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리당략 따라 '2명 증원' vs '연동형 비례대표제' 주장
현행법대로 선거구 획정되면 큰 혼란…"정치권 해결해야"
(제주=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인구 증가로 지방의원 선거구 상한 인구 기준을 초과한 제주도 선거구 획정을 놓고 도와 도의회, 지역 국회의원, 도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 간 '폭탄 돌리기'가 점입가경이다.
지난해 말 출범한 선거구획정위의 활동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으나 도와 도의회, 제주 출신 국회의원들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히다 보니 획정위 위원 전원 사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각 정당도 당리당략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 기한 내에 선거구가 획정될지는 미지수다.
선거구를 새로 획정해야 하는 이유와 획정위의 활동, 선거구 획정과 관련된 이들의 셈법, 선거구 획정 가능성 등을 살펴본다.
◇ 인구 증가로 선거구 획정 불가피
제주도의 인구는 최근 10년간 8만 명 이상 늘었다. 제9선거구인 삼양동, 봉개동, 아라동의 인구는 5만2천425명으로, 2007년 헌법재판소가 정한 시·도의회 의원의 상한 인구 3만5천44명보다 1만6천981명을 초과했다. 제6선거구인 삼도1동, 삼도2동, 오라동은 196명을 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에 도의회 의원 선거를 치르게 되면 법을 위반하게 되고 결국 '선거무효' 소송에 휩싸이게 된다. 이미 한 도의원이 "현행대로 선거가 진행된다면 출마하지 않고 곧바로 위헌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공언했으므로 이대로 가면 선거무효는 불 보듯 뻔하다고 할 수 있다.
선거구 획정은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제주특별법)에 따라 선거일 6개월 전인 오는 12월 12일까지 하고, 도지사에게 제출돼야 한다. 제7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는 내년 6월 13일이다.
도는 지난해 12월 14일 공직선거법과 공직선거관리규칙에 따라 2018년 도의회 의원 선거구 획정을 위한 제1차 획정위 회의를 개최했다. 3개월만인 지난 2월 제주특별법 제3조 제1항의 도의원 정수를 현행 '41명 이내'에서 '43명 이내'로 개정하는 권고안을 도와 도의회에 제출했다. 제6선거구와 제9선거구의 분구에 필요한 의원 2명을 증원하는 방안이다.
강창식 선거구획정위원장은 "현행 체제를 유지하는 방안이나 의원 정수를 조정하지 않고 기존 선거구 획정 방식인 분구·합병하는 방식을 따르면 제주 지역 29개 선거구를 대폭 조정하는 과정에서 큰 도민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단순히 인구수만 가지고 기계적으로 동(洞)을 합병하거나 읍·면을 통합하는 상황은 지역 간 첨예한 갈등을 유발하고 주민자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의원 축소나 폐지는 일반 행정자치가 교육자치를 지배하는 결과를 심화하고, 비례대표의원 축소는 여성·장애인 등 소수 계층의 정치 참여를 제한한다는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획정위는 사실 현행법에 따라 선거구를 획정하는 권한만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 같은 안을 내놓은 것은 기존 선거구를 분구·합병했을 때 획정위에 쏟아질 해당 지역구의 의원과 주민 비난을 피해가려는 속셈도 있다고 할 수 있다.
◇ '폭탄 돌리기' 언제까지, 무책임 극치
그러나 도지사와 도의회 의장, 더불어민주당 소속 3명의 지역 국회의원은 획정위와 상의도 없이 권고안이 나온 지 5개월 만인 지난 7월 12일 2개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도민 여론조사를 다시 시행했다. 미래리서치의 결과는 비례대표 제도 축소 49.1%, 교육의원 제도 폐지 26.9%, 도의원 정수 증원 24% 순으로 나왔다. 리서치플러스의 결과도 비례대표 제도 축소 44.2%, 교육의원 제도 폐지 29.9%, 도의원 정수 증원 25.9% 순으로 집계됐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제주특별법을 개정해 비례대표의원 수를 현재 '7명 이상'에서 '4명 이상'으로 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도의원 정원 41명 중 7명이던 비례대표를 5명으로 축소하고는 대신 지역구 의원 수를 29명에서 31명으로 늘리고 교육의원 5명은 그대로 두는 안이다. 비례대표나 교육의원 축소 없이 순수하게 지역구 의원 2명을 늘리는 획정위 권고안보다 후퇴한 셈이다.
