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여의도 지하벙커에서 만나는 한국 근현대

입력 2017-10-19 14:34   수정 2017-10-19 15:13

40년 전 여의도 지하벙커에서 만나는 한국 근현대

2005년 발견된 벙커, 전시장 변신…개관전 '여의도의 모더니티'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이마가 살짝 드러나기 시작한 중년의 남자가 표범 무늬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쉼 없이 말을 한다. "한 잔 마셔"라며 호쾌하게 권하기도 한다.

영상 속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은 박정희 전 대통령, 아니 배우 이창환(65)이다. 그는 1995년 MBC TV 드라마 '제4공화국'을 시작으로 많은 작품에서 박 전 대통령으로 분했다.

이창환 개인과 이창환이 연기하는 박 전 대통령 모습을 담은 윤지원 작가의 영상 작품 '나, 박정희, 벙커'가 상영되는 곳은 2005년 서울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건립 공사 중에 발견된 지하벙커의 VIP실이다.

이 벙커를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를 알려주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1977년 즈음에 완공돼 박 전 대통령과 정부 요인들의 유사시 대피 공간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벙커 위 지상에서는 40년 전만 해도 박정희 정권의 대규모 선전 행사가 열리곤 했다.

그 이력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벙커가 내부 손질을 거쳐 서울시립미술관(SeMA)이 운영하는 문화예술공간, SeMA 벙커로 탈바꿈했다.





19일 여의도 IFC 바로 앞에 설치된 계단을 통해 벙커로 내려가자 항온항습 설비에도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당시 타일과 양변기, 거울 등이 온전히 제 모습을 간직한 VIP실에서는 '나, 박정희, 벙커' 상영이 한창이었다. 누런 때가 묻은 환풍구만이 40년의 세월을 넌지시 알려줄 뿐이었다.

윤지원 작가는 '지하벙커'와 '박정희'가 오늘날 우리에게 "온전히 밖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완전히 도려낼 수 없는 무의식"이라고 봤다. 30분 길이의 영상은 우리에게 그 흔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물음을 던진다.

'나, 박정희, 벙커'는 이날 개막한 개관 기획전에 출품된 작품 중 하나다. VIP실 옆 넓은 공간에서는 여의도를 중심으로 한국의 근현대화를 담은 전시 '여의도 모더니티'가 열린다.

'여의도 모더니티'는 양아치 작가가 기획하고 강예린, 진종헌, 신경섭, 김남수, 이나현, 유빈댄스, 송명규, 윤율리, 이유미, 조인철, 박정근 등 11명의 작가가 4팀으로 나눠 참여했다.






윤율리, 이유미 작가가 손잡은 '할로미늄 여의도 베이스먼트'는 흰색 예비군복을 즉석에서 만들어 판매하면서 군사 산업의 모더니티를 들여다본다.

박정근·조인철 작가의 '교차점'은 남자의 턱과 손, 입 등 신체 일부를 촬영한 사진들을 보리건빵 포대와 야전침대 사이에 늘어놓고 음악을 깔아놓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의 몸짓과 손짓은 수십 년간 여의도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던 정치인임을 떠올리게 한다.

신경섭·강예린 작가는 '왜 우리는 벙커가 공원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가'에서 비행장 활주로에서 5·16 광장으로, 다시 공원으로 변모해온 여의도 공원을 사진 이미지로 드러낸다.

전시는 11월 26일까지. 문의 ☎ 02-2124-8928.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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