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진천 종(鐘)박물관

입력 2017-11-13 08:01  

[연합이매진] 진천 종(鐘)박물관

영혼 깨우는 한국의 종소리 체험 공간

(진천=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예부터 살기 좋은 고을이라 '생거진천'(生居鎭川)으로 불리던 충북 진천은 국내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조사된 석장리 고대 철 생산 유적지와 고대 제철로가 발견된 곳이다.

진천군청이 2005년 석장리 인근의 역사테마공원 내에 개관한 진천 종(鐘)박물관은 종에 대해 이모저모를 살펴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종 전문박물관이다. 2층 규모의 건물 외관은 한국 종을 빼닮았다.

중앙에는 항아리를 엎어놓은 듯한 유리 구조물이 설치돼 있고, 그 오른쪽으로 종의 음파가 퍼져나가는 듯한 굴곡은 한국 종의 특징인 맥놀이를 형상화했다.





◇ 금속공예의 걸작품, 성덕대왕 신종


1층 전시실 입구에서는 한국 범종의 걸작인 성덕대왕 신종이 관람객을 맞는다. 현존 고대 범종 중 가장 큰 성덕대왕 신종(국립경주박물관, 국보 제29호)을 실물 크기로 재현해 놓았는데 비록 복제품이라고는 하지만 그 웅장함과 세밀함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성덕대왕 신종의 명문에 의하면 신라 제35대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제36대 혜공왕 7년(771)에 완성됐다. 20여 년에 걸쳐 주조된 성덕대왕 신종은 높이 3.75m, 지름 2.27m, 무게 18.9t에 달한다. 종소리는 규모에 걸맞게 엄청나게 크지만, 이슬처럼 청아하다. 종소리의 여운이 끊어질 듯 잦아들다 이어지면서 아이가 어미를 부르듯 '에밀레∼ 에밀레∼' 한다 해서 '에밀레종'이란 별칭을 얻었다. 신비로운 종소리뿐만 아니라 종의 표면에 새겨진 주악천인상은 예술미를 더한다.

홍병상 문화관광해설사는 "끓는 쇳물에 어린아이를 제물로 넣었다는 에밀레종 설화는 성분 분석이나 주조 과정을 보았을 때 거의 가능성이 없다"며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종 가운데서 가장 큰 종인 성덕대왕 신종은 맑고 청아한 소리와 긴 여운을 지닌 신종(神鍾)"이라고 말한다.






'종의 탄생'을 지나면 닿는 '한국의 범종' 코너에서는 사진과 각종 사료로 범종의 기원과 구조 등을 보여준다. 이어 '한국의 시대별 범종' 코너에는 통일신라, 고려,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범종이 상세한 설명과 함께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이들 범종은 원광식 주철장(중요무형문화재 112호)이 기증한 작품들이다.

과거에 TV 광고 모델로 나와 "사람아! 혼을 담아야 천 년의 소리가 나오는 거야. 잔재주 부리면 끝이야"라고 외치던 원 주철장은 우리나라 범종 복원의 일인자다. 전시된 종은 원형을 복원 또는 복제한 것으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맥이 끊긴 밀랍주물법으로 제작했다.

우리나라 범종은 삼국시대 불교의 전래 이후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통일신라 8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범종뿐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권 3 '원종흥법 염촉멸신'(原宗興法 厭觸滅身)에 "천가 6년(565년)에 범종을 사찰에 걸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6세기 후반경부터 범종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홍 해설사는 "우리나라 범종은 종 안에 추를 매달고 종 전체를 흔들어 소리를 내는 서양종과 달리 표면에 치는 자리를 만들고 그 부분을 당목으로 쳐서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이라며 "종소리에 번뇌가 사라지게 하는 범종은 소리뿐만 아니라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금속공예의 걸작"이라고 말한다.

관람객의 발길이 가장 오래 머무는 '최고의 예술미, 신라종' 코너에는 상원사종(725년, 강원도 평창군 상원사), 성덕대왕 신종, 운주지(雲樹寺) 소장종(8세기, 일본), 선림원지 출토종(804년, 국립춘천박물관), 고묘지(光明寺) 소장종(9세기, 일본), 청주 운천동 동종(9세기, 국립청주박물관) 등이 전시돼 있는데 종의 모양과 표면에 새겨진 장식만 둘러봐도 훌쩍 시간이 흐른다.

한국 범종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통일신라 범종은 종신의 외형이 항아리를 거꾸로 엎어놓은 것처럼 위가 좁고 배 부분이 볼록하다가 다시 종 입구 쪽으로 가면서 점차 오므라든 형상이다. 종 표면에는 구름 위에 무릎을 꿇고 가늘고 기다란 천의를 날리며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천인상이 새겨져 있다.

성덕대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성덕대왕 신종은 악기가 아닌 손잡이가 달린 병으로 만든 향로를 받쳐 든 공양자상이다.





