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의 시대 연 '언더그라운드 음악 대부' 조동진

입력 2017-08-28 10:42   수정 2017-08-28 15:33

창작자의 시대 연 '언더그라운드 음악 대부' 조동진

"자연친화적이고 회화적인 시어, 아날로그 감성으로 대안 제시"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28일 방광암으로 투병 중 쓰러져 세상을 떠난 조동진(70)은 자연 친화적인 시어와 서정적인 포크 선율로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음악계를 이끌었다.

1966년 미8군 밴드로 출발한 고인은 록그룹 '쉐그린'과 '동방의 빛'의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로 활동했으며, 서유석의 '다시 부르는 노래', 양희은의 '작은 배', 송창식의 '바람 부는 길', 김세환의 '그림자 따라' 등을 작곡하며 이름을 알렸다. '다시 부르는 노래'는 1970년대 포크계의 명곡으로 꼽혔다.

작곡가로 이름을 알린 그는 1979년 '행복한 사람'이 담긴 1집 '조동진'을 발표해 따뜻하고 서정적인 포크 선율에 낮고 포근한 목소리를 실어 울림을 줬다.

TV 등 대중 매체에 노출하지 않아 '얼굴 없는 가수'이던 그는 1980년 발표한 2집의 '나뭇잎 사이로'와 1985년 3집의 '제비꽃'이 큰 사랑을 받으면서 언더그라운드 음악계를 이끄는 싱어송라이터로 우뚝 섰다.

대중음악 평론가 최규성 씨는 "1966년부터 록밴드를 한 뒤 13년 만에 1집을 낸 조동진 씨는 이미 준비된 신인이었다"며 "1집은 대중음악사에서 1970년대에 안녕을 고하며 1980년대 창작자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분기점, 선언문 같은 앨범이었다. 지금까지도 언더그라운드에서 창작하는 후배들의 지침서, 교본 같은 앨범"이라고 평했다.

특히 그의 음악은 당시 한대수, 김민기 등이 시대 유감을 노래하며 군사정권의 탄압을 받던 포크의 흐름과 달리, 관조적인 시선의 노랫말과 아름다운 선율로 물길을 바꿔놓았다. 한 편의 시 같은 자연주의적인 노랫말 속에 깃든 내면의 성찰과 사색, 따뜻한 고독은 억압적인 시대에 마음을 다친 대중을 위로했다.





1980년대 동아기획에 몸담은 고인은 자신의 영향을 받은 후배들이 잇달아 등장하자 '조동진 사단'을 이루기도 했다.

최규성 평론가는 "조동진의 1집을 재발매하면서 출발한 동아기획은 해외 팝 수준의 뛰어난 창작곡을 담은 앨범을 잇달아 냈다"며 "조동진은 동아기획에서 좌장 역할을 하면서 주류가 아닌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창작곡으로 노래하는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동아기획 뮤지션들은 십시일반 도움을 주며 앨범을 만들었고 이때 협업 시스템이 정착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1990년대 동생인 조동익·조동희 남매와 장필순, 이규호 등의 뮤지션들이 모인 음악공동체 하나음악을 이끌었다. 그러나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된 1집 이후 1996년 5집 '조동진 5'까지 내고서는 칩거에 들어갔다.

대중음악 평론가 박성서 씨는 "조동진의 음악은 테크노 사운드가 몰려오는 1990년대에도 더욱 빛나는 아날로그적 감성이었다. 완벽하게 가공된 음악에 염증을 느낀 음악 팬들에게 다가가 포크 1세대로서 큰 울림을 줬다. 1세대로서 '언더그라운드'와 '언플러그드' 음악이란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최규성 평론가도 "지루하고 느릿하다는 상반된 반응도 있었지만 '작은 배' 등 그의 음악들은 그림이 그려지는 회화적인 노래의 시초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뛰어난 음악성에도 창작자로서 군사정권에서 탄압받은 뮤지션들과 달리 조명을 덜 받은 측면은 있다. 음악처럼 느릿하게 움직이는 분이었지만 주위에 동료들이 모여든 것만으로도 따뜻하고 인간적인 흡입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5집 이후 그는 제주에 머물렀다. 2001년 '하나 옴니버스' 앨범에 한 곡을 수록했고, 하나음악 출신들이 다시 모인 기획사 푸른곰팡이가 2015년 발표한 옴니버스 앨범 '강의 노래'에서 다시 한 곡을 선보였을 뿐 뚜렷한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그는 20년 만의 새 앨범 '나무가 되어'를 발표하면서 "그렇게 빨리, 또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을 줄 몰랐어. 기타를 집어넣는데 10년, 다시 꺼내는 데 10년 걸린 셈이네"라는 소회를 전했다.

강산이 두 번 변했지만 그의 음악은 고요하면서도 역동적인 힘이 있었고, 몽환적이면서도 선명했다. 인생을 반추하는 듯한 진지한 독백 속에 허무와 희망이 포개어져 있었다.

이 앨범에서 그는 유신정권 시절의 청춘을 노래한 '1970', 44년을 함께 살다가 2014년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그날은 별들이'와 '천사'를 들려줘 감동을 안겼다.

당시 문학평론가 함돈균 씨는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아 화제가 됐는데 조동진 씨야말로 음악으로 시를 쓰는 분"이라며 "역사와 사회의 개발 독재 드라이브에 휩쓸리지 않고 고요하게 자신을 유지하는 내공이 특별한 뮤지션"이라고 평했다.







이 앨범을 시작으로 세상과 다시 소통한 조동진은 최근 자신의 1~5집을 리마스터링한 박스 세트를 손수 작업했다.

그리고 다음 달 16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꿈의 작업 2017-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 공연을 계획했다. 13년 만에 서는 콘서트였으며, 동아기획-하나음악-푸른곰팡이로 이어진 뮤지션들이 조동진의 1998년 공연 '98 꿈의 작업-자연을 닮은 사람들의 노래' 이후 20년 만에 완전체로 모이는 무대였다.

그러나 그는 공연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28일 세상을 떠나면서 안타깝게도 이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됐다.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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