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여기서 죽기는 싫어요. 고향에 가서 죽고 싶어요."
서울에서 북동쪽으로 3천500㎞ 떨어진 러시아 동부 변방의 캄차카 반도. 한겨울 기온이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는 이 혹한의 땅에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온 동포들이 있다.
대다수는 해방 직후 북한과 소련 간 노무자 파견 조약에 의해 북한지역에서 캄차카로 이주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노동력이 부족해진 구소련 당국이 북한에 들어와 노무자들을 모집하자 굶주림에 시달리던 주민 약 3만 명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캄차카 반도로 이주했다.
이들은 돈을 벌어 몇 년 후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내달 9일 개봉하는 '고향이 어디세요'는 이들의 기구한 삶과 애환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1995년 캄차카 반도에서 조선인들의 비극적인 삶을 목격한 정수웅 감독이 20년이 넘는 기간 수차례 이 지역을 왕래하며 이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다.
포항이 고향인 손진택 할아버지는 집에 처자식을 남겨두고 만주로 갔지만, 38선이 그어지는 바람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캄차카로 들어오게 됐다. 캄차카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렸지만,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은 늘 가슴 한쪽에 간직한 채 살아왔다.
손 할아버지는 제작진의 도움으로 서울에 사는 아들과 딸을 찾게 되고, 아버지가 죽은 줄로만 알고 제사를 지내왔던 자식들과 캄차카에서 상봉한다.
임양한 할아버지는 18살 때 돈을 벌기 위해 어머니 몰래 노무자에 지원한 뒤 영영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꿈에도 조선이 보인다"며 고향과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어장 노동자나 벌목공으로 험한 일을 도맡았던 조선인 중 많은 이들이 혹한과 기아에 시달리다 숨지기도 했지만 소련 당국은 물론 조국으로부터 외면받았다.
한 노인은 1947년 전염병과 기아로 벌목장에서 일하던 조선인 300여 명이 사망했지만 아무런 조사 없이 집단 매장당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에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조국에 대한 원망을 토로한다.
1995년 첫 촬영 당시 캄차카에는 2천여 명의 한국인 동포들이 남아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이제는 1세대 중 극히 일부만이 생존해 있는 상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1세대 동포 중 살아남은 이도 김재권 할아버지 한 명뿐이다.
김 할아버지가 촬영을 마치고 떠나는 취재진을 몇 번이고 붙잡으며 아쉬워하는 장면에서는 조국으로부터 외면받은 채 한평생 외롭게 지내온 이들의 절절한 한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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