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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인생플랜] ⑭ "퇴직 후 텅빈 마음 봉사로 채웠어요"

입력 2017-07-30 09:00   수정 2017-07-30 09:10

[100세 시대 인생플랜] ⑭ "퇴직 후 텅빈 마음 봉사로 채웠어요"

퇴직 공무원 봉사단서 4년째 활동 국립축산과학원 출신 조병관씨

봉사 예찬론자 "봉사는 중독성이 있다, 봉사를 제2의 천직처럼"

(수원=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중독성이 있어요, 봉사가 중독증이 있다니까요."

이달 19일 오전 9시 경기 수원시 권선구 수봉로에 있는 자혜직업재활센터.

조선 마지막 황태자비인 가혜(佳惠) 이방자 여사가 설립한 사단법인 자행회 산하에 있는 18세 이상 지적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이다.

센터 3층 작업장에서 수원시상록봉사단 조병관(67) 단장을 만났다.

상록봉사단은 공무원연금공단 퇴직 공무원이 만든 봉사단체다.

이날 작업장에는 지적장애인 10여 명과 조씨 같은 퇴직 공무원 자원봉사자 7명이 화장실 비데에 들어가는 호스의 부품을 조립하고 있었다.






부품을 납품하는 대가로 장애인들은 한 달 작업량에 따라 수십만원을 손에 쥔다.

조씨는 이들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14년부터 매주 월∼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장애우들의 손발이 되고 있다.

이곳에서 봉사하기 전까지 조씨는 장애우를 한 번도 접할 기회가 없었다.

처음 이곳에서 만난 한 장애우가 별다른 이유 없이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당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조씨는 "장애우들이라 특별히 힘든 것은 없다. 다만, 가끔 대화가 안 통할 때가 있는데, 손짓과 눈빛으로 의사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다"면서 "일반인과 똑같은 착한 마음을 가진 장애우들을 사회가 더 따뜻하게 바라봐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조씨는 오후 4시간 동안 수원박물관에서 문화해설사로 변신해 자원봉사를 한다.

수원의 역사와 발굴 유물, 고문서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박물관을 찾는 학생과 젊은이들에게 친절히 설명하는 일도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는 봉사가 없는 주말을 이용해 고향인 경기 화성에 있는 선친이 물려준 밭에서 들깨, 고구마 등을 돌보는 농부이기도 하다.

봉사와 농사를 병행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조씨는 봉사 때문에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집에 있으면 봉사하러 나가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아무래도 봉사에 중독된 것 같다"는 말로 대신했다.

조씨는 9년 전까지만 해도 경기 수원에 있는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축산기술과장으로 근무하던 공무원이었다.

농촌지도직 공무원으로 시작해 농촌진흥청에서 공보실장, 축산지도관 등의 업무를 하다가 2008년 정년퇴직을 2년여 앞두고 35년간 열정을 바친 공직을 떠났다.

오로지 직장밖에 모른 채 한 방향으로 달려오다가 퇴직을 맞은 조씨는 여느 퇴직 공무원들처럼 취미활동도 하고 밭농사를 지으며 시간을 보냈다.

퇴직 후 4년 동안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취미활동을 하고 다니면서도 왠지 모르게 마음 한쪽에 자리 잡은 허전함이 가시지 않았다.

한참 마음이 안정되지 않을 때 시골에서 작업하다 안전사고가 나 치아와 턱뼈를 심하게 다치는 일까지 겪었다.

그때 운명처럼 찾아온 것이 봉사였다.






2013년 공무원연금공단에서 퇴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자원봉사단체인 상록봉사단을 결성하고 단원들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떴다.

조씨는 곧바로 초창기 봉사단원으로 가입했다.

"퇴직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마음만은 젊었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죠. 내가 가진 재능을 다시 한 번 발휘해 보자는 다짐이 저를 봉사단으로 이끌었던 같습니다."

그의 첫 번째 봉사임무는 수원시가 그해 9월 개최한 '생태교통 수원 2013' 축제를 앞두고 낙후한 행궁동 마을의 주택 울타리와 벽에 페인트를 칠하는 일이었다.

'생태교통수원'은 행궁동 주민들이 한 달간 차량을 모두 반납한 채 자전거와 대중교통만 이용해 살아보는 프로젝트 행사였다.

주민들은 처음에는 차 없이 살 수 없다며 반발했다.

조씨는 다른 상록봉사단원 30여 명과 함께 한여름 땡볕 속에 페인트칠에 나섰다.

화가 난 주민들은 칙칙한 골목길 담벼락이 화사한 색깔로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도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았다.

그래도 조씨 등 봉사단원들은 이른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하루 4시간씩 붓을 잡고 묵묵히 봉사를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마을 주민들이 나이 먹은 봉사단원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 막걸리와 삶은 국수를 새참으로 가져왔다.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봉사단의 노력에 감동한 주민들이 함께 붓을 들면서 9월 행사를 앞두고 행궁동 마을의 골목길은 누가 보더라도 다시 찾고 싶을 정도로 깔끔하고 매력적인 곳으로 변모했다.

조씨는 이 페인트칠이 봉사에 대한 매력을 느낀 시발점이라고 했다.

그는 "더운 여름에 진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나 '우리도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니까 변한다'는 마음이 들면서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면서 "아, 이게 봉사의 참맛이구나, 봉사라는 게 큰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생태교통수원 행사에서 봉사활동의 보람을 맛본 조씨는 곧이어 지금의 자혜직업재활센터를 소개받아 봉사를 제2의 천직처럼 이어가고 있다.

그는 봉사 예찬론자다. 전도사처럼 주변 사람에게 봉사할 것을 권하고 있다.

조씨는 "퇴직 후 찾아온 텅 빈 마음이 봉사를 통해 꽉 채워지는 느낌"이라면서 "봉사를 하지 않으면 허전함이 다시 내 마음을 차지할 것 같아 제가 할 수 있을 때까지 봉사를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봉사단에서 조금 일하다가 나가는 사람도 많은데, 그들은 봉사의 참맛을 알지 못하거나 봉사에 중독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누구든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 봉사를 많이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hedgeho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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