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리아 연대기⑤] 잃어버린 페르가몬…"옮겨지는 건 다 뜯어갔다"

입력 2017-07-31 22:39  

[아나톨리아 연대기⑤] 잃어버린 페르가몬…"옮겨지는 건 다 뜯어갔다"

19세기말 獨발굴단이 유물 대부분 반출…제단 통째 가져가 베를린에 전시

獨외교부 산하 DAI, 해외 발굴 지휘…히타이트제국 스핑크스 등 일부 반환도





(베르가마·보아즈칼레<터키>=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독일 베를린을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한번은 꼭 가보는 곳, 바로 '박물관섬'에 있는 페르가몬박물관이다.

수준 높은 그리스 조각으로 가득한 '페르가몬 제단'을 통째로 옮겨 놓은 중앙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의 입이 떡 벌어진다. 제단의 위용과 예술성에 감탄하는 동시에, 독일이 남의 땅에 있는 제단을 고스란히 가져다 놓고 돈벌이를 한다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명성의 페르가몬박물관에 있는 페르가몬 제단과 소장품 다수는 터키 서부 페르가몬 유적, 현재의 베르가마에서 나왔다.






이달 18일(현지시간) 한국·터키 수교 60주년 프로그램 '아나톨리아 오디세이' 일행이 찾아간 진짜 페르가몬은 신전과 원형경기장의 남은 형체로만 그 영화를 가늠할 수 있을 뿐이었다.

페르가몬은 기원전 7세기에 형성된 도시로, BC 3세기에 페르가몬 왕국(아탈리드 왕조)의 수도로서 헬레니즘 문화를 꽃피웠다.

당시 페르가몬 도서관은 이집트 프톨레미 왕조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조각 교육기관은 수준 높은 조각가를 배출해 헬레니즘 조각 발전을 선도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아래에는 당시 최대규모 의료기관인 아스클레피온이 운영됐다. 이 병원은 의술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와 로마 명의 갈렌을 배출한 곳이다.

페르가몬은 한마디로 에게해 예술·의학·문화의 중심지, '지식 도시'였던 셈이다.






그러나 현재 페르가몬 유적과 인근 베르가마 고고학 박물관에는 헬레니즘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페르가몬 조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1871년 발굴을 시작한 독일 발굴단이 유물 거의 전부를 독일로 가져갔다. 이들이 현재 베를린 페르가몬박물관의 자랑거리다.

그나마 기둥과 상단부가 보존된 트라야누스 신전을 돌아보다 머리가 떨어져 나간 남성의 석상을 발견해 주인공이 누구인지 물었다.

유적을 안내한 닐귄 우스트라 베르가마 박물관장은 "그 석상은 아탈루스 장군인데, 진품이 아니라 재현품"이라고 했다.

아탈루스 장군은 아탈리드 왕조 이전 페르가몬을 다스린 알렉산더대왕 휘하에 있었다.

진품은 역시 베를린에 있다고 한다.

우스트라 관장은 "1800년대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독일 발굴단은 분리·운반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자국으로 가져갔다"고 말했다.

반환해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어깨만 으쓱했다.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듯한 반응이었다.






독일 고고학자들은 19세기말∼20세기초 아나톨리아의 '보물'을 대거 반출했다.

신화를 역사로 바꾼 '트로이 발굴'을 실현하고 '프리아모스왕의 보물'을 반출한 이도 독일 기업가 출신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이다.

가치를 따지기 힘든 유물이 대거 반출된 것은 오스만왕조 말기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저조하고 법규가 미비했기에 가능했다.

제도가 정비된 이후에도 독일은 터키 여러 유적지의 발굴에 참여하고 있다.

근래에는 문화재 반환도 일부 이뤄졌다.

터키 중부에 초룸에 있는 히타이트제국의 수도 하투샤 유적의 스핑크스가 2011년 반환됐다.

다만 하투샤 스핑크스는 반출 과정에 절차적 문제가 있었으며, 다른 유물은 상황이 다르다는 게 독일 측의 주장이다.

하투샤 발굴단장인 안드레아스 샤흐너 교수(DAI)는 "페르가몬 박물관의 유물은 독일이 오스만왕조로부터 승인을 받아 가져간 것이므로 터키정부는 할 말이 없을 것"이라면서 "내가 아는 한 터키정부가 페르가몬 유물 반환을 공식적으로 요구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트로이나 페르가몬 유물 반환 요구는 학계나 지역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문화재 인식이 확고하지 않았던 시기에, 쇠락해 가는 오스만왕조로부터 얻은 승인에 얼마나 정당성이 있을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해외 발굴을 지원하는 독일고고학연구원(Deutsches Archaologisches Institut)은 특이하게도 독일 외교부 관할이다. 정부 지원을 받으나 의사결정구조는 완전히 독립적이라고 한다.

식민지배 경험이 있는 한국인이 보기에 외교부 산하 해외 발굴 지원조직이 제국주의 수탈 역사의 잔재로 느껴진다.

샤흐너 발굴단장은 "외국인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지 모르겠다"면서도, "DAI 소관 부처는 독일 연방정부조직과 효율성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독일은 문화를 지역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관점에 따라 연방정부에 문화부가 없다"면서 "DAI의 소관 부처를 외교부로 한 것은 해외 업무가 많은 기관 성격을 고려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tr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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