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눈 돌리면 아름다운 해안 절경

입력 2017-12-09 08:01  

[연합이매진] 눈 돌리면 아름다운 해안 절경
제주 올레꾼이 가장 많이 찾는 7코스를 걷다

(서귀포=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놀멍 쉬멍 걸으멍 고치 가는 길'(놀면서 쉬면서 걸으면서 함께 가는 길)
전국적으로 걷기 열풍을 일으킨 제주올레. 2007년 9월 7일 올레 1코스(시흥초등학교∼광치기해변)를 시작으로 해마다 1∼5개의 코스가 개발됐다. 현재 21개 정규코스와 우도, 가파도, 추자도, 중산간을 지나는 알파코스 5개(1-1, 7-1, 10-1, 14-1, 18-1) 등 모두 26개의 코스가 있다. 총 길이는 제주 해안선 둘레 253㎞를 훨씬 웃도는 425㎞에 달한다.



올레길 코스가 지나는 크고 작은 마을은 모두 107개나 된다. 걷는 길은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광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제주 사람들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이런 매력 때문인지 개장 첫해 3천 명에 불과했던 올레꾼이 2013년에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올해 9월 7일까지 10년간 770만 명이 올레길을 찾았다. 올레길을 즐겨 찾는 도보여행자를 일러 올레꾼이라 부르는데 현재 모든 올레 코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주한 올레꾼도 1천600명을 넘는다.
제주올레는 코스마다 제각각 매력을 품고 있어 어디가 더 좋다고 콕 집어서 말하기 어렵지만 올레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7코스다. 이 코스는 서귀포시에 있는 제주올레 여행자센터를 출발해 외돌개, 돔베낭길, 일강정 바당올레, 법환포구 등을 지나 월평마을 아왜낭목 쉼터까지 이어진다. 사시사철 올레꾼들이 넘쳐 나는 이 코스의 총 길이는 17.7㎞로, 6시간 정도 걸린다.



◇ 대한민국 걷기 열풍 일으킨 올레길

올레 7코스의 시발점인 제주올레 여행자센터는 '올레꾼 베이스캠프'로 불린다. 올레길을 가꾸고 국내외로 홍보마케팅을 펼치는 사단법인 제주올레사무국이 들어선 3층 건물에는 여행자 안내 센터와 레스토랑 겸 카페인 '소녀방앗간x제주올레'가 있다.
기념품 판매소와 한실·도미토리로 구성된 50인 수용 규모의 여행자 숙소인 '올레 스테이'도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는 여권을 닮은 제주올레 패스포트를 구입하고 완주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패스포트는 코스별 시작점, 중간지점, 종착점에서 스탬프를 찍을 수 있게 돼 있다.
여행자센터에서 서귀교를 지나면 칠십리 시공원이다. '내 고향 서귀포' '서귀포 인연' '정방폭포' 등 제주와 관련된 시를 바위에 새겨 놓은 시비가 곳곳에 자리해 여유롭게 시를 감상할 수 있다. 그림 같은 공원에서 놓쳐선 안 될 명소가 천지연 폭포 전망대. 높이 22m의 깎아지른 기암절벽에서 쏟아지는 폭포를 내려다보면 답답하던 가슴이뻥 뚫리는 느낌을 받는다.
칠십리 시공원을 빠져나와 삼매봉(153.6m)으로 향한다. 삼매봉은 나지막한 오름으로 입구에서 황우지 선녀탕이 내려다보이고 정상까지 산책로가 포장돼 있다. 삼매봉 정상에 자리 잡은 팔각정 남성대는 수평선 멀리 남극노인성을 바라보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곳에 서면 서귀포 앞바다의 섭섬·새섬·문섬·범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으면 서쪽으로 마라도와 가파도가 보인다. 남성대를 내려오면 노란 털머위 꽃 군락이 장관을 이룬다. 털머위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잎 모양이 머위를 닮았다. 잎은 콩팥모양으로 두껍고 윤기가 있다. 꽃은 9∼11월 노란색으로 핀다.



