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했던 병자년 겨울…원작에 충실한 웰메이드 사극 '남한산성'

입력 2017-09-25 18:46   수정 2017-09-25 19:54

혹독했던 병자년 겨울…원작에 충실한 웰메이드 사극 '남한산성'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그 갇힌 성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김훈의 '남한산성' 서문 中)

영화 '남한산성' 속 병자년의 겨울은 원작 소설 속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다음 달 3일 개봉하는 '남한산성'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청의 대군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와 신하, 백성들이 고립무원 속에서 혹독한 겨울을 났던 47일간의 역사를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원작은 70만 부 이상 팔린 김훈의 동명 소설. 짧고 담백하면서도 본질을 꿰뚫는 문체로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다.

영화는 정공법을 택했다. 총 11장으로 구성된 영화는 원작의 서사와 글맛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해 영화적 미덕을 잃지 않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기존의 흥행사극들이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한 팩션 사극이라면, '남한산성'은 실존 인물과 시대상을 최대한 고증을 통해 충실하게 재현해낸 정통사극이다.

그런 만큼 영화는 시종일관 무겁고 비장하다.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피폐해진 민초들, 무기력한 인조의 모습, 그리고 삶과 죽음의 길 사이에서 옥신각신하는 신하들의 모습에서 웃음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온 산하를 얼어붙게 했던 병자년의 혹독한 추위처럼 영화는 건조하고 담담하다.

산성 안에 갇힌 왕과 신하들은 종묘와 사직의 미래를 논했고, 백성들의 살길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러나 지향점이 달랐고, 선택지도 많지 않았다. 서로의 헤아림을 탓하다 보니 산성 안에서는 말들이 넘쳐났다. 청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척화파와 청과 화친을 주장하는 주화파가 각자의 언어와 논리로 맞섰다. 척화파 태두인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과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은 사사건건 양극단을 달렸다.






원작 속 두 사람의 논쟁은 스크린에서도 그대로 구현된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는 것과 같이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해 못할 짓이 없는 것이옵니다.…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 만백성과 함께 죽음을 각오하지 마시옵소서"(최명길)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한 나라의 군왕이 오랑캐에 맞서 떳떳한 죽음을 맞을지언정 어찌 만백성이 보는 앞에서 치욕스런 삶을 구걸하려 하시옵니까!" (김상헌)

일부 윤색되고, 새롭게 추가된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큰 틀은 다르지 않다. 마치 연극무대를 보듯 대사들이 펄떡펄떡 살아 움직인다. 연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배우들의 명연기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최명길 역의 이병헌, 김상헌 역의 김윤석, 인조 역을 맡은 박해일, 대장장이 서날쇠를 연기한 고수, 수어사 이시백 역의 박희순 등이 모두 제 역할을 모자람 없이 해냈다. 모두 한 영화의 주연급 연기자들로, 각자의 개성이 드러내면서도 서로 이질감을 주지 않고 시너지를 낸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처럼 극에 잘 스며든다.






영화는 귀로 듣는 맛뿐만 아니라 눈으로 보는 묘미도 있다. 조선의 군대와 청의 군대가 맞붙는 대규모 북문전투 장면 등 비주얼에도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치욕스러운 역사를 다룬다. 47일을 버틴 인조는 결국 1637년 1월 30일 남한산성을 나와 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세 번씩 절을 했다. 살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결국은 외면하고 싶은 역사이기도 하다. 영화가 던지는 화두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울림이 더욱 크다.







fusion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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