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사물놀이 김덕수 명인

입력 2017-11-01 10:01  

[연합이매진] 사물놀이 김덕수 명인

예인 인생 60년…'장구 신동'이 '최고 예인' 반열에

'글로벌 광대'로 지구촌 곳곳에 사물놀이 신명 전파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어느덧 60년 세월이 흘렀다.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는 남사당 놀이꾼인 아버지의 무동 타기를 하며 '새미'가 됐다. '장구의 신동(神童)'이 된 이 아이는 20대 중반 나이에 자신의 이름을 앞세운 풍물패를 만들어 '사물놀이'라는 새로운 예술 영역을 구축한다. 전통에 바탕을 둔 사물놀이는 시대와 절묘하게 어울렸고 한국의 담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도 크게 각광받았다. 내년은 사물놀이가 탄생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 예인 데뷔 60주년과 사물놀이 탄생 40주년을 계기로 사물놀이 창시자이자 이 시대의 '글로벌 광대'인 김덕수(金德洙·65) 명인을 만나봤다.





◇ 남사당 입문 60년…다섯 살 '새미'로 광대의 길


1957년 추석 이튿날의 충남 조치원 난장. 남사당패의 농악 소리가 장터를 쩌렁쩌렁 신명 나게 울렸다. 이날 유독 눈길을 모은 한 꼬마. 남사당 일원인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온 다섯 살짜리 아이는 고깔을 쓰고 어른의 목말을 탄 채 당실당실 춤을 추었다. 어른의 어깨에 올라 노는 어린아이, 즉 '새미'였다.

공연마당을 가득 메운 구경꾼들은 새미의 깜찍한 춤사위에 웃음과 박수를 아낌없이 보냈다. 이에 힘입어 아이도 더욱 신바람을 냈다. 장터는 온통 환호와 흥분, 열광의 도가니. 사물놀이 명인 김덕수는 이렇게 시대 최고의 광대로 탄생했다.

"새미로 어깨 위에 서서 보니 세상이 다 제 아래에 있었어요. 함께 신바람이 나서 소리치고 춤추는 사람들! 정말 좋았던 첫 경험이었지요. 그날로 저는 광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장터국밥이 그날따라 어찌나 맛있던지요!"

'글로벌 광대' 김덕수(65). 그는 남사당 데뷔 60주년을 회고하며 뭉클한 감회를 피력했다. 돌아보면 어제인 듯 생생한 기억들! 하지만 허옇게 센 머리만큼 벌써 그 많은 세월이 흘렀나 싶으니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다. 게다가 두어 달이 지나면 자신이 창시한 사물놀이의 탄생 40주년이 아닌가!

김덕수 명인이 '장구 인생'을 살게 된 배경에는 가족 내력이 있다. 예인이던 할아버지의 집은 마을 농악꾼들의 집합소였고,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아버지는 일본 징용에서 돌아온 뒤 남사당 걸립패와 어울리더니 벅구놀이(소고춤과 상모돌리기)의 명인이 됐다. 타고난 신명의 유전자라고나 할까. 아버지는 아들 덕수가 태어나기 전부터 사당패 친구들에게 '아이가 사내라면 사당패에 내놓겠노라'고 약조했다.





◇ 아들의 남사당패 합류, 강력히 반대한 어머니



"어머니는 펄펄 뛰시며 반대하셨지요. 데뷔 하루 전인 그해 추석날 밤, 어머니는 잠들어 있는 제 옆에서 아버지와 대판 싸우셨고요. 아버지는 9남매 중 둘째 아들인 저를 남사당의 길로 데려가시려 했지만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 모두가 반대했지요. 하지만 아버지가 절실히 원하시고 저 또한 그 길이 괜히 좋았던 걸 어쩌겠어요. 그날로 저는 아버지와 함께 집을 떠났습니다."

물 만난 고기였다고 할까.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남사당패의 횃불이 꺼질 때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공연했다. 하지만 힘든 줄 모르고 놀이판에 푹 빠져들었다. 무대는 그저 신나는 놀이터였던 것. '장구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자란 그는 일곱 살 때인 1959년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받으며 하루아침에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이후 김덕수는 땅을 박차고 창공을 향해 훨훨 날아오르는 큰 새로 성장해간다. 그리고 서울 남산에 있는 국악예술학교(현 국립전통예술중고)에 입학하면서 국내를 넘어 외국 무대로 본격 진출한다. 특히 멕시코올림픽이 열린 1968년 국립민속예술단이 결성되면서 해외 공연은 한층 많아져 아시아는 물론 북미, 아프리카, 중남미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장구를 신들린 듯 두드려댔다. 1976년에는 한국문화사절단 대표로 몬트리올 올림픽에 참가하기도 한다.