◇ 이야깃거리 풍성한 '외돌개'

삼매봉 계단을 내려서면 명승지로 소문난 외돌개의 주차장이다. 여행자센터가 생기기 전에는 이곳이 7코스 시작점이었는데, 키 큰 야자수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남국의 풍광을 드러낸다. 설레는 마음으로 황우지 해안으로 내려선다. 85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선녀가 목욕했다는 선녀탕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명경지수처럼 파란 바다와 기암절벽이 감탄을 자아내고, 코스 선택을 잘했다는 마음이 불쑥 든다.
스노클링 명소로 입소문이 난 선녀탕을 빠져나와 아열대성 식물이 좌우로 늘어서 있는 덱 길을 걷는다. 250m가량을 가니 폭풍의 언덕에 닿는다.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바다를 향해 돌출한 기암괴석으로 '외롭게 홀로 솟았다'는 외돌개(명승 제79호)와 첫 대면을 하게 된다.
외돌개는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데 이곳에서는 외돌개가 주변의 해안절벽과 붙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0m 정도 더 가면 외롭게 홀로 솟아 있는 외돌개를 만난다. 높이 20여m, 폭 7∼10m의 외돌개는 150만 년 전 화산 폭발로 생긴 바위다. 구멍이 작고 조밀한 회색을 띠는 조면안산암으로 형성돼 있다.
파도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해안침식 절벽과 함께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연출하는 외돌개는 이야깃거리도 풍성하다.
고기잡이를 나간 할아버지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자 할머니가 바다를 향해 통곡하다가 굳어 바위가 되어버린 슬픈 전설이 있는가 하면, 고려말 원나라 목호(牧胡)의 난 때 최영 장군이 범섬으로 달아난 세력들을 토벌하기 위해 외돌개를 장군 모습으로 변장시켰다고 하여 '장군바위'라는 이름도 얻었다.
할망과 하르방의 애틋한 사랑이 어린 외돌개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외돌개 해안절벽이 내려다보이는 대장금 촬영지 홍보판을 지나면 돔베낭길이다. 돔베는 제주어로 도마, 낭은 나무를 뜻하는 말로 예전에 도마처럼 잎이 넓은 나무가 많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무 덱 길과 흙길이 연달아 나타나고, 펜션 '바닷가 하얀집'과 '뷰크레스트 갤러리 앤 카페' 등이 올래꾼의 시선을 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낭떠러지 밑으로 펼쳐지는 짙푸른 바다를 바로 옆에서 눈이 시리게 볼 수 있어 걷는 내내 행복감이 충만해온다.
돔베낭길 끝 지점에 이르면 어묵과 캔커피, 막걸리를 파는 무인판매소인 '번지 없는 주막'과 화장실, 주차장이 있다. 대부분 관광객은 외돌개 주차장에서 이곳 주차장까지만 걷는다. 올레꾼은 파란 화살로 표시된 우측 올레길을 따라 걷는다.
서귀포여자고등학교 정문 앞길을 지나 '호근위생처리장' 간판 앞에서 좌측으로 꺾어 들어가면 속골천과 바다가 만나는 속골이다. 여름이면 마을 청년들이 백숙 등을 파는 음식점도 열린다.
수심 1.6m의 속골 돌다리를 건너면 야자나무 군락지인 수모루공원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또 새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피라칸다가 눈에 띈다. 꽃말은 '알알이 맺힌 사랑'인데 열매가 정말 탐스럽다. 소공원 바로 옆 쉼터에서는 바다를 바라보며 해물라면과 막걸리로 허기를 달랠 수 있다.



