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호이 총리의 조기선거 카드에 스페인 야당들 '허를 찌른 반격' 호평
독립공화국 선포한 푸지데몬, 해외서 회견 열어 "선거 참여"
카탈루냐 독립정파들 입장 갈려…분리독립 목소리 구심점 잃은 듯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스페인으로부터 '독립공화국'을 선포한 카탈루냐 지도부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갈지자' 행보를 보이면서 지도력 부재를 노출하고 있다.
자치정부를 이끌던 카를레스 푸지데몬 수반 등 수뇌부가 스페인의 수사망을 피해 벨기에 브뤼셀에서 12월 선거 때까지 후일을 도모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카탈루냐 민족주의 정파들 사이에서는 스페인이 제시한 12월 조기 선거 참여 여부를 놓고 내분이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바르셀로나 등 카탈루냐에서는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조직하는 동력이 급속도로 위축되면서 스페인 정부가 '쾌재'를 부르고 있다.
먼저 스페인에서는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가 던진 12월 조기 선거 카드가 카탈루냐 독립세력의 '허를 찌르는' 기습공격으로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스페인 집권 국민당(PP)과 사사건건 대립해온 급진좌파 정당 포데모스의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대표조차 12월 선거 계획에 대해 "라호이 총리가 또 한 번 대담하게 반격에 성공했다"고 호평했을 정도다.
국민당의 페르난도 마르티네즈 마이요 의원도 프랑스 일간 르몽드와 인터뷰에서 "라호이 총리가 경제대책으로 스페인 경제를 구하더니 이번에는 별로 장악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도 카탈루냐를 구했다"고 치켜세웠다.
실제로 카탈루냐 의회가 독립공화국 선포안을 가결하자마자 라호이 총리가 내놓은 자치의회 해산과 12월 조기 선거 방침은 카탈루냐 독립계열 정파들과 독립을 부르짖던 시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푸지데몬 수반이 속한 카탈루냐유럽민주당(PDeCAT)은 선거 참여로 분리독립 운동의 대의를 다시 한 번 인정받겠다면서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이미 대내외에 독립을 선포한 '공화국'이 스페인 정부가 짜놓은 선거 프레임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간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스페인 정부가 짜놓은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분리독립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독립을 선포한 카탈루냐의 행보와 정면으로 어긋나는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다 독립국의 수반이라는 푸지데몬은 수뇌부만 대동하고 벨기에 브뤼셀로 '도망치듯' 떠난 뒤 공정한 재판을 보장받을 때까지 해외에서 선거를 준비하겠다고 밝혀 공분을 사고 있다. 대규모 시민 불복종을 공언해놓고 본인은 해외로 쏙 빠져나갔다는 비판이 가능한 대목이다.
카탈루냐 연립정부에 참여한 공화좌파당(ERC)은 푸지데몬과 달리 조기 선거 방침에 대해 "스페인의 함정일 수 있다"면서 참여 여부와 방식을 고민하겠다는 입장이다.
카탈루냐 의회에서 캐스팅보트를 쥐었던 민중연합후보당(CUP)은 한 발 더 나가 스페인이 제시한 조기 선거 자체가 정당성이 없다면서 참여하지 않고 장외투쟁으로 스페인에 저항한다는 강경한 태도다.
이처럼 분리독립이라는 '대의'를 위해 뭉쳤던 카탈루냐 민족주의 정파들이 라호이 총리의 기습공격에 '사분오열'되는 분위기다.
바르셀로나 시민 엘리센다 카라스코 씨는 르몽드와 인터뷰에서 "선거 때 투표장에 가야 할지 모르겠다. 선거에 참여한다는 건 독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처럼 독립공화국 선언을 이끌었던 정부와 의회 지도부가 갈팡질팡하면서 길을 잃은 모습을 보이자 바르셀로나 도심을 가득 메우던 주민들의 독립 열기도 급속도로 식고 있다.
지난 27일 자치의회가 독립선포안을 가결할 때만 해도 군중으로 가득 찼던 카탈루냐 자치정부 청사 앞 산자우메 광장에는 많아야 서른 명도 되지 않은 사람들이 가끔 모여 카탈루냐기 '에스텔라다'를 흔들 뿐이라고 르몽드는 전했다.
매일 같이 자치정부 청사 앞의 독립 집회에 참가해온 한 시민은 르몽드에 "중심을 잃었다. 왜 모든 것이 갑작기 중단됐는지 모르겠다. 이벤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페인 정부의 카탈루냐 자치정부 '접수' 작업도 지방공무원들의 대규모 반발에 직면할 것이라는 당초 예측과 달리 현재까지는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스페인 정부가 밝혔다.
중앙정부의 카탈루냐 대표부 최고행정관 엔리크 미요는 "카탈루냐 공무원들의 업무 보이콧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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