"데뷔 60주년을 맞아 지난 9월부터 12월까지 매달 한 차례씩 저의 예술적 본향인 세종시에서 기념공연을 하고 있어요. 조치원의 난장이 있었던 그곳은 다섯 살 때 제가 남사당의 광대가 됐던 태생지였던 터라 '여민락 콘서트'를 열 때마다 감회가 무척 깊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60년 동안 저의 삶도 천지개벽이라고 할 만큼 달라진 거지요. 11월 3일 저녁에는 '김덕수 예인 인생 60주년 기념 <신명>'의 공연무대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마련한답니다."



◇ 세계인의 연희 '사물놀이' 탄생 40주년



꽹과리, 북, 장구, 징으로 대표되는 사물악기는 상고시대부터 지금까지 한민족의 삶과 고락을 함께해왔다. 농사철은 물론 평상시에도 밤과 낮, 마당과 들녘을 가리지 않고 울려댐으로써 온 세상에 신바람을 일으켰다. 우리 민족의 혼과 리듬이 실린 타악기들은 그런 만큼 일본강점기에는 민족혼 말살의 대상이 됐다. 해방 후에는 서구문화가 밀려들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일상에서 기를 펴지 못한 채 푸대접 속에 움츠러들어야 했다.

1970년대 들면서는 시위 분위기를 돋우는 악기로 등장하자 서슬 퍼런 유신 정부는 열린 공간에서 풍물공연을 하지 못하도록 억제했다. 풍물악기가 '데모의 앞잡이'라는 것이다. 서구종교의 급속한 팽창도 무속의 대표악기인 사물을 뒷전에서 웅크리게 한 장본인이 됐다. 김덕수는 그 억압의 시대에 문화적 '금기'를 깨고 '반항'하는 데 앞장선 셈이다.

"열린 공간의 풍물연주가 어려워지자 실내 소극장에서 공연할 방법을 찾게 됐어요. 1970년 일본 오사카 엑스포에서 만난 건축가 김수근(1986년 타계) 선생은 사물놀이가 탄생할 수 있는 놀이판을 만들어주겠노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생긴 게 소극장 '공간사랑'인데 1978년 이곳에서 사물놀이 공연이 처음으로 이뤄집니다."

가야금 연주가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말처럼 그해 사물놀이 탄생은 '국악계에서 지진이 날 정도의 강력한 사건'이었다. 김덕수(장고)·이광수(북)·최종실(징)·김용배(꽹과리·작고)로 구성된 김덕수사물놀이는 당시 열린 제1회 '공간 전통음악의 밤' 공연에서 용출하는 에너지로 일거에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로써 명맥이 끊겨가는 듯하던 농악은 예술의 한 분야로 당당히 다시 선 데 이어 지구촌 음악으로 급속히 확산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사라져 가던 전통이 새로운 문화로 재창조된 것이지요. '전통은 시대와 함께 변화한다'고 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그런 점에서 1982년은 특별한 해였지요. 그해 세종문화회관에서 바이올린, 피아노와 함께 사물놀이 협주곡을 연주함으로써 사물놀이를 다양한 장르로 확산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핵심과 본질은 지키되 공존과 융합을 통해 새로운 문화로 거듭나자는 거지요. 이를테면 전통의 현대화이자 대중화이며 세계화입니다."







◇ 사물놀이를 세계만방에…댈러스 세계 타악인 대회



그해는 사물놀이를 세계만방에 알리는 첫 계기이기도 했다.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세계 타악인 대회'가 바로 그 무대. 지축을 뒤흔드는 음향과 신들린 듯 영혼을 일깨우는 연주 모습에 흠뻑 빠진 관객들은 커튼콜을 거듭 요청하며 무려 15분여 동안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김덕수는 "이날 공연으로 사물놀이는 '한방에'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고 회고했다. 자신을 비롯한 공연자들도 관객의 뜨거운 반응에 절로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10여 년 동안 국내외 무대를 누비던 김덕수사물놀이패가 해체된 뒤에도 사물놀이 그 자체는 대표적 연희양식으로 꿋꿋이 남아 저변을 날로 넓혀나갔다. 그리고 한국문화의 세계화는 물론 남북화합에도 크게 공헌하게 된다. 1990년 남북음악교류 일환으로 평양에서 사물놀이가 공연돼 북한동포들의 마음을 깊이 울린 게 대표적 사례다.

