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한민족 대표민요 정선아리랑제

입력 2017-11-12 08:01  

[연합이매진] 한민족 대표민요 정선아리랑제

아리랑 본향에서 아리랑 가락에 심취하다

(정선=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첩첩산중의 강원도 정선 땅은 한민족의 대표민요인 아리랑의 발상지다. 먼 옛날, 이곳에서 태어난 아리랑 가락은 강줄기를 따라, 산고개를 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한민족의 애환과 흥을 담은 상징적 노래로 세계에도 널리 알려졌다. 그 시원의 땅에서 매년 가을 개최되는 정선아리랑제. 올해도 한가위 추석 명절을 앞두고 신명나게 펼쳐졌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주소"

느리고 구성진 가락의 정선아리랑. 한민족의 정서가 깃든 가락에서는 눈물과 한의 역사가 느껴진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에게 아픔을 치유하고 위안을 얻고 희망을 찾는 어머니 품과 같았다. 마음의 고향인 그 품에서 해원상생과 대동단결을 꿈꿨다. 정선아리랑은 건널 수 없는 아우라지강을 사이에 두고 처녀와 총각의 이루어지지 않는 러브 스토리를 애틋하게 담고 있기도 하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주소"


◇ 어울림 한마당…아라리 길놀이로 '흥청'


대표적 아리랑축제인 정선아리랑제가 한가위 추석 명절을 앞두고 지난 9월 29일부터 10월 2일까지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조양강변의 아리랑공원과 아라리촌, 아리랑센터, 녹송공원 일대에서 열렸다. 이 축제는 올해로 42회째. 오랜 역사만큼이나 풍요로운 프로그램들로 축제장은 연일 뜨겁게 흥청거렸다.

올해 축제는 9월 29일 오후 '정선아리랑 대합창극 아리랑 무극'으로 막을 올려 칠현제례, 춤추는 멍석아라리, 전산옥 주막 한마당, 뗏목 제례와 시연, 전국아리랑 경창대회 등으로 다채롭게 진행됐다. 10월 2일 저녁 '아리랑 - 빛을 발하다'라는 주제의 공연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개막에 앞서 정선읍내를 후끈 달군 것은 '아라리 길놀이'. 정선군의 9개 읍·면 대표단은 물론 외국 유희단 등 2천여 명이 대거 참가한 길놀이는 조양강의 정선1교에서 출발해 축제장인 아라리공원까지 1.5km 구간에서 2시간여 동안 신명나게 펼쳐졌다.

"덩덩 덩더꿍! 덩덩 덩더꿍!"

각 읍면의 풍물단이 앞장서 신나게 분위기를 돋우는 가운데 춤꾼들은 저마다의 춤사위로 거리에 활력이 넘치게 했다. 거리 양쪽을 메운 구경꾼들도 제 흥에 겨웠는지 환호와 어깨춤으로 분위기를 한껏 즐겼다.

화암면 길놀이단 일원으로 나온 하얀 광목 치마저고리 차림의 윤태분(70) 할머니는 "화암동굴 등 화암팔경을 재현해 퍼레이드하고 있다"며 "우리 고장도 알리고 축제도 즐겨 이래저래 기분 좋다"고 덩실덩실 춤을 췄다.

야생화 머리띠를 두른 채 야생화 꽃씨를 구경꾼들에게 나눠준 이지후(12·고한초등) 어린이는 "해마다 축제에 참가하는데 꽃씨를 나눠주면 저절로 재밌어져요"라며 활짝 웃었다.

외국인 길놀이꾼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그중 하나가 코트디부아르의 타악그룹 쿰바야. 이들은 자국의 전통 타악기를 쉴 새 없이 두드리며 이색적인 즐거움을 안겨줬다. 단원인 마리아 바샤(23·여) 씨는 "멀고 먼 나라인 한국의 이곳까지 와서 축제에 참가한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라며 웃음과 함께 젬베 악기를 신나게 두드려댔다.






◇ 정선아리랑, 아리랑의 시원(始原)



축제 개막에 앞서 9월 29일 오전 정선군 남면의 거칠현 사당에서 거행된 칠현제례와 축제 기간 내내 조양강변의 아라리촌에 마련된 전산옥 주막한마당, 10월 1일 낮 조양강변의 녹송공원에서 진행된 뗏목 제례·시연 등은 정선아리랑의 회한 어린 역사를 실감케 했다.

