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기록했지만, 여성에게는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거부했다.

정조대는 중세 이후 여성 지위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잘 보여준다.

인류가 남성중심 사회로 들어선 이후 고안해 낸 최악의 발명품이라는 정조대는 십자군전쟁(1095~1291년) 당시 만들어졌다고 한다.

유럽 십자군 기사들은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원정 갈 때 아내나 애인에게 정조대를 채운다. 외도를 막으려는 욕심에서다.

혼인 연령대에 접어든 딸에게 부모가 정조대를 채웠다가 결혼식 당일 신랑에게 열쇠를 넘겨주기도 했다.

정조대를 착용한 여성의 고통은 심각했다.

쇠로 만든 정조대가 맨살과 오래 닿아 가려움증은 물론, 물집이나 욕창까지 생겼다.

정조대 열쇠를 지닌 남편이 전사하면 부인은 어쩔 수 없이 열녀 신세가 된다.

나중에는 열쇠가 없어도 정조대를 푸는 방법을 터득해 여성끼리 몰래 공유했다고 한다.

여성 수영복이 역사 무대에 복귀한 것은 19세기부터다.

의사들이 우울증 치료법으로 수영을 적극적으로 권고한 덕분이다.






1800년대에 유럽 철도망이 신설돼 해변 피서객이 늘어나고 섬유기술이 발달한 것도 수영복 보급에 한몫한다.

그때 수영복은 목과 팔을 덮고 무릎 밑까지 내려오는 모양으로 일반 외출복과 비슷했다. 물에 젖으면 무겁고 잘 마르지도 않았다.

몸에 짝 달라붙어 물이 묻으면 신체 굴곡이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 특징이다.

그때까지도 상류층 여성은 수영을 기피했다.

여성 수영복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끈 것은 1907년이다.

호주 출신의 유명 수영선수이자 배우인 아네트 켈러먼이 그해 미국 보스턴 해변에서 원피스 차림으로 홍보 사진을 찍다가 풍기문란 혐의로 체포됐다는 뉴스 때문이다.

물속 발레리나라는 별명을 가진 켈러먼은 영불 해협 수영횡단에 도전한 세계 최초의 여성이기도 하다.

수영복이 신체를 과감하게 드러낸 것은 1920년 이후다.

1차대전 이후 구시대 정치 이념과 옷차림, 성도덕을 불신하는 젊은층이 쾌락과 소비에 탐닉하던 시기다.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듯 목 부분을 둥글게 파고 등을 크게 드러낸 수영복이 유행했다. 팬티 길이는 무릎 위 3~4인치까지 올라갔다.

그러다가 1946년 서태평양 마셜군도 북동부 끝자락 비키니 섬 이름을 본뜬 수영복 브랜드가 등장한다.

비키니 섬에서 고강도 원폭실험이 일어난 지 나흘만이다.

미군은 원폭실험 이전에 원주민 176명을 인근 지역으로 쫓아내고 섬에는 돼지와 양을 풀어놨다.

핵폭발로 생기는 열과 방사능 낙진이 동물 생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준비가 끝나자 7월 1일과 25일 크로스 로드(Crossroad) 작전명으로 수중폭발과 공중폭발 실험을 한다.

1945년 일본 도쿄를, 6·25전쟁 때는 평양 등 주요 도시를 잿더미로 만든 B-29 폭격기가 공중에서 원자폭탄을 떨어뜨리는 방식의 크로스 로드 작전은 언론에 공개됐다.

막강한 핵 역량을 만방에 과시한 이 실험으로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던 비키니 환초(반지형 산호섬)는 순식간에 폐허로 바뀐다.

1954년에는 수소폭탄 실험도 이뤄진다.

핵융합 원리를 이용한 이 무기는 히로시마 원폭보다 무려 800배나 강력했다. 실험 전 미군이 예상한 위력을 훨씬 능가하는 파괴력이다.

핵무기 연료로 수소 동위원소를 사용했다고 해서 수소폭탄이라고 불렀다.

폭발력이 예상치를 훨씬 초과한 데다 날씨 예측마저 실패한 탓에 방사능 참사가 빚어진다.

인근 섬 3개가 통째로 사라지면서 직경 2km 크레이터(분화구)가 생기고 주변 바다에는 모든 생물이 멸종했다.

