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한양도성] 익숙한 듯 새로운 서울 사대문

입력 2017-11-04 09:30  

[가을엔 한양도성] 익숙한 듯 새로운 서울 사대문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과 보물 1호 흥인지문(동대문). 어지간한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일 정도로, 한양도성 사대문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러나 서대문은 이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지하철 5호선 역사 이름으로만 남았고, 도성의 북문인 숙정문은 그 위치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듯하면서도 늘 새로운 사대문을 깊어가는 가을에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 600년 제 자리 지킨 '으뜸 문' 숭례문

한양도성 사대문 가운데 '으뜸 문'을 꼽으라면 누구나 숭례문(崇禮門)을 들 것이다.

태조 7년인 1398년 지어진 이 문은 조선 왕조와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치며 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금의 그 자리를 지켜왔다. 심지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국토가 쑥대밭이 되는 마당에서도 굳건히 수도 한양의 관문 역할을 해 왔다.

이 때문에 2008년 2월 방화로 인한 소실은 그동안 숭례문이 버텨온 600여 년의 세월에 비춰볼 때 허무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의 숭례문은 역사적 고증을 거쳐 전통방식으로 원형에 최대한 가깝게 복원된 상태다.

조선 시대 여느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숭례문 역시 풍수지리를 세심하게 고려해 지어졌다고 한다. 숭례문 밖에 팠다는 '남지'(南池)라는 연못은 그 한 가지 사례다.

세종실록은 "경복궁의 오른편 팔에 해당하는 곳이 산세가 낮고 미약하며 넓게 열려서 다 보이고, 끌어안는 형세가 없다"며 "그래서 남대문 밖에 연못을 파고, 문 안에 지천사(支天寺)를 뒀다"고 기록했다.


숭례문이 일반적인 편액과 달리 세로로 쓰인 것을 두고도 풍수지리와 연관을 짓는 시각도 있다.

한양도성 남쪽으로는 불(火) 기운이 센 관악산이 자리하는데, 세로로 써 놓으면 마치 불이 타오르는 모양처럼 보이기도 하는 '숭례'(崇禮) 글씨로 '맞불'을 놨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양도성 안에서 불이 나지 않도록 막으려 했다는 이야기다.

'한양도성, 서울 육백 년을 담다'를 쓴 홍순민 명지대 교수는 "이런 이야기는 그저 민간의 설(說)일 뿐 그 진위와 시비를 가릴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고 선을 긋는다.

그에 따르면 '숭례문'이라는 글씨를 쓴 사람도 미스터리다. 양녕대군이라는 말도 있고, 세조∼성종 대에 활동한 정난종이 썼다는 설도 있고, 명종 대 공조판서를 지낸 유진동이 썼다는 주장도 있다.

누가 썼든 간에 '숭'(崇)자를 보고 불꽃이 떠오를 정도로 힘이 담긴 글씨라는 점은 같다. 숭례문을 직접 찾아가 이 편액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숭례문만 보기 아쉽다면 서울 중구의 '한양도성 스탬프투어 남산 3코스'를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 해설사와 함께 광희문∼장충체육관∼N서울타워∼팔각정∼조선신궁터∼안중근의사기념관∼백범광장∼숭례문 5.4㎞ 구간을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걷는 코스다.

신청은 희망일 3일 전까지 중구 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 하면 된다.


◇ 국왕이 사냥·능행으로 드나들던 흥인지문

한양도성의 동쪽 출입문인 흥인문(興仁門), 또는 흥인지문(興仁之門)은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동대문 패션 타운·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동대문성곽공원 사이에 있다. 불야성을 이루는 인근 지역과 은은한 조명을 받는 옛 문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흥인지문은 그 위치 때문에 서울 동쪽 지역, 그러니까 한반도 중앙부로 오갈 때 이용하는 문이었다. 특히 임금이 교외로 사냥을 나가거나, 선대 국왕의 능(陵)에 참배를 갈 때면 주로 이곳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양주 홍복산에서 시작해 수락산·불암산·용마동·아차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서울의 동쪽으로 뻗어 있고, 이곳에는 태조의 건원릉을 비롯해 태릉·강릉·광릉 등이 자리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한양도성 사대문의 '제 이름'을 부르자는 취지에서 '동대문' 대신 '흥인지문'이라고 부르는 이가 더 많아졌다. 재미있는 점은 한양도성 동쪽 문의 정식 명칭은 의외로 '흥인문'이었다는 점이다.

