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한양도성] 시간도 멈춘 성곽마을…도시재생으로 날갯짓

입력 2017-11-07 09:30  

[가을엔 한양도성] 시간도 멈춘 성곽마을…도시재생으로 날갯짓

이화·창신·부암 등 9개 권역 22개 마을…"가을 감성에 딱"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서울 한양도성은 오랜 세월 성벽 아래 오밀조밀 모인 가옥을 중심으로 '성곽마을'을 품어왔다. 시간이 멈춘 듯 바람도 쉬어가는 이곳에서 가을 정취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9개 권역 22개 마을에서는 역사와 사람까지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전면적 재개발 대신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도시재생으로 부활의 '날갯짓'이 한창이다.

시 관계자는 "성곽마을 재생사업은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마을 계획이라는 점이 특징"이라며 "권역별로 마을 특성이 묻어나는 지역 자산을 활용해 마을 정체성 강화, 한양도성과 조화로운 경관 관리, 주거지로의 안정성·지속성 강화, 마을관리방안 수립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벽화마을을 넘어서…예술이 꽃피는 이화·충신

이화·충신권 성곽마을은 국내·외 관광객에게 '이화벽화마을'로 잘 알려진 곳이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향해 총총 올라가는 시멘트 계단, 그 좌우로 늘어선 아기자기한 벽화, 이국적인 소품 가게·카페는 '셀카봉'을 든 방문객을 손짓한다. 1970년대 느낌이 나는 옛 교복을 빌려입은 관광객은 더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시는 이곳이 대학로와 가까워 예술·문화 인프라가 풍부한 점에 주목, 특색 있는 예술문화지대로 가꾸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조선 5대 명승지'로 꼽힐 정도로 산새가 빼어나 많은 문인이 찾아와 풍류를 즐겼고, 석양루·조양루·이화정 등 왕족의 저택·정자가 많았다. 조선 시대 우유를 공급하던 '유우소'(乳牛所)가 있어 보양식 '타락죽'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시 관계자는 "이화·충신권 성곽마을은 대학로와 가까워서 2000년대 이후 문화·예술인이 많이 들어와 산다"며 "서울 최초 연립주택단지이자 주거사 박물관인 '이화동 국민주택단지'가 보존되는 등 예술과 문화가 숨 쉬는 동네"라고 소개했다.

이곳을 찾는다면 곳곳에 숨겨진 박물관도 꼭 들러보자.

부엌박물관 '배오개', 대장간 '지붕 위의 장닭', 마을주민의 삶을 담은 박물관 등 소박한 박물관은 이화·충신권에서만 만날 수 있는 숨겨진 보석 같은 장소다.


◇ 전국 도시재생 '선봉' 창신…봉제산업 메카 꿈꾼다

창신권 성곽마을은 1970년대 이래 우리나라 봉제산업을 선도한 곳이다. 청계천 일대 평화시장에 모여 있던 봉제공장이 하나둘 창신동으로 옮겨오면서 한때 크고 작은 봉제공장이 3천 개나 있었다고 한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이자 경쟁력은 인근 동대문 의류 산업과 연계해 생산→유통→판매의 모든 과정이 한 지역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동대문 상인이 기획과 디자인을 하면, 이후 창신동 작업장으로 넘어와 바로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최근 열악한 생산 여건, 인력난, 저렴한 중국산의 공습 등으로 이곳은 한동안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2014년 5월 숭인 지역과 묶여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되면서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주민을 몽땅 내보낸 채 부수고 뒤엎어 아파트를 세우는 기존 개발 방식이 아닌, 사람과 마을이 어우러지는 도시재생의 첫 시범 사례가 된 것이다. 더욱이 올해 새 정권이 들어서고 도시재생이 중앙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로 자리 잡으면서 이곳은 서울을 넘어 전국이 주목하는 장소가 됐다.


사실 창신권은 조선 시대부터 수백 년간 차곡차곡 쌓여 온 역사 문화 자원도 풍성한 곳이다.

