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증가·기업 이전 촉진…지역경제 활성화 효과
부동산 투기에 인구 유출 걱정…통과지역 공동화 우려도
(전국종합=연합뉴스) "고속도로가 뚫리고 나서 매출이 곤두박질쳤지요. 차들이 그냥 휙 지나가다 보니 들르는 손님이 없어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식당과 도소매업을 하는 이종구(56)씨는 고속도로 얘기를 꺼내자마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된 지 한 달, 동네를 지나는 국도를 이용하는 차량이 거의 없다 보니 매출이 지난해 이맘때보다 80%가량 줄었다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속도로 종착지인 양양과 속초지역 항포구 주변의 음식점 상인과 해수욕장은 고속도로 개통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올여름 이 지역 해수욕장을 찾는 관광객이 작년보다 70% 증가했다. 궂은 날씨 탓에 '초대박'은 아니더라도 관광객의 증가는 피부로 와 닿는다고 한다.
양양 수산항에서 횟집은 운영하는 김모(52)씨는 "지난달 고속도로 개통 첫날과 이튿날은 손님이 엄청나게 많았다"며 "이후 다소 주춤한 느낌이지만 지난해보다는 확실히 늘어난 것을 실감한다. 주변 횟집들과 다 비슷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말 그대로 '고속도로 전성기'를 맞았지만 지역마다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고 있다.
확충된 도로망을 타고 여행객이 몰려들고 물동량이 늘면서 관광·여가 산업이 활기를 띠고 지역 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은 게 사실이다.
반면, 기대감 넘치는 효과 뒤에는 불안한 동향도 포착되고 있다.
우선 전국 어디서든 당일치기 관광이 가능해져 체류 관광객은 줄고 있다.
투기세력 유입으로 땅값과 집값이 치솟아 원주민의 거주 여건이 악화하고 난개발 우려도 나온다.
인구·소비층의 역외 유출 등 이른바 '빨대 효과(Straw Effect)'와 특정 지역 교통체증 유발은 고속화 시대에 풀어야 할 숙제를 던지고 있다.
◇ '공급이 수요 창출'…관광객·경제활동 인구 늘어
경북 영덕군과 충남 당진시는 사회간접자본(SOC) 업계의 격언대로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 사례로 꼽힌다.
낙후했던 영덕군에는 관광객이 밀려오고, 당진은 도시가 급격하게 팽창했다. 이런 변화는 고속도로 개통 덕분이다.
지난해 12월 개통한 영덕상주 고속도로는 운행거리를 160㎞에서 108㎞로, 주행 시간을 145분에서 65분으로 단축했다.
모바일 빅데이터 분석 결과 개통 초기 영덕군을 방문한 관광객은 33만3천명이다. 개통 전 15만4천명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올해 1∼5월까지 개통 후 5개월간 417만7천700명이 영덕을 찾았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357만3천800명보다 15% 증가한 수치다.
당진시는 2001년 서해안고속도로, 2005년 대전통영고속도로 연속 개통 이후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 곳이다.
2003년 11만7천명까지 줄었던 인구는 현재 17만명으로 증가해 2012년 시(市)로 승격했다. 고속도로망을 타고 10년 연속 50곳 이상의 기업이 입주하면서 경제활동층 유입이 인구 증가를 주도했다.
◇ '스쳐 지나면 그만'…국도 주변 공동화 '유령도시' 우려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으로 강원도는 기대감과 고민을 함께 안게 됐다.
종착지인 양양군과 속초시는 초고층 호텔과 아파트 건축붐이 휘몰아쳐 부동산이 활황을 맞았다.
속초의 경우 올해 1∼4월 누적 땅값 상승률이 1.516%나 됐다. 강원지역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지난 3월에는 속초지역 한 아파트 분양률이 최고 53대 1을 기록했다.
강원도 환동해본부 집계를 보면 속초해수욕장은 이달 22일까지 올여름 누적관광객이 28만7천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에 가까운 11만6천여명이 늘었다.
반면, 고속도로 개통 이전에 동해안 접근 도로였던 44번 국도는 시내버스나 완행버스가 다니는 시골 도로로 전락했다. 외지 차량이 가물에 콩 나듯 보이니 홍천군과 인제군 지역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고속도로 개통 이후 44번 국도의 통행량은 ⅓ 수준으로 급감했다. 전국 황태 생산의 70%를 차지하는 인제군 북면 용대리 상권은 사실상 붕괴 위기에 놓였다.
