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아이 업고 '레디 고' 외친 한국 최초 여성영화감독

입력 2017-10-30 11:42   수정 2017-10-30 16:55

갓난아이 업고 '레디 고' 외친 한국 최초 여성영화감독

자서전 '박남옥'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지난 4월 타계한 박남옥 선생은 영화 '미망인'(1955)을 남긴 한국 최초의 여성영화감독이다.

신문사 기자로 일하다 영화촬영소에 들어가 영화 일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1954년 6월 아이를 낳은 직후 전쟁미망인을 다룬 영화 '미망인' 제작에 들어갔다.

해산 사흘 후 영화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영화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한 그는 등에 갓난아기를 업은 채 한 손엔 카메라, 한 손엔 기저귀 가방을 들고 전국 각지를 돌며 촬영하러 다녔다. 아침마다 장을 봐 스태프들의 밥을 지어 먹이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작품이 완성된 뒤에는 영화를 배급하기 위해 아이를 업고 팔도를 돌아다녔다.

단 한 편의 영화 '미망인'을 남긴 그는 1997년까지 잊혔다가 서울여성영화제가 그의 자취를 추적해 '미망인'을 재개봉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그 후 임순례 감독의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2001)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서 여생을 보내는 모습이 공개됐지만 관심은 잠시였고, 지난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아흔다섯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박남옥'은 박 감독이 생전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며 쓴 자필 원고를 외동딸 이경주 씨가 보관해오다 글의 순서와 사실관계를 정리해 출간한 책이다. 박 감독이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약 3년에 걸쳐 쓴 글로, 유년부터 노년까지 다사다난했던 인생을 회고한다.

학창 시절 투포환 선수로 활약하며 한국 기록을 경신했던 이야기, 이화여전을 중퇴한 뒤 도쿄로 미술 유학을 가겠다고 밀항선을 탔다가 배가 좌초하는 바람에 일본의 수용소에 있다가 돌아온 이야기, 영화촬영소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영화 일을 배우고 영화계 인사들과 나눴던 추억 등이 담겨 있다.

특히 '미망인'을 촬영·제작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자동차가 지나가는 장면을 찍기 위해 종일 기다렸던 에피소드, 한겨울 빈집에서 필름을 편집하다 아이가 폐렴 직전까지 가 병원을 전전했던 기억, 녹음실 직원들로부터 "연초부터 여자 작품을 녹음할 수 없다"며 문전박대당했던 이야기 등 다양한 일화를 통해 영화를 향한 그의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마음산책. 276쪽. 1만4천원.

hisunn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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