실학 선구자인 이수광(1563∼1628)은 창신동 '비우당'(庇雨堂)에서 한국 최초 백과사전 형식의 책인 '지봉유설'(芝峰類說)을 집필했고, 단종 왕비인 정순황후(1440∼1521)는 동망봉에 올라 남편이 유배된 영월 땅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나 경성부청 등을 짓는 데 쓴 돌을 이곳에서 캐 갔다. 창신동 뒤편에 있는 깎아내린 듯한 절벽이 바로 당시의 채석장 흔적으로, 이곳은 지역 명소로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시는 창신권 성곽마을의 보행로·계단·난간을 정비하고, 어두운 골목에는 태양광 조명과 CCTV를 다는 등 마을 정비에 공을 들였다. 또 백남준 생가터 한옥은 '백남준 기념관'으로 변신해 관람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시 관계자는 "청년 예술인 활동가와 봉제인 공동체를 통해 자생적인 도시재생을 이끌어 나갈 것"이라며 "봉제공장과 한옥 등 다양한 역사·산업 자원을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 직접 가보는 '몽유도원' 부암…근대 문화 숨 쉬는 행촌

부암권 성곽마을은 수려한 자연 속 도성, 문화재, 미술관 등이 어우러진 곳으로, 지금도 많은 방문객이 찾아온다. 안견의 유명한 산수화 '몽유도원도'의 실제 배경도 이곳이다.

부암(付岩)이라는 지명은 세검정 쪽 길가에 높이 2m에 달하는 '부침바위'가 있던 데에서 유래했다. 백악과 인왕산 능선을 병풍처럼 잇는 한양도성과 창의문, 자하문 밖 서쪽 골짜기 무계동은 조선 시대 때에도 골치 아픈 도성내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고자 하는 선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부암동은 1950년대까지 전국에서 가장 이름난 한지 생산지이기도 했고, 성북동과 더불어 18세기 이래 옷감을 짜 햇빛에 말리는 '표백업'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시 관계자는 "주체적인 주민 공동체 활동을 토대로 '도심 속 자연마을'로 지역 정체성을 유지, 보호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행촌권 성곽마을은 경희궁과 사직단 등 문화유적은 물론, 독립문·서대문형무소·경교장·딜쿠샤·홍난파 가옥 등 근대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딜쿠샤 인근에는 수백 년 나이를 자랑하는 아름드리 '행촌동 은행나무'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예나 지금이나 오가는 이를 맞는다.

이곳에는 1884년 잠상공사(蠶桑公司)가 설립돼 경희궁 후원에 뽕나무 수천 그루를 심은 것을 계기로 서울 실크 생산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또 프랑스인 쁘레상이 무악재를 넘어 오가는 나무장수에게 '양탕국'이라고 불린 커피를 팔아 우리나라 커피 문화의 씨앗을 뿌린 곳이기도 하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김상용 시인, '감자'의 김동인 작가,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 등이 이곳에서 글을 쓰는 등 문인과 학자의 마을로도 이름을 알렸다.

시 관계자는 "행촌은 많은 일조량을 자랑하는 저층 주택 옥상 등을 활용하는 '도시농업 시범마을'로 선정됐다"며 "인근 한양도성과 지역의 장소성을 존중하는 쪽으로 개발 방향을 잡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조용한 도심 주거지의 매력…삼선·성북·다산

삼선·성북·다산권 성곽마을은 비교적 조용한 주거지로, 번잡한 도심서 한 발짝 물러나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삼선권에서는 장수마을을 시작으로 삼선3·6구역 등에서 재개발 구역이 잇따라 해제됐다. 이곳은 대신 한성대·청년 예술가 등과 힘을 모아 '예술'을 소재로 한 성곽마을 재생이 추진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지역명 '삼선'의 유래인 '삼선평'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흰 모래사장과 잔디밭이 펼쳐진 한적한 농촌 지대로, 인가조차 드물었던 곳"이라며 "조선 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군사훈련장이자 운동장으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축구 경기와 자전거 경주대회가 열렸던 곳"이라고 소개했다.

성북권 성곽마을은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일제강점기 문인촌으로 이름을 날렸던 곳이다. 만해 한용운을 필두로 한 민족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에는 메주를 쑤어 궁궐에 납품한 곳이었는데, 지금도 마을주민이 직접 된장을 생산함으로써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성북권 성곽마을 가운데 북정마을은 1960년대 김광섭 시인이 사랑과 평화에 대해 노래한 시 '성북동 비둘기'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다산권 성곽마을은 도성 밖 남산 자락 도시민의 일상이 녹아 있는 지역이고, 혜화·명륜권 성곽마을은 조선 시대 성균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하숙촌을 모태로 하는 곳이다.

서울 시내 성곽마을 주거환경관리사업 관련 자세한 현황은 서울시 도시재생 홈페이지(uri.seou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ts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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