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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탄마다 꽃이 피었다…송창이 펼친 분단의 풍경

입력 2017-08-16 15:27   수정 2017-08-16 15:30

버려진 탄마다 꽃이 피었다…송창이 펼친 분단의 풍경

학고재서 개인전 '꽃그늘' 개막…1980년대 도시화 그늘도 조명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버려진 탄(彈)마다 꽃이 피었다.

16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 들어서자 천장에 닿을듯한 포탄 십여 개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울긋불긋한 녹이 앉은 포탄마다 꽃들을 피워낸 모습은 낯선 어울림의 느낌을 줬다.

"꽃은 다양한 상징을 하고 있어요. 축하의 뜻도 있으면서 생명과 죽음을 의미할 때도 있고요. 꽃상여를 보세요,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역할도 하죠."

오랫동안 분단의 풍경을 그려온 송창(65) 작가가 '꽃'에 꽂힌 것은 2010년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의 유엔군 화장장을 방문했을 때였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영국군을 비롯해 수많은 유엔군 전사자를 화장했던 시설이다. 작가가 찾았을 당시만 해도, 묘지 부근에 자주 핀다는 망초꽃이 어른 키 높이만큼 자라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방치되다시피 했다.

이때 화장터에 누가 언제 놓아두었을지 모를 삭은 조화의 모습이 그를 사로잡았다. "분단의 구조가 결국 죽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라지고 잊힌 사람들에게 산 자의 기원을 전하고 싶었어요."





작가는 그때부터 파주, 연천, 포천, 철원 등 북한과 가까운 최전방 지역의 풍경에 꽃을 '심는' 작업들을 계속해왔다. 공동묘지에서 버려진 조화들을 틈나는 대로 주워다가 접착제로 캔버스에 부착하는 방식이다.

이날 학고재에서 개막한 개인전 '꽃그늘'에 출품된 39점의 작품 중 절반 가까이가 이들 꽃 작업이다.

유화 '수상한 꽃술'(2017)이나 '연천발 원산행'(2013)처럼 탱크나 급수탑 등 분단과 전쟁을 상징하는 대상들에 꽃비가 내리는 듯한 작품이 많다. 연천역 인근 급수탑은 과거 증기차들이 북한으로 물자를 실어나를 때 사용된 시설로, 한국전 당시 미군의 공격을 받았던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전시장 맨 안쪽의 거대한 작품 '꿈'(2013)은 이글거리는 시뻘건 하늘과 하얀 땅 사이를 검은 다리가 가로지르는 작품이다. 한국전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그림 속 연천군 군남면 남계리 강바닥에도 알록달록한 꽃이 뿌려졌다.

작품마다 빗물이 흘러내린 듯한 흔적도 눈길을 끈다.

작가는 이를 "녹아짐"이라고 표현하면서 "철책선이라든지 탱크라든지 굳건히 서 있는 대상들이 녹슬고 헐어서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하 수상한 때라, 이번 개인전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작가는 지금의 위기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전날 8·15 경축사를 언급하면서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 발언이 주목받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그동안 잘못된 길을 걸어왔는지를 보여주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작가는 한국전쟁이 채 마무리되기 전인 1952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 서울 근교에 미술 교사로 부임한 그는 출퇴근길에 도시 변두리의 어두운 풍경을 목격했다. 쓰레기 매립장으로 변한 난지도에서 가난한 이들은 조금이라도 값이 나가는 물건들을 손에 넣으려고 아귀다툼을 벌였고, 일부가 포크레인에 치여 죽는 일도 있었지만 제대로 보도조차 되지 않았다.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 소식을 접한 그는 광주의 문이 다시 열린 날 첫차를 타고 내려간 도시에서 전두환 신군부에 짓밟힌 현장을 목격했다.

이러한 우리 현대사의 그늘을 포착한 유화와 실크스크린 작품들도 다수 전시된다.

1980년대 연천에서 철모를 바구니 삼아 쓰는 노인의 모습을 포착한 '밭에서'(1986)나 녹슨 중식도(칼)가 소나무 줄기를 댕강 끊어놓은 '굴절된 시간'(1996) 등 작품 하나하나마다 뜯어볼 것들이 많다.

전시는 9월 24일까지. ☎ 02-720-1524.

ai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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