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역사 2cm] '수염 못 깎는다' 러시아 국민, 세금 매기자 앞다퉈 싹둑

입력 2017-07-26 08:00  

[숨은 역사 2cm] '수염 못 깎는다' 러시아 국민, 세금 매기자 앞다퉈 싹둑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문재인 정부에서 세금 인상 논의가 본격화했다.

최저임금 지원과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전환, 서민복지 확대 등을 포함한 100대 국정과제 이행에 필요한 178조 원을 조달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더불어민주당은 대기업과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각각 법인세와 소득세를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방안으로는 연간 추가 세수가 약 3조7천800억원에 그쳐 국정과제 실천에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와 여당이 증세 대상자를 극소수로 한정한 것은 민심 이반을 우려한 때문이다.

야권에서는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 활동 부담을 늘리는 등 부작용이 크다며 증세안을 반대한다.

대기업과 고소득자만 겨냥한 증세는 꼼수라며 세출 구조부터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금은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 늘 존재했으나 워낙 예민한 사안이어서 미세한 조정만 해도 여론은 요동쳤다.

구체제를 없애고 지배 세력을 교체하는 대혁명이나 민란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세금 문제가 도화선이 돼 국가 흥망을 가른 사례는 부지기수다.

근대 헌법의 기원이 된 영국 대헌장(마그나카르타)은 군주의 징세권과 형벌권 등을 제한하려는 취지에서 탄생했다.

왕이라도 귀족 동의 없이 세금을 부과하지 못하도록 명시한 대헌장 12조는 영국 의회 민주주의 시발점인 1688년 명예혁명, 1776년 미국 독립선언,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등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 13개 주는 신문, 출판물, 증명서 등에 인지 부착을 의무화한 법이나 설탕법 등으로 조세 부담이 많이 늘어나자 1776년 영국을 상대로 독립을 선언한다.

근대 민주주의를 낳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은 루이 16세 왕이 세금을 올려서 부족한 정부 곳간을 채우려고 삼부회를 소집한 게 발단이 돼 일어났다.

프랑스는 오랜 전쟁 등으로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는데도 귀족과 성직자 등 특권층을 제외한 농민과 노동자, 상공인에게만 세금을 매긴 탓에 국민 불만이 최고조로 증폭됐다.

무더기 화폐 발행으로 생필품 가격이 오르고 흉작으로 빵값까지 급등하자 생존 위기를 느낀 시민들이 봉건주의 상징인 바스티유감옥을 습격하면서 혁명이 시작됐다.

소금세도 악명을 떨쳤다. 시민들은 불필요한 소금이라도 매년 일정량을 고가로 매입해야만 했다.

이 때문에 세금 징수원들은 혁명 기간에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근대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앙투안 라부아지에(1743~1794년)도 그때 희생된다.

연소 반응에 필요한 기체에 산소라는 이름을 붙이고 '질량보존의 법칙' 등 업적을 남겼는데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1768년부터 소금, 담배, 주류 등과 관련한 세금을 거두는 단체에서 일한 전력 때문이다.

혁명 광장(콩코르드 광장)에서 목이 달아난 그의 시신은 장례식도 치르지 못한 채 공동묘지에 버려졌다.

라부아지에의 조수로 일한 엘 테일은 미국으로 피신해 화학 회사를 세웠는데 그 업체가 현재 세계 500대 기업에 들어가는 듀폰이다.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에 활용하는 로제타 스톤도 조세 저항 때문에 생겼다.

기원전 200년께 중과세 정책에 반발한 이집트 군대가 폭동을 일으키자 정부가 밀린 세금을 면제해 주기로 약속하고서 증표로 돌에 새긴 것이 로제타 스톤이다.

1811년 평안도 홍경래 난을 시작으로 조선 후기 민란이 전국으로 확산한 원인도 가혹한 징세와 지방관 부패다.

조세는 양반과 노비를 제외하고 평민에게만 부과했고, 다섯 가구를 하나로 묶는 오가작통제를 통해 세금을 못 내는 집이 있으면 나머지 가구가 충당하도록 해 백성 고통이 컸다.

세금에 내재한 폭발성을 의식해 조세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정부 재정을 늘리는 묘책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많았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2천800년께 오줌에 세금을 매겼다.

비누가 없던 그 시절에 오줌이 빨래 표백제로 인기를 끌자 거래 분량에 비례해 세금 액수를 늘렸다.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9~79년)도 세탁용 소변에 세금을 부과했다. 이 때문에 세탁소 옆에 소변 수집용 공중화장실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영국 명예혁명으로 왕이 된 윌리엄도 1696년 기발한 세금을 도입한다.

고급 주택에 창문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가구당 창문 숫자를 기준으로 세금을 거뒀다.

당시 창문은 고가 유리로 제작된 일종의 사치품으로 부유층 주택에 많아 조세 저항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절세 목적으로 창문을 없애거나 신축 주택에 창을 내지 않아 집안 통풍이 안 되고 어두워져 우울증 환자가 늘어났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1784년 모자세도 선보였다.