이 가운데 고려 충신의 절개와 한을 품었던 칠현제례의 칠현(七賢)은 아리랑을 맨 처음 지어낸 원조로 알려져 있다. 고려가 멸망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다짐한 선비 중 일곱 명이 멀고 먼 두메산골인 정선의 서운산 아래로 은거해 산나물을 뜯어 먹으며 일생을 살았다. 그 비통한 심정을 가락에 담아 노래했던 게 바로 정선아리랑의 시원이 됐다.

연군(戀君)과 망향(望鄕)의 정한을 담은 이들의 회고시에서는 두고두고 가슴을 저미는 회한이 묻어난다.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은 "일편단심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으리/ 송도가 어디메뇨 눈물만 흘리네/ 구름 덮인 산 세상에 우뚝하니/ 부끄럼 없이 고사리 캐며 세상 인연 끊으려네"라며 통한의 아픔을 굳은 맹세로써 이겨내려 했다.

은사(隱士) 김위(金瑋)도 "죽음에 이르러도 이 충절 변치 않으리/ 송도의 일 모두 지난날 눈물 짓누나/ 새 왕조 영화는 모두 꿈이려니/ 어지러운 세상 한 줌의 티끌에도 물들지 않으리"라고 절개를 다짐했다.

이들의 비통한 마음은 어렵게 살아가던 현지 백성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이곳의 전통 가락에 실려 애절함의 아리랑으로 탄생하게 된다.

백두대간의 정선 땅에서 태어난 아리랑은 조선 말기 흥선 대원군의 경복궁 중수를 계기로 전국으로 퍼져갔다. 1865년부터 1872년까지 계속된 경복궁 중수에 전국의 인부들이 동원됐고, 이들은 삶의 고단함과 애절함을 덜기 위해 정선지역 인부들이 흥얼거리는 정선아리랑을 따라불렀다. 그리고 부역을 마친 뒤 고향으로 돌아가 현지 음악어법과 정서에 맞게 변이시켰는데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등은 이렇게 탄생한다.

한일강제병합으로 나라를 빼앗기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리랑은 상실감을 담아내고 아픔을 치유하려는 노래로 승화된다.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로 환골탈태해 본조아리랑이 본격 보급되고 이는 나라 잃은 설움과 울분을 담아 해외 곳곳의 동포들에 의해 불리기도 했다. 일종의 디아스포라(離散) 음악이었던 셈이다.

남북분단 이후에는 간절한 통일의 여망을 담은 노래로도 불리고 있다. 이념과 사상을 떠나 정서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대표적 노래가 바로 아리랑이다. 현재 아리랑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12년 등재)이자 국가지정 무형문화재(2015년 지정)다. 이 가운데 정선아리랑은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1971년에 지정됐다.

지금까지 채록된 정선아리랑의 가사는 자그마치 5천500여 수. 정선아리랑제는 1976년 처음 열려 오늘에 이른다. 정선에는 전국 최초의 민요비인 '정선아리랑비'가 건립됐고, 국내 유일의 아리랑 전문공연장인 아리랑센터와 아리랑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 무대와 객석 하나된 놀이터



"강물은 돌고 돌아서 바다로나 가지만/ 이내 몸은 돌고 돌아서 어디로 가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주게"

긴아리랑의 애절한 가락이 심금을 울렸다. 엮음아리랑이 삶의 응어리를 빠르고 경쾌하게 풀어내는 해학이라면 느리고 길고 구성진 소리의 긴아리랑은 삶의 고단함을 승화시켜 은근과 끈기로 이겨내는 힘을 안고 있다.

아라리공원의 한쪽에 마련된 야외 멍석마당. 열세 명의 정선아리랑보존회 회원들로 구성된 공연단은 북과 다듬잇돌, 함지박을 두드리며 긴아리랑과 엮음아리랑을 부르며 관객들과 허물없이 잘도 어울렸다. 무대와 객석이 하나 되는 놀이터였다. 주민과 외지인들도 막걸리, 안주를 즉석에서 권커니 잣거니 하며 신명을 함께 나눴다. 대구에서 왔다는 손관락(71) 할아버지는 "소리가 흥겨워 저절로 춤이 춰진다"며 "우리가 흥을 돋워야 놀이꾼도 더 신나지 않겠느냐"고 활짝 웃었다.