◇ 발걸음 더디게 하는 해안 풍광

쉼터에서 다시 이어지는 흙길을 따라가면 수봉로가 나온다. 이서형 올레지기의 설명에 따르면 수봉로는 7코스 개척기인 2007년 12월 올레지기 김수봉 씨가 염소 다니던 덤불숲을 직접 삽과 곡괭이를 들고 길을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부 탐방객들이 사유지에서 민폐를 끼쳤기 때문인지 지금은 폐쇄돼 스토리가 있는 길을 접할 수가 없다.
평소에는 솟지 않다가도 천둥과 벼락이 치면 비로소 물이 솟아났다는 공물(깍)을 지나 굽이굽이 돌면 법환포구로 이어진다. 한치로 유명한 법환마을은 예로부터 맑고 시원한 용천수가 곳곳에서 솟아나고 풍광이 아름다운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는 무인도인 범섬이 바로 앞에 있다.
법환마을은 제주에서도 잠녀(해녀)가 가장 많은 어촌으로, 해녀학교와 해녀체험장이 있다. 포구 한쪽에는 옛날에 목욕하던 남녀노천탕이 있는데 지금은 빨래터로 이용되고 있다.
법환포구를 지나 해안로를 따라 걷다 보면 바다로 길게 뻗은 '여'와 마주한다. 여는 바다 해저에서 솟아오른 바위를 나타내는 제주어. 최영 장군이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이곳에서 범섬까지 뗏목을 이었다고 하여 이것을 '배(船)+연(連)+줄+이'로 부르게 됐다.
이따금 비바람을 몰고 올 듯한 스산한 날씨가 반복되었지만, 심호흡을 크게 하니 바다 향기가 온몸으로 스며들고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바다와 한라산의 풍경을 함께 즐기다 보면 법환마을과 강정마을의 경계를 이루는 해안가에 있는 샘 두머니물에 닿는다. 이곳에서부터 서건도 앞바다까지는 '일강정 바당올레'로 불린다. 바위밭 사이로 몽돌들이 검은 양탄자처럼 깔려있다. 몽돌 위를 느릿느릿 걷다 보면 파도가 갯돌을 쓸면서 내는 '자그르르' 소리가 마치 '바다의 교향곡'처럼 들린다.
발걸음을 더디게 하는 '일강정 바당올레'는 한 굽이를 돌 때마다 보는 맛이 색다르고, 바다 풍경도 아름답다.
이서형 올레지기는 "2009년 2월 강정 돌챙이(석수장이라는 제주어) 5명과 자원봉사자 30명이 험난한 바윗길을 주변의 작은 돌들을 괴어 평탄하게 닦았다"며 "물 많고 토질 좋은 강정은 예로부터 쌀과 곡식이 제주에서 제일이라 하여 '일강정'이라 불러왔다"고 설명한다. 바위 위에 그려진 화살표를 따라 걷다 보니 길 닦은 자원봉사자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는 듯했다. 해안가를 걷다 보면 붉은빛의 가는갯는쟁이와 검푸른 현무암의 대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서건도 앞바다는 하루 두 번 간조 때마다 바닷물이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 1709년 제작한 '탐라고지도'에 '부도'로 표기돼 있는데, 지금의 서건도는 '썩은 섬'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섬의 토질이 '죽은 흙'이라고 하여 '썩은 섬'이라고 부르는데, 물때에 맞추어서 서건도의 산책로를 걸어볼 만하다.
서건도 앞바다 주변의 카라반 캠프장을 지나면 미나리밭인데 예전에는 논이었다. 제주는 화산섬이라 비가 와도 물이 금세 빠져버린다. 하지만 이곳은 물이 고이기 때문에 논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 올레 7코스 여정 끝나는 아왜낭목 쉼터

서건도를 배경으로 멋진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도록 해안가에 자전거 2대와 의자 3개를 소품으로 설치한 이레쉼터를 지나 악근교를 건너면 켄싱턴 리조트의 바닷가 우체국에 다다른다. 우체국에 비치된 엽서에 사연을 써넣으면 1년 후 받아볼 수 있다.
은어가 사는 맑은 물로 유명한 강정천을 따라 걸어 올라가 강정교를 건넌다. '아이들의 맨발을 기억하는 구렁비야 강정의 숨결을 품고 있는 구렁비야 구렁비 너는 꽃밭이었지 탐욕의 군홧발에 짓밟혀 깨어졌어도 강정은 너의 향기를 기억하리라'라는 글귀가 선명한 현수막이 나부낀다. 길을 걸으면서 수년간 군사기지 건설을 반대했던 강정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백합마을과 마늘밭을 거쳐 탁 트인 바다와 다시 마주한다. 외돌개부터 아들과 함께 걷고 있다는 김효진 씨는 "너무나 아름답고 환상적인 길이었다. 터벅터벅 걷다 보니 복잡한 생각들이 모래성처럼 사라졌다"며 연신 감탄사를 쏟아낸다.
함께 걸어도 좋지만, 혼자라도 행복한 길을 따라가면 천혜의 자그마한 포구인 월평포구다.
목재 덱 길을 따라 코지(곶)로 나가면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데,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황홀한 풍경이 연출된다. 이름처럼 아름다운 달밤의 풍광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훌훌 털고 종착점인 월평마을로 발길을 돌린다.
이 마을은 불이 붙으면 나무의 수분이 소화기처럼 거품을 만들어 불을 차단하는 방화수(防火樹)로 널리 알려진 아왜나무의 군락지다. 아왜낭목 쉼터에서 패스포트에 스탬프를 찍으면 올레 7코스 여정이 끝난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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