◇ 한국전쟁 때 화마 피한 상원사종



상원사종(국보 36호)은 가장 오래된 현존 고대 범종으로 한국전쟁 당시 월정사가 소실되는 와중에도 기적적으로 화마를 피한 문화재다. 용뉴(종 꼭대기의 장식)는 놀란 듯한 큰 눈과 크게 벌린 입, 힘차게 천판(天板)을 딛고 선 발의 모습에서 생동감이 넘쳐 흐른다. 천판의 명문을 통해 725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일본 사찰에서 소장 중인 한국종들은 일본 강점기에 밀반출된 것이다. 운주지 소장종은 75.3㎝라는 체구에 맞게 새끼용처럼 작고 귀여운 특징을 갖고 있다. 고묘지 소장종은 통일신라 종 가운데서도 보기 드문 9세기 종으로 추정된다. '현실적인 조형미, 고려종' 코너에는 고려 현종 3년(1011)에 만들어진 덴린지(天倫寺) 소장종과 천의가 화려하게 나부끼는 비천이 대칭적으로 조각된 엔세이지(圓淸寺) 소장종 복제품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이렇게 일본 곳곳에 흩어진 한국종이 50여 점에 이른다.

'양식의 혼합, 조선종' 코너에서는 곡성 태안사종(1581), 합천 해인사 홍치4년명종(1491), 김룡사종(1670), 홍천 수타사종(1670), 완주 송광사종(1716)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고려 시대 후기의 범종 형식과 중국종의 형식이 결합한 독자적인 형태와 문양을 갖춘 범종이 만들어졌다. 음통이 없어지고 한 마리의 용뉴는 쌍룡으로 바뀌었다. 입을 활짝 벌려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용, 여의주를 물고 활짝 웃는 용, 왼손으로 여의주를 번쩍 들고 있는 용, 무섭고 포악한 표정의 용 등 다양한 용이 종 꼭대기에 앉아 있다. 용뉴에 관한 재미있는 내용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정보검색대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통일신라의 상원사종, 고려의 내소사종, 조선의 해인사종 등 시대별 종소리를 직접 들어보며 소리의 차이점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범종의 특색인 긴 여운과 뚜렷한 맥놀이를 들을 수 있다. 맥놀이란 비슷한 진동수를 가지는 2개의 주파수가 합성되어 서로 간섭하면서 진동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고, 이에 따라 소리 역시 커지고 작아지는 것이 반복되는 현상이다.

범종을 하나하나 가까이에서 뜯어보고 난 뒤 발길을 옮기면 운판, 목어, 범종, 법고 등 법구(法具)가 시선을 끈다. 새벽녘 사찰은 지옥의 중생과 만물을 깨우는 범종 소리를 시작으로 목어, 운판, 법고를 울려 수중과 하늘, 땅의 모든 생물과 우주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법구 옆에 풍경, 목탁, 요령이 전시돼 있는데 풍경에 물고기를 단 것은 물고기가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행자는 잠을 줄이고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모형으로 밀랍주조법 알기 쉽게 설명



2층 전시실에는 밀랍주물법 과정을 모형으로 본떠 놓았다. 밀랍주물법은 밀랍((蜜蠟)과 소기름을 적당히 배합해 만든 말초를 사용해 만드는 방법으로 문양 조각하기, 밀랍원형 바르기, 조각 끼우기, 외형 바르기, 밀랍녹이기, 내형 만들기, 범종 고정하기, 쇳물 붓기 등 작업 공정이 복잡할 뿐만 아니라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실패 가능성도 크나 성공했을 경우 다른 주조 방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섬세한 문양과 깨끗한 표면 그리고 아름다운 소리를 얻을 수 있다.

범종을 만드는 데 들어간 재료를 분류해 놓은 표를 보면, 구리와 주석의 함량이 중요하다. 주석 함량이 12~18% 정도일 때 소리가 가장 좋은데 광물질의 황금비율을 알아낸 조상의 슬기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밀랍주물법은 조선 후기부터 쇠퇴하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완전히 사라진 뒤 1990년대 후반 원광식 주철장과 한국범종학회의 연구와 노력 끝에 재현됐다.

'구조에 따른 소리 차이' 코너에서는 잡음을 제거하는 음통 여부에 따른 소리의 차이를 체험할 수 있다. 둥근 대롱 형태의 음통은 외국 종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우리나라 범종에서만 볼 수 있는 독창적인 부분이다.

비록 과학적 증명은 되지 않았더라도 조상의 슬기를 엿볼 수 있는 음통은 종을 쳤을 때 잡소리 하나 없이 한 가닥의 맑은소리를 나게 하는 동시에 뒤울림이 명주실 같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게끔 한다. 옆으로 발걸음을 옮겨 단추를 누르면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두부장수종, 자전거종, 학교종, 기차종, 구세군종 등 다양한 종소리가 흘러나온다.

2층 복도에는 중국, 일본, 태국, 미얀마, 티베트, 스위스 등 세계의 종이 전시돼 있다. 스위스 종을 제외한 아시아 종은 대부분 기념종으로 제작된 것으로 모두 소형이다. 영상실에서는 7분간 상영되는 '범종 소리의 비밀을 찾아서'를 감상할 수 있다.

야외에서는 원 주철장이 만든 성덕대왕 신종을 직접 타종해 볼 수 있다. 종 치는 방법은 줄을 두 손으로 잡고 당좌(當座)의 중앙을 방망이로 가볍게 치면 된다. 종을 친 후에 방망이를 종에 부딪치지 않도록 잡아주고 여운음을 충분히 들은 후에 다시 치면 된다. 소원을 빌면서 3번 종을 치면 범종의 맑고 청아한 소리와 긴 여운에 '소리의 힐링'을 만끽하게 된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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