지역 국회의원들은 오는 11월까지 제주특별법을 개정해 내년 지방선거 때부터 적용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당장 다른 정당과 시민사회단체에서 반대와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국민의당 제주도당은 같은 달 20일 비례대표 축소는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몰상식한 폭거라고 비판하고, 도지사와 국회의원들에게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노동당 제주도당, 정의당 제주도당, 제주녹색당은 다음날 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선거구획정위가 수개월에 걸쳐 확정한 권고안을 일순간에 무력화한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라고 규탄했다. 오히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내 18개 단체로 구성된 제주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논평을 통해 "제주 인구가 급팽창하는 상황에서 비례대표 축소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선거구획정위 결과를 존중하고 특별자치도다운 정치개혁 방안을 모색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 제주본부도 "소선거구 중심의 선거제도는 민의를 왜곡하고 책임정치를 실종시킨다"며 "민의를 반영하는 선진 정치, 특별자치도에 부합하는 선거제도 개혁은 비례대표 축소가 아닌 확대"라고 강조했다.
제주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같은 달 27일 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도민사회 반발이 거세지자 오영훈 의원은 지난 8월 8일 슬그머니 제주특별법 개정안 발의를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비례대표 축소 방안이 당의 정치개혁 방안과 상충해 입법 발의 최소 기준인 10명의 의원 동의를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공이 다시 획정위로 넘어가자 획정위 위원 11명은 같은 달 24일 선거구 획정에 대한 '무거운 짐'을 감당할 수 없다며 전원 사퇴했다. 권고안에 대해 도와 도의회, 국회의원들이 도민과 획정위에 어떠한 설명도 없이 여론조사를 다시 하고, 제주특별법 개정을 시도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결과적으로 획정위에 무거운 짐을 던져 놓았다고 해명했다.
한 달여 만인 지난달 20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고 있는 데 대해 사과하고 위원들의 복귀를 요청했다. 획정위는 시대정신을 외면할 수 없다며 다음날 복귀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촉박해 정부 입법으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힌 도를 제외하고 도의회와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일주일 안에 기관별 입장을 밝혀 달라고 요청했으나 아직 묵묵부답이다.
◇ '2명 증원' vs '정당명부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획정위 복귀 후 정당들은 당리당략에 따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민주당 제주도당은 2명 증원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중앙당에 제주특별법 개정을 건의했다. 자유한국당 제주도당도 민주당의 당론 채택을 환영하며 중앙당과 2명 증원을 계속해서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희룡 도지사와 신관홍 도의회 의장 등 다수의 도의원이 속한 바른정당 제주도당도 중앙당에 2명 증원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반면 국민의당과 정의당 제주도당은 정당명부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했다. 국민의당은 "민주당 도당의 2명 증원 당론 채택은 도의회 권력을 독점해 기득권을 확대하려는 구태정치"라고 날을 세웠다. 정의당은 도내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정치개혁 제주행동과 함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2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특별시·도인 세종시와 제주도에서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제주특별법, 세종시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심 의원이 낸 제주특별법 개정안은 교육의원 5명은 그대로 두고 지역구 의원을 30명, 비례대표 의원을 15명으로 각각 늘려 정당지지도에 따라 전체 의석을 배분하는 안이다.
2명 증원이든 연동형 비례대표제든 정치권이 합의하면 도의원 선거로 인한 도민사회 혼란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정치권이 방관해서 획정위가 현행법에 따라 인구수를 기준으로 분구·합병한 획정안을 확정하면 도민사회는 크게 요동칠 것이다.
공이 획정위로 넘어가기는 했으나 사실상 해결책은 정치권이 가진 셈이다.
한 획정위 위원은 "도와 도의회, 국회의원들이 교육의원 축소라는 답이 나오길 바라고 여론조사를 했다가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놀라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그는 "정치권이 도민사회의 혼란을 막으려는 의지가 있다면 신속히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지역 국회의원과 각 정당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도민들이 심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획정위 권고안이 제시된 지 이미 8개월이 다 됐다. 앞으로 두 달 안에 제주특별법을 개정하고 그것에 맞게 선거구를 획정하지 못한다면 후폭풍의 책임은 온전히 정치권이 지게 될 전망이다.
kh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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