홍순민 교수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에서 '흥인문'이라는 단어는 전 시기에 걸쳐 90여 번이나 등장하지만, '흥인지문'은 세조실록 한 번과 조선 말기 세 번가량 나타나는 게 전부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1741년 4월 영조도 저녁 경연 자리에서 이 점을 궁금해했다고 한다.

그는 관원을 향해 "돈의문과 숭례문 두 문의 문액은 모두 단지 '돈의문'·'숭례문'으로 썼는데 흥인문의 문액만 홀로 '흥인지문'이라고 썼으니 그 뜻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것이다.

중앙버스전용차로 공사 중인 종로 한가운데 '섬'처럼 자리한 흥인지문을 가보면 다른 문과는 달리 독특한 정사각형 모양의 편액을 확인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이 편액을 쓴 사람인지 누구인지, 왜 '지'(之)자를 덧붙였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 온데간데없는 돈의문…흔적 알리는 표지만 '덩그러니'

숭례문과 흥인지문과 달리 한양도성의 서쪽 문인 돈의문은 찾아가 볼 수 없다. 1915년 3월 일제가 도로 확장공사를 한다며 철거해버렸기 때문이다.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새문안로를 따라 서울역사박물관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그 터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옛 문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표지만 유리 난간에 쓸쓸히 붙어 있다.

표지는 "돈의문은 한양도성 서쪽 문으로, 흔히 '서대문'이라고 불린다"며 "최초의 돈의문은 1396년(태조 5년)에 도성 8개의 성문과 함께 건설됐으나 1413년(태종 13년) 새로 지어진 서전문이 성문의 기능을 대신했다. 1422년(세종 4년)에 다시 서전문을 닫고 이 지점에 새로운 돈의문이 세워졌다"고 전한다.

표지가 전하는 유래처럼 '새로 지어진 문'이었기 때문에 돈의문은 '새문' 또는 '신문'이라고도 불렸다. 근방의 '신문로', '새문안로', '새문안교회' 같은 명칭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왕·왕비·고위 왕실 가족의 장례 행렬이 도성 서쪽으로 갈 때는 역시 '으뜸 문'인 숭례문을 통해 나갔다. 반면,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소의문(昭義門)을 통해 운구했다.

하지만 고종의 생모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장례 행렬은 숭례문으로 나가기도, 그렇다고 소의문을 통과하기도 애매해 돈의문을 지났다고 한다.


◇ 한양도성 북문은 숙정문…기우제 때 주로 쓰여

한양도성 북쪽 출입문은 '숙정문'(肅靖門)으로, 창의문에서 혜화문에 이르는 백악 구간 4.7㎞ 코스의 중간 지점에 있다. 다른 문과 달리 유일하게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것이 특징이다.

지금의 모습은 197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도성을 복원할 때 망루를 올리면서 만들어졌다. 원래 모습이 어땠는지는 알 길이 없어 다른 문을 참조해 복원한 것이다.

건물 형태는 조선 초기 태조 대를 기준으로 재건했는데, 현판의 이름은 당대의 명칭인 '숙청문'(肅淸門)이 아닌 중종 이후 문헌에 등장하는 '숙정문'으로 써 달았다.

도심 한복판 대로에 자리한 다른 사대문과 달리 산 중턱에 있다 보니 가는 방법도 복잡하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내려 1111번이나 2112번 버스를 타고 '명수학교 정류장'에 내린 뒤 20분은 걸어 올라가야 한다.

이 같은 점은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여서, 사실 출입을 위한 문이라기보다는 동서남북 구색을 맞추기 위해 지은 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곳을 나와도 골짜기를 만나게 될 뿐 큰길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가뭄이 들면 숭례문을 닫고 대신 이곳을 열어 기우제를 지내는 등 의식용 문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숙정문을 지나는 한양도성 백악 구간은 1968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노리고 급습한 1·21일 사태 이후 40년 가까이 '금단의 구역'으로 남았다가 2007년에서야 시민에 개방됐다. 3∼10월에는 오후 4시까지, 11∼2월에는 오후 3시까지 운영한다.

특히 창의문·숙정문·말바위 안내소를 통해 이 구간을 탐방하려면 반드시 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여권 같은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ts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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