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 "조금은 괴테, 조금은 보나파르트(나폴레옹)" 같은 존재.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SZ)이 작년 8월 '독일 대통령'에 관해 설명하는 기사에서 이런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정치적 위상과 역할이 독특한 독일 대통령을 대문호 괴테와 사실상 유럽 황제를 자칭한 나폴레옹에 견준 것이다.
독일은 평시에는 실권 총리가 내ㆍ외치를 주도하는 내각책임제 국가다. 그래서 대통령은 말(言) 정치를 하는 '세리머니 킹'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의전 서열 넘버원의 국가원수로서 총리 제청에 의한 의회해산권 등 주어진 권한이 작지 않고 특히 정국 위기의 순간에는 해결사로 나서야 하는 책무가 막중한 것을 빗댄 셈이다.
바로 그 SZ가 1년 3개월여가 흐른 20일(현지시간) 독일 대통령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의 시간'이 왔다며 차기 연립정부 협상 결렬에 따른 초유의 헌정 위기를 풀어야 할 핵심 플레이어로서 그를 주목했다. 대통령이 진가를 발휘할 시기라는 의미에서다.
SZ는 다수 기독민주당ㆍ기독사회당 연합, 자유민주당, 녹색당 간 연정 협상이 자민당의 거부로 결렬된 지금, 일단 협상이 극적으로 재개되는 경우를 배제한 채 기본법(헌법) 63조에 의거한 총리선출에 이은 소수정부 구성 또는 의회해산, 그리고 재선거 수순에 관심을 뒀다.
그러곤, 4개 항의 문장으로 짜인 63조 중 1, 2항은 평시에 관한 규정이고 나머지 3, 4항은 위기를 다루는 규율이라고 정리했다.
기본법은 63조 1항에서 '총리는 대통령 제청으로 연방의회(이하 의회)에서 토론 없이 선출된다'라고 적고 있다. 이어 2항은 '의회 재적 의원 과반수의 표를 얻은 자가 뽑힌다. 선출된 사람은 대통령이 임명한다'라고 돼 있다.
이들 규정을 적용하면 슈타인마이어가 1당인 기민당 당수이자 현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을 총리 후보로 지명하여 표결에 부치고 토론 없이 뽑는 수순이 되는 것을 그려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9월 총선을 거쳐 개원한 19대 의회의 의석 분포를 보면 의회 재적 의원 과반수는 355명인데, 자민당이 결렬을 선언한 만큼 메르켈이 과반을 달성하는 건 난망하다.
63조는 그런 경우를 가정해 3, 4항에서 추후 절차를 안내한다.
3항은 '제청된 자가 선출되지 않았을 때는 의회는 14일 안에 의원 과반수로 총리를 선출할 수 있다'라고 해 놓았다.
4항은 '선출이 이 기한 내에 안 되면 지체 없이 새로운 투표가 실시되고 최다득표자가 뽑힌다. 선출된 이가 의회 재적 의원 과반수 표를 획득한 때에는 대통령은 선거 후 7일 안에 그를 임명해야 한다. (그러나) 선출된 이가 이 과반수를 얻지 못한 때엔 대통령은 7일 안에 그를 임명하거나 의회를 해산해야 한다'라고 규정했다.
역시나 이를 메르켈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그가 기민당ㆍ기사당 연합 의석 246표를 확보해 최다득표자로서 총리로 다시 뽑히는 것이지만 이는 의회 재적 의원 과반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에 대통령은 그를 신임 총리로 임명하거나 의회를 해산하는 두 가지 옵션을 갖게 된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메르켈 총리를 신임 총리에 임명하면 메르켈은 소수정부를 구성하여 4기 집권을 주도할 수도 있지만, 메르켈 자신이 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힌 데 다 안정적 정부 운영이 전혀 불가능하므로 자신의 신임을 투표로 묻고 불신임받은 뒤 대통령에게 의회해산을 제청, 총선을 다시 치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정치적 경로를 그릴 게 뻔하다면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현직 총리 메르켈의 제청 아래 곧바로 의회해산을 택하고 재선거로 직행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동, 서독 분단 체제가 굳어지는 과정에서 승전 3국에 의해 주권이 제한된 채 1949년 탄생한 서독이 1990년 통일을 거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의회가 연정 구성에 실패하고 대통령이 그 의회를 해산한 전례는 없다. 헌정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독일 대통령은 직선이 아니라 의회 의원 전원과 16개 주(州)에서 선발된 같은 수의 대표로 구성된 연방총회 투표로 선출된다. 슈타인마이어는 옛 서독을 포함한 전후 독일의 12번째 대통령으로 지난 2월 뽑혔다. 사민당 출신으론 18년 만이다. 그는 자민당의 협상 결렬 선언 직후, 모든 정파에 연정 구성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고 초정파적 대화에 착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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