조양강에 임시가설된 아라리섶다리를 건너 아라리공원에서 아라리촌으로 자리를 옮겨봤다. 여기서도 흥겨운 놀이마당이 스스럼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육모정에 마련된 전산옥 주막.

"황새여울 된꼬까리에 떼를 지어놓았네/ 만지산 전산옥이야 술판 차려놓게/ 우리집에 낭군님은 떼 타고 가셨는데/ 황새여울 된꼬까리로 무사히 다녀오세요/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주소"

평창의 황새여울과 영월의 된꼬까리는 정선의 아우라지를 떠난 떼꾼들이 한양을 가고 오며 들렀던 곳. 여기에는 떼꾼들이 쉬었다 가는 전산옥이라는 주막이 있었단다. 목숨을 걸고 거친 물길을 헤쳐 내려갔던 떼꾼들은 한양에서 떼를 팔아 번 이른바 '떼돈'으로 술도 마시고 투전놀이도 즐기며 시름을 덜었다. 그러다 보면 떼돈을 홀랑 털려 빈털터리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정선아리랑제에서는 해마다 주모 전산옥 선발대회를 열어 정선아리랑 가사에 나오는 주막을 재현하고 주모 전산옥도 선발한다. 제8회를 맞은 올해 주모 전산옥 선발대회는 10월 1일 오후 녹송공원의 전산옥 주막에서 열렸다.

전산옥 주막은 과거에 선발된 전산옥들이 모여 당시 분위기를 재현한 것이다. 전산옥의 후예들은 막걸리와 안주를 나눠주고 '얼씨구' '잘한다' '좋~다' 같은 추임새와 함께 정선아리랑을 불러 방문객들에게 그 시절의 전산옥 분위기를 체험케 했다.

전통한복 차림으로 손님을 맞은 이성도(4대 전산옥) 씨는 "서울에서 살다 10여 년 전에 이곳에 정착했다"면서 "한국무용과 정선아리랑에 푹 빠졌다"고 했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이짓' 할 거예요"라며 요염한 웃음을 장난스레 터뜨렸다.

주모들과 함께 춤추던 정병근(56·서울) 씨는 "분위기가 달라서인지 막걸리 맛이 더욱 좋다. 모처럼 홀가분하게 느껴보는 시끌벅적한 잔치마당이다"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 "정선과 아리랑을 세계로"



올해 정선아리랑제는 주민 150여 명과 출연진 50여 명이 함께 연출한 개막공연 '아리랑 무극'이나 태평소, 꽹과리, 전자바이올린, 장구, 색소폰을 협연한 경기국악단의 '판 깨는 소리' 등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등 장르와 구분을 뛰어넘어 하나로 어울리는 프로그램들을 다수 선보였다.

이와 함께 전국아리랑 경창대회, 전국아리랑 학생 경창대회, 어르신 정선아리랑 합창대회는 서도아리랑, 영남민요아리랑, 푸너리아리랑 등과 더불어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이중 탈북예술인들로 구성된 북한백두한라예술단은 10월 1일 저녁 두 시간에 걸쳐 춤과 노래, 해금 연주, 마술 무용 등을 서도아리랑과 함께 특설무대에서 공연해 주목받았다.

전통문화축제에 걸맞게 국내외 교류 공연도 다채롭게 이어졌다. 강릉의 관노가면극을 비롯해 이리 향제줄풍류, 진도 강강술래, 경산중방농악 등 국내 무대와 함께 중국 경극, 카자흐스탄 전통민요 등 해외 공연을 다수 볼 수 있었다.

1년 앞으로 다가온 2018평창동게올림픽과 관련된 행사도 눈길을 끌었다. 그중 하나가 10월 2일 오후 아라리공원의 특별전시관 앞에서 진행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개최 기원 컵비빔밥 나눔행사였다. 지역의 농특산물인 곤드레나물을 이용한 비빔밥으로 참가자들이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다짐했다. 주최 측은 평창동계올림픽이 아리랑의 세계화에 기여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정선아리랑제에는 나흘 동안 4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종천 정선아리랑제위원장은 "12개 부문 54개 행사에 129개 종목으로 운영된 올해 축제에는 군민 모두가 하나가 돼 열정적으로 참여했다"면서 "정선아리랑의 보존·전승은 물론 그 세계화와 함께 내년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한 기반 마련을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id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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