남자들이 모자를 신사 품위를 나타내는 필수품으로 여겨 최대한 많이 가지려 하는 경향을 노려 신설한 세금이다.

프랑스도 혁명 직후인 1798년 귀족들에게 창문세를 부과했다.

영국과 달리 창문 숫자가 아니라 폭을 기준으로 세금을 정했다. 주택이 비쌀수록 창문 폭이 넓은 시대상을 반영한 조처다.

이후 세금을 덜 내려고 창문 폭을 줄이고 그 대신 길이를 늘이는 건축 양식이 유행한다.

러시아 표트르 황제(1672~1725년)는 수염세를 제정해 일거양득 효과를 거둔다.

표트르는 러시아 후진성의 상징인 남성의 긴 수염을 자르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저항이 예상외로 컸다. 수염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해주는 성스러운 것이라며 대부분 깎기를 거부했다.

이때 수염세 카드를 꺼내 든다.

수염이 긴 사람에게 세금을 매기자 덥수룩한 턱수염은 머잖아 사라지고 정부 재정도 많이 늘어났다.






1895년 남자의 상투를 자르도록 한 조선 단발령이 유학자 등의 극한 반발로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과 대비된다.

조선 관리들은 칼과 가위를 들고 다니며 머리를 깎도록 강요했을 뿐 두발을 자르는 것은 불효의 극치라는 백성의 정서를 읽지 못해 단발령이 실패한 것이다.

스웨덴은 온라인 포르노에 세금을 매기는 웹캠 스트리퍼세를 2009년 제정했다.

세무 당국은 온라인 웹캠으로 스트립쇼를 보여주고 돈을 버는 여성들을 수시로 단속해 고액 세금을 거뒀다.

세금을 급격하게 올린 지도자들은 후폭풍에 휩싸였으나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년)는 예외다.

대공황기인 1933년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루스벨트는 경제 회복과 2차대전 참전 등을 위해 '세금 폭탄' 정책을 쓴다.

대선에 4차례 당선된 루스벨트는 소득세 상한선을 첫 임기 때 63%까지 올리고 재선 후에는 79%까지 높였다. 한국의 현재 소득세 최고 세율은 38%다.

기업 이익에 부과하는 법인세도 껑충 뛰었다.

법인세 최고 세율이 1929년 14% 미만이었으나 1955년에는 45%까지 치솟았다. 상속세도 20%에서 최고 77%까지 급등했다.

기업이나 개인이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대부분 세금으로 내게 되자 부유층이 줄고 중산층은 두껍게 형성됐다.

1920년대까지 좌우로 갈라져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이던 정치 문화도 화해와 협력 위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루스벨트는 대공황과 전쟁을 극복한 지도자, 고삐 풀린 자본주의에 맞서 서민 권익을 향상한 개혁 정치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급격한 세금 인상 탓에 기업인들의 투자 의욕이 꺾여 불황 극복이 늦어졌고 실업난 해결도 더뎌졌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문재인 정부는 증세가 여론에 미칠 악영향을 의식해 법인·소득세 최고 세율을 올리는 취지를 잘 표현하는 이름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여권은 증세라는 단어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조세 정의', '명예 과세', '사랑 과세', '한정 과세' 등 표현을 쓴다.

증세 대상이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로 한정된다는 점을 부각함으로써 일반 국민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에서다.

야당에서는 이번 증세에 '세금 폭탄', '표적 과세', '징벌 증세'등 이름을 붙여 반대 여론을 키우려고 애쓴다.

정치권이 각자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려고 이른바 '네이밍 경쟁'에 돌입한 것이다.

저출산·고령화와 소득 양극화 등 현안을 해결하려면 재원 마련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는 네이밍 경쟁을 할 게 아니라 이번 기회에 포괄적 증세를 공론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실직과 노후 위험에 대비하려면 모든 국민이 비용을 치러야 하고, 공공복지를 확대할 때 비로소 침체에 빠진 경제도 활성화하기에 증세 문제는 은밀하게 다룰 사안이 아니다.







세종대왕은 세금 문제를 정공법으로 돌파해 성공한 롤 모델이다.

세종은 백성의 삶을 개선할 목적으로 조세 개혁안을 만들고서 곧바로 공론화 과정을 거친다.

농민 등 17만여 명에게 개혁안을 설명한 뒤 찬반 의견을 듣고서 부작용을 보완해 시행했다.

교통과 통신 사정이 낙후된 조선에서도 광범위한 여론을 수렴한 만큼 우리 정치권도 증세안을 국민에게 진솔하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한다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정치권이 네이밍 경쟁과 같은 편법에 집착하면 당장 편안할지라도 장기적으로는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던 재상 콜베르는 거위가 비명을 지르지 않게 하면서도 깃털은 최대한 많이 뽑는 것이 조세 원칙이라며 꼼수를 부렸다.

귀족과 성직자 등 특권층이 회피한 조세 부담을 간접세 인상 등 수법을 통해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떠넘긴 것이다.

국민의 눈을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증세는 100여 년 후 프랑스 혁명을 불러와 200여 년간 지속한 부르봉 왕가가 몰락한다.

had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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