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목재수탈의 현장' 오대산 화전민 터 4곳 확인

입력 2017-11-15 07:00  

'일제 목재수탈의 현장' 오대산 화전민 터 4곳 확인

총면적 12만㎡·가구수 40호…제재소 터 1곳도 발견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일제강점기 시절 자원 수탈에 활용된 오대산 화전민 터의 실체가 현지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15일 국립공원관리공단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의 '화전민 터 지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지역 내에서 화전민 터 4곳이 발견됐다.

화전민 마을은 일제가 목재 수탈을 위해 강제 동원된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1975년 오대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당시에도 가옥이 남아있었다.

조사 결과, 화전민 터의 총면적은 11만9천500㎡로 파악됐다. 1지점이 2만1천500㎡, 2지점이 2만3천㎡, 3지점이 6만5천㎡, 4지점이 1만㎡로 각각 이뤄졌다. 전체 화전민 터의 가구 수는 약 40여 호로 추정된다.

조사는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의뢰를 받은 한양문화재연구원이 올해 8월 14일부터 지난달까지 실시했다. 조사 지역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산1번지로, 조사 면적은 총 161만㎡였다.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 관계자는 "돌담이나 가옥의 하부 구조물 등 석축 유구(遺構·건물의 자취)와 온돌을 통해 가구 수를 확인했다"면서 "가구 수는 종전 예상치보다는 적었다"고 말했다.

애초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는 예전 거주민을 대상으로 한 구술 인터뷰 등을 통해 이곳에 150여 호 규모의 마을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했다.

1지점 인근에서는 8천㎡ 규모의 제재소 터 1곳도 확인됐다. 이 터는 일제강점기 당시 제재소 등을 짓기 위해 인공적으로 능선의 하단부를 깎아 조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목재·자재 야적장과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만큼 지표상에서 제재소의 흔적이나 유물은 확인할 수 없었고, 기록과 증언을 통해 위치만 확인했다.

3지점에서는 근·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폐가 1채도 발견됐다. 이 가옥은 1960∼1970년대까지도 사람이 살던 곳으로 추정된다.

다만, 후대에 지붕 등 대수선이 이뤄진 데다 심하게 훼손돼 문화재적 가치는 낮은 것으로 한양문화재연구원은 판단했다.







한양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화전민 터와 제재소 터는 역사적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오대산 일대에서 자행된 목재 수탈의 현장으로서 그 가치가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번 조사가 지표 위에 드러난 유적이나 유물의 흔적, 지형 조건과 주변 유적의 분포 양상에 대한 것이었던 만큼 지하 문화재나 지표에 덮인 유물 등에 대해서는 추후 정밀한 고고학적 조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o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