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섬유 짚 삼아 만든 노일훈 가구…"자연의 완벽미 보이나요"

입력 2017-07-14 10:56  

탄소섬유 짚 삼아 만든 노일훈 가구…"자연의 완벽미 보이나요"

유럽서 주목받는 디자이너·건축가, 플랫폼엘서 국내 첫 개인전

최첨단 소재·전통공예 결합…철저한 수작업으로 눈길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광섬유는 일정 각도 이상 꺾이면 빛이 납니다. 광섬유를 꼰 다음에, 자연의 포물선을 만들어내는 거죠."

남자가 살짝 손을 뻗자, 수십 가닥의 은빛 현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중력' '장력' '탄소섬유' 등의 단어를 쏟아낸 이 남자는 과학자가 아닌, 건축가 겸 디자이너 노일훈이다.

내년이면 마흔인 젊은 작가가 쌓아온 성취는 옹골차다. 중학교 1학년 때 가족과 함께 건너간 영국에서 성장한 작가는 2011년 디자이너 명장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런던 아람갤러리 초대를 받으면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프랑스 파리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관인 퐁피두센터는 그의 작품 활동을 2년간 지켜본 끝에 지난달 초기작 '라미 벤치'(Rami Bench·2013)를 소장했다. 퐁피두센터에 작품이 소장된 한국 작가는 거장 백남준(1932~2006)과 이우환(81) 정도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전시공간인 플랫폼엘 컨템포러리아트센터에서 작가의 첫 국내 개인전 '물질의 건축술'이 시작했다. 유럽에서 입지를 굳힌 작가의 뒤늦은 국내 데뷔전이다. 전시장으로 통하는 1층 계단에는 그의 작업을 이해할 수 있는 '맛보기' 설치작이 있다. 수백 개의 검정 실이 벽면에 지그재그로 걸린 모습이다.

"이렇게 실이 엉켜서 구조가 만들어지는데 사람의 핏줄이나 하늘의 번개에서도 이러한 양식이 발견돼요. 엉킬 때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각도가 계속 변하죠. 가장 쉬운 방법으로 힘을 분산해 힘 적으로 완벽한 구조를 유지하는 자연 현상을 전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그의 작업이 독특한 것은 광섬유, 탄소섬유 등 최첨단 소재를 쓰면서 한국 전통공예기법을 활용해 자연의 미학을 구현한다는 점이다. 손수 하는 작업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극찬한 작가는 "손으로 했을 때 진정한 장점이 나오는 것들을 늘 찾는다"고 설명했다.

"모든 것을 손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기계가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은 기계에게 넘길 수 있겠죠. 그러나 매듭 같은 것은 사람의 손으로밖에 할 수가 없어요. 손으로 하다 보니 작품 안에서도 다 조금씩 형태가 다른 것이 매력이죠."

작가는 이를 위해 전국 장인들로부터 짚공예, 대나무공예, 지승공예 등을 일일이 배우고 공부했다. 우리네 전통 밥상과 똑 닮은 '라미 사이드 테이블'은 탄소섬유 실타래를 일일이 꼰 뒤 열을 가해 굳힌 것이다. 그 왼쪽에는 퐁피두에 소장된 것보다 더 진화한 형태의 신작 '라미 벤치 서울'이 놓여 있다. 손으로 살짝 만져보았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단단하고 견고해 실제 가구로 쓰기에도 손색이 없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3층에 마련된 조명 설치 작업인 '파라볼라 파라디소' 시리즈다. 어둠 속으로 한 발 내딛기만 해도 탄성이 절로 나온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 형식의 조명은 거미줄 같기도, 하얀 국수면발 같기도 하다. 바닥에 놓인 아치 형태의 조명은 수묵화 같은 인상을 풍긴다. 이 또한 광섬유와 탄소섬유, LED소자, 비즈 등을 재료로 중력 등을 연구해 나온 결과물이다.

'구조'를 중시하는 현재 작업들은 그의 출발점이기도 한 건축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는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학교 AA스쿨을 졸업했으며 영국 왕립 건축가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사무실에서 일할 정도로 건축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던 그는 왜 '집을 짓지 않는 건축가'가 됐을까.






"건축이란 결국 건물화될 수밖에 없거든요. 결국 (건축주를 비롯한 현실과) 타협을 볼 수밖에 없고, 순수성을 잃을 수밖에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좀 더 소화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여기로 눈을 돌린 것이죠."

유럽에서 먼저 주목받은 작가는 2013년 한국으로 둥지를 옮겼다. 영등포 시장에 작업실을 마련했다가 올해 초 경기도 군포에 다시 이사했다. 그는 "영국이나 프랑스는 제조업 기반이 와해해 소재를 구하기도 어렵고 작업이 녹록지 않다. 지금 있는 곳이 공단이다 보니 작업하기 상당히 용이하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저는 자연의 완벽한 아름다운 요소들을 결정체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관객이 이 작품들을 보고 그 뒤에 있는 어마어마한 힘, 광활함, 위대함을 보신다고 하면 저는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이자 작가로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해요."

전시는 9월 17일까지. 문의 ☎ 02-6929-4462.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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