"그해 10월 14일부터 24일까지 평양의 2·8문화회관에서 열린 범민족통일음악회에는 서울전통음악연주단 대표 17명이 참가했는데 황병기 선생을 단장으로 해 판문점을 넘어오고 갔지요. 분단 이후 민간단체로서는 최초로 방북 공연을 한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이처럼 남과 북을 쉽게 하나로 이어주는 게 우리 전통문화요 그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사물놀이입니다. 남녀노소는 물론 남과 북 모두가 한 자리에서 '얼쑤' 하며 공감할 수 있는 게 바로 사물놀이라는 거죠. 이후 1998년 11월 초 모란봉극장에서 개최된 윤이상통일음악회를 계기로 한 차례 더 평양에 가게 되는데 그때의 반응도 가히 폭발적이었지요."

1995년 미국 뉴욕의 유엔 총회장에서 열린 특별무대 공연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유엔 창립 50주년을 맞은 기념음악회에서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함께 '사물놀이를 위한 협주곡 <마당>'을 연주했다. 정명훈이 KBS교향악단을 지휘한 가운데 김덕수는 바이올린 정명화, 첼로 정경화, 성악가 신영옥, 조수미 등과 함께 협연해 세계를 감동케 했다.

김덕수 명인은 "전 세계 지도자들 앞에서 동서 예술의 조화와 상생, 그리고 어울림을 선사해 최고의 열광과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며 뭉클했던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 "세상 다하는 날까지 장구채 잡을 터"



기자가 김덕수 명인을 만난 10월 중순,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정은 고운 단풍으로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뜨겁고 푸른 여름날이 가고 황금빛 찬란한 가을을 맞은 것이다. 인생 황금기를 보내고 있는 김 명인도 이 계절의 풍광을 닮았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1998년 이 대학에 연희과를 창설한 그는 지난 20년 동안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 20주년인 내년 초 교수직에서 공식 퇴임한다.

"민속음악 관련 학과 개설은 이 대학의 연희과가 처음이었습니다. 지금은 새 학년 입학생을 모집 중인데 올해도 외국인 학생 네 명을 받아들일 예정이죠. 사물놀이를 비롯한 전통연희는 한민족의 문화에 그치지 않고 이미 세계적 무형 자산이 됐습니다. 이를 더욱 폭넓고 심도 있게 정착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요."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교육기관에서 사물놀이가 전수되고 있다. 김 명인은 사물놀이의 국제화를 좀 더 체계적으로 꾀하기 위해서는 태권도의 사례를 사물놀이에도 적용해보는 방안을 국가 정책적으로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민족 고유의 무술인 태권도를 세계화하는 데 세계태권도연맹과 같은 국제기구가 크게 공헌했듯이 사물놀이의 국제화를 위해서도 세계적 기구의 출범이 이뤄져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사물놀이가 한민족만의 문화영역을 뛰어넘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세계 곳곳의 대학에 사물놀이 제자들이 교수로 활약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잘 말해줘요. 이를 위해서는 태권도의 사례처럼 입법을 통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는 교수 퇴임 후에도 공연은 물론 저서 집필 등을 통해 사물놀이 등 전통문화의 전수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아버지의 대를 이어받았던 예인의 길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이냐고 묻자 "사물놀이는 국가, 민족, 혈연의 벽을 이미 넘어섰다. 부모-자식을 떠나 인류 모두에게 신명의 문화로 전파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자식들의 진로는 본인 선택을 존중하겠다는 얘기다.

장구채를 언제까지 잡으려 하느냐는 질문에는 "사물악기 중 유일하게 독주가 가능한 악기가 바로 장구"라면서 "전통공연의 지휘자 격인 장구는 내게 분신이나 다름없다. 요즘도 사흘에 한 번꼴로 공연무대에 오른다"고 답했다.

"저는 태생적으로 광대예요. 이 세상 다하는 그날까지 장구채를 잡을 겁니다. 제게 이만큼 행복한 일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요, 허허허!"

역시 '신접(神接)한 경지'의 달인이다 싶다. 사단법인 사물놀이 한울림(1993년 창단) 예술감독이기도 한 김덕수 명인은 올 9월 1일 서울 인사동에 '김덕수와 함께하는 사물놀이 전용극장' 인사아트홀을 열었다. 제자들과 함께 매주 금·토·일요일에 비나리, 삼도 농악가락, 판굿 등을 상설 공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id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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