이달 중순 찾아간 국도변 식당가는 주차장이 텅 비어 있었다. 30여개 테이블이 놓인 한 음식점 안에는 손님이 세 명뿐이었다.
차량 통행량이 매출 그 자체인 주유소도 직격탄을 맞았다.
용대리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최광훈(59)씨는 "작년 이맘때와 비교해 매출이 정확히 반토막 났다"며 "주변 주유소들도 수입이 큰 폭으로 떨어져 울상"이라고 하소연했다.
강원도와 인제군이 부랴부랴 3천603억원 규모의 지원책을 내놨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고속도로 통과지역은 관광객 대신 부동산 투기세력이 들어오며 고민을 더 깊게 한다. 나들목(IC) 주변 땅값은 호가만 치솟았을 뿐 실제 수요자의 발길은 뜸한 상태다.
경북 영덕군도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올라 되레 귀농·귀촌 인구의 유입을 막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한다. 영덕군 인구는 지난해 말 3만9천52명에서 올해 6월 말 3만8천703명으로 감소했다.
학계에서도 고속도로 개통과 인구 유출을 연관 짓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전명준 홍천군 번영회장은 "유령도시가 되지 않기 위해 고속도로에 지역으로 유도하는 표지판을 대폭 확대하도록 요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레저·문화 콘텐츠로 '빨대 효과' 극복한 춘천시
최근 몇 년 사이 급속하게 교통망이 개선된 강원 춘천시는 '빨대 효과'를 극복한 사례로 꼽힌다.
46번 경춘국도밖에 없었던 춘천 지역에 2009년 7월 서울춘천고속도로가 개통되자 '물자'와 '인력'이 몰리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경춘복선전철과 고속철도까지 개통하자 '한적한 호반의 도시'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서울∼춘천 이동시간이 70분대에서 40분대로 줄면서 '수도권 도시'가 됐지만, 한편으로는 인구와 상권, 자본이 수도권으로 역유출되는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됐다.
이를 극복하고자 춘천시는 수도권 접근성과 자연환경을 연계해 '콘텐츠가 있는 레저관광도시'로 변신을 거듭했다.
춘천레저대회를 만들고 송암동 호수변에 레포츠 집적시설을 조성했다.
자연, 문화, 역사 콘텐츠를 활용해 100㎞가 넘는 자전거도로와 의암호 카누 여행 체험관광 상품을 속속 선보였다.
춘천을 대표하는 닭갈비·막국수 축제도 규모로 키우고 스카이워크, 어린이글램핑장 등 가족 여행객을 겨냥한 시설도 조성했다.
최동용 춘천시장은 "지방 중소도시의 기능이 수도권에 흡수되는 것을 막고자 관광시설 확충과 프로그램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며 "특화된 도시 콘텐츠를 지속해서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춘천고속도로 이용 차량은 개통 이듬해인 2010년 265만대에서 2015년 342만대로 늘어나며 5년 연속 1천만 관광객 시대도 맞고 있다. 고속도로 개통을 전후해 2008년(580만명)보다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2008년(26만4천명)부터 인구도 꾸준히 늘어 지난해 말 28만4천명으로 '30만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이 때문에 지지부진하던 산업단지 조성이 탄력을 받고, 국내 첫 레고랜드 테마파크 등 민간자본 개발사업 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경남 거창군도 기존 2차로인 88고속도로가 4차로 광주대구고속도로로 확장됐을 당시 상권 이탈이 우려됐던 지역이다. 그러나 발 빠른 대응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대구와 이동시간이 1시간대에서 30분대로 좁혀지자 소비시장 유출을 막기 위해 상권보호 대책을 마련했다.
이정용 거창상인번영회장은 "광주대구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상인들 매출이 20%가량 상승했다"며 "주말이면 시장 주변으로 관광버스도 많이 보이고 장날 인파도 늘어 상인들이 반기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연구원 김재진 박사는 "고속도로 개통 영향을 문화 콘텐츠의 힘으로 극복한 춘천의 이례적인 변화는 학계에서도 큰 관심"이라고 했다.
그는 "빨라진 관광패턴은 많은 관광객을 유입시키는 효과도 있지만 그만큼 체류시간도 줄어 당일 여행이 충분히 가능해지면서 관광지의 경제적 이익은 줄고 도로 지정체만 가중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학 박정헌 이승형 임채두 김소연 이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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