주변 섬 주민은 물론, 인근 해역에서 고기 잡던 일본 어선까지 방사성 낙진에 노출돼 어부 14명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숨진다.

핵 공포와 가공할 파괴력을 상징하는 괴물 '고질라' 시리즈 영화는 비키니 섬 수소폭탄 실험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됐다.

1946년 쫓겨난 비키니 섬 원주민은 1968년 귀환했다가 참사를 겪는다.

농작물이나 생물에 농축된 방사성 물질이 기준치를 넘은 탓에 갑상샘암이나 위암, 폐암 환자가 속출했고 기형아도 태어났다.

결국, 원주민은 1974년 비키니 섬을 다시 떠나야만 했다.

이후 비키니 환초는 냉전과 핵무기 경쟁을 상징하는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된다.

1946년 7월1일 비키니 섬 핵실험 성공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류는 지구 파멸 공포감에 떨어야 했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져 수십만 명이 숨진 지 1년도 안 돼 더욱 강력한 핵폭탄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불과 나흘 뒤인 7월5일 세계인을 다시 놀라게 하는 충격 소식이 전해진다.

프랑스 수영복 디자이너 루이 레아(1897~1984년)가 등과 배가 훤히 드러나고 가릴 곳만 살짝 덮은 수영복을 패션쇼에 내놓은 것이다.






원자폭탄만큼 충격적이라는 의미에서 수영복 이름을 비키니로 정하고 상표등록까지 마쳤다.

파격 노출에 유럽은 물론, 전 세계가 술렁거렸다.

비키니 파문은 관중 1만여명이 모인 패션쇼에서부터 나타났다.

노란 물방울무늬에 투피스로 된 해괴한 복장을 한 여성 모델이 갑자기 나타나자 관중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크게 벌리고서 다물지 못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 수영복에 익숙한 이들이 가슴과 국부만 가린 여성의 늘씬한 몸매를 보고서 깊은 충격에 빠져든 것이다.

로마 교황청은 부도덕한 옷이라고 맹비난했고,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일부 유럽 국가는 비키니 착용을 아예 금지했다.

소련은 자본주의 퇴폐성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고 혹평했다.

1951년 미스월드 콘테스트에서는 심사위원의 정신을 혼란하게 한다는 이유로 비키니 착용 금지령을 내린다.

비키니가 대중화한 데는 미국 할리우드 배우들의 도움이 컸다.

1947년 메릴린 먼로와 리타 헤이워드가 비키니를 입은 모습이 공개된 후 따라 입는 여성이 늘어났다.

유럽에서는 1956년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비키니 차림으로 영화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유행 패션이 된다.

'동방예의지국' 한국에 비키니가 소개된 것은 1961년으로 추정된다.

당시 의류업체 백화사가 신문 광고 후 시판에 들어간 '상어표 수영복'이 노출이 심한 투피스 스타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남존여비 인습이 강했던 터라 비키니는 여성 해방을 상징했다.

우리나라 해변을 점령한 비키니는 그동안 다양한 변신을 거듭했다.

단순히 물놀이할 때만 입는 게 아니라 각종 이벤트에도 활용됐다.






2011년 무주리조트는 노출 의상의 여인이 라이딩하며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비키니 스키 페스티벌을 열었다.

2017년에는 '스포츠 브라'를 착용한 여성들이 달리는 '1m 1원 심장병 환자 수술 지원 비키니 마라톤대회'가 추진됐다.

대회는 7월 2일 열릴 예정이었지만 준비 부족과 반대 여론 탓에 무산됐으나 2018년에 다시 추진한다고 한다.

고성능 원폭을 투하한 비키니 섬에서 암 환자가 속출했다는 점에서 심장병 어린이 돕기 마라톤대회 이름에 비키니가 들어가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 대회는 흥행을 목적으로 비키니 복장을 활용하는 성 상품화 상술이 아니냐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심장병 어린이를 돕겠다는 진정성과 순수성을 인정받으려면 대회 명칭부터 바꿔야 한다.

이름이 실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그래서 공자는 올바른 정치를 하려면 이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정명론을 설파했다.

오늘날에는 정명론이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스포츠 등에도 적용된다.

had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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