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생명 편집의 기술을 얻다…혁명일까 재앙일까

입력 2017-11-07 08:11   수정 2017-11-07 08:58

인류, 생명 편집의 기술을 얻다…혁명일까 재앙일까

신간 '김홍표의 크리스퍼 혁명'·'DNA 혁명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바야흐로 인간은 자연이 쓴 생명의 암호문을 읽고 쓸 뿐만 아니라 편집할 수 있는 기술까지 갖게 됐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Cas9)로 불리는 제3세대 유전자 편집기술은 특정 부위의 DNA를 찾아내 절단하고 원하는 유전자를 끼워 넣을 수 있다. 등장한 지 5년밖에 되지 않은 이 신기술이 제 궤도에 오르면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를 자유자재로 조작할 길이 열릴 것이란 관측이다.

오랜 상상을 현실로 만들 신기술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에 전 세계 생명공학계는 흥분의 도가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통제 못 할 과학기술로 인해 인간과 생태계가 돌이킬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커진다.

이 같은 흥분과 우려를 반영하듯 새로운 유전자 편집기술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신간들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김홍표의 크리스퍼 혁명'(동아시아 펴냄)은 활발한 과학 저술가인 김홍표 아주대학교 약학대학 교수의 저서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최신 연구 동향은 물론 탄생 배경이 된 현대 유전학 전반에 걸친 풍부한 정보를 담았다.

저자의 상세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대전환기를 맞은 생명공학계의 흥분까지 생생히 느낄 수 있다.

크리스퍼(CRISPR)는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의 약자인데 풀어보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분포하는 짧은 회문 반복서열'이란 뜻이다. 여기서 '회문'이란 '소주 만 병만 주소' 혹은 'race car'처럼 앞뒤를 뒤집어도 동일한 문장구조를 일컫는다.

생물의 유전정보는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사이토신) 등 4가지 DNA 염기의 사슬 속에 담겨 있다. 염기 사슬 중 일부는 회문 구조를 취하는데 DNA의 표식자 역할을 하며 그 부위를 인식하는 단백질과 함께 세포의 활성을 조절한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회문 구조로 된 DNA의 특정 부위를 찾아내는 가이드 역할을 하는 RNA와 해당 부위를 수술 메스처럼 정확하게 잘라내는 Cas9이란 절단효소로 이뤄져 있다.

생명공학자들은 원하는 DNA에 상응하는 RNA를 합성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실제 가위처럼 DNA를 편집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박테리아가 내부로 침투한 바이러스 유전자를 찾아낸 뒤 잘라내는 식으로 진화시킨 면역기능을 모방한 기술로, 박테리아를 공격하는 박테리오파지라는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탄생했다.

앞서 1990년대 중반부터 'ZFN'과 'TALEN'이라는 1·2세대 유전자가위가 쓰였지만, "정확하고 빠르며 값이 싼" 3세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혁명적이라는 평가다.

저자는 유전자가위를 인류의 획기적 발명품인 '바퀴'에 비유하면서 1·2세대 가위가 달구지나 자전거 바퀴라면 3세대 가위는 시속 100㎞로 질주하는 승용차 바퀴에 비견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새로운 유전자가위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유전자 편집기술을 이용한 백혈병 치료법이 2017년 8월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승인을 받았다. 에이즈의 원인인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암, 슈퍼박테리아, 간염바이러스, 독감바이러스,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조현병(정신분열증) 등 유전자와 결부된 수많은 질병의 치료법을 개발하는데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336쪽. 2만원.

신간 'DNA 혁명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이상북스 펴냄)는 새로운 유전자가위 기술이 가져올 생명공학 미래와 함께 그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생명윤리의 위기를 심도 있게 논한다.

저자는 한국생명윤리학회장을 거쳐 아시아생명윤리학회장으로 활동 중인 전방욱 강릉원주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다.

유전자 편집기술은 인류에게 질병 치료의 신기원을 열어줄 수 있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윤리적, 사회적, 규제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일례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인간의 줄기세포를 돼지 등 동물 배아에 주입해 인간의 세포로 이뤄진 대체 장기를 배양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장기 이식이 필요한 환자들에겐 더할 수 없는 희소식이다.

하지만 동물을 이용해 인간의 장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생물체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인간의 신경 조직이 돼지의 뇌로 전이될 경우 사람에 가까운 지능을 가진 동물이 탄생할 수 있고, 동물에 주입한 인간의 줄기세포가 생식세포를 형성할 경우 돼지 몸에서 나온 정자와 난자로 인간이 탄생할 수도 있다.

이는 윤리적 악몽이자 도덕적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상당수 국가에선 금지된 인간 배아를 이용한 유전자 편집 실험이 2015년부터 최근까지 중국과 미국에서 이미 7차례나 수행됐다. 영국과 스웨덴에서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미국 실험에는 한국 연구팀도 참여했다.

저자는 인간 유전자 편집 실험을 '미끄러운 비탈길'에 선 것에 비유한다.

"비탈길 꼭대기에 서 있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당신이 원하지 않는 곳으로 진행되고 결국에는 전혀 원하지 않았던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질병 치료를 위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인간 배아에 사용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인간을 개량하기 위해서도 사용하게 될 것이란 의미다. 이는 결국 편집한 인간 배아를 여성의 자궁에 착상할 날이 올 것이란 얘기다.

비단 인간 유전자를 둘러싼 문제만이 아니다. 유전자 편집에 의한 종의 복원이나 멸종을 포함해 비자연적 선택과 인위적인 돌연변이를 통해 자연을 변화시키려는 모든 시도가 생태계에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어떤 실험이 유익한지, 어디서 멈춰서야 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과 결정은 과학자들에게 맡겨 둘 일이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하는 민주적 통제를 거쳐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는 자연 진화의 속도와 능력을 뛰어넘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라는 도구를 손에 넣었다. 이제 우리 자신의 진화를 꼭 조절해야 하는가라는 당위의 문제를 질문할 때다." 332쪽. 1만8천원.

abullapi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