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최근 미국과 중국, 인도 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國歌)논란은 민족주의자(내셔널리스트)와 국제주의자(인터내셔널리스트) 간의 글로벌 이념 논쟁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국가는 애국심의 상징이지만 통치자들이 이를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과도하게 이용하면서 내셔널리즘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국가에 대한 존경심을 놓고 일부 스포츠 스타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백인 우월주의에 항의해 일부 스타들이 국가연주 시 무릎을 꿇어 항의하면서 미식축구 개막식에 정부대표로 참석했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퇴장하기도 했다.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 칼럼을 통해 이를 '민족주의'와 '국제주의' 간의 이념 다툼으로 해석하면서 단순히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중국과 인도 등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국수주의자들이 애국심의 상징으로 국가를 강조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종종 국내적으로는 반(反)자유주의,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침략'과 결부되고 있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중국의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는 국가를 모독할 경우 최고 3년형에 처하는 법안이 통과됐으며 이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 우선주의를 반영하는 것이자 한편으로 중국 정부와 반자치 홍콩 간의 점증하는 긴장관계를 함께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고 있다.
최근 홍콩에서 열린 축구경기에서는 중국 국가가 관중들로부터 야유를 받기도 했다.
인도도 사정이 비슷하다. 대법원이 국내 모든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에 앞서 국가연주를 의무화하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지지자들은 다민족, 다언어, 다종교 국가인 인도에서 국가는 국민을 단합시키는 중요 요소라고 환영하고 나섰으나 진보주의자들은 이러한 조치가 자칫 비관용적인 민족주의의 대두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특히 종교적 소수와 정부 비판자들에 대해 점점 권위주의 형태를 띠고 있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 정부 하에서 이러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극장에서 국가 연주 시 일어서지 않는 관객들이 공격을 받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유럽 프랑스에서는 다른 상황이 연출됐다. 지난 5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취임 시 예상을 뒤엎고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가 아닌 유럽연합(EU) 국가인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가 연주됐다.
국민전선(FN) 등 EU 통합 반대주의자들에 대한 질책의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었다.
국가논쟁에서 트럼프와 마크롱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상반된 태도는 두 사람이 현재 내셔널리즘과 글로벌리즘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두 사람은 유엔총회를 비롯한 연설에서 상반된 세계관을 천명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강력한 주권국가론을 펼치면서 글로벌리즘을 공격했으며 마크롱 대통령은 국가가 (국경)내부를 지향할 경우 집단적 재앙이 초래될 것이라고 내셔널리즘을 비판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과 시 주석의 중국이 공통점을 가진 점이 지적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국가 주권을 강조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인 '보편적 질서'에 반발하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그리고 헝가리 지도자 빅토르 오르반, 인도의 모디 총리, 이집트의 압델 파타 엘시시, 영국의 EU 탈퇴론자 들이 내셔널리즘 동조자들로 분류되고 있다.
안정적인 국제질서를 위해서는 강력한 주권국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내셔널리즘이 이상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글로벌리즘을 압도하고 있는 시류이다.
그러나 문제는 배타적 속성의 내셔널리즘이 공유점도 많지만,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만큼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리고 가능성이 큰 경쟁국으로 미국과 중국이 지적되고 있다.
트럼프의 내셔널리즘은 쇠퇴하고 있는 미국을 대외 강경책을 통해 회복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반면 시 주석의 중국은 중국이 상승기에 있는 만큼 내셔널리즘을 통해 과거 역사의 굴욕을 상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FT는 미국과 중국의 비전이 충돌할 가능성이 큰 곳으로 한반도와 남중국해 및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거론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파리대 연설에서 점증하는 내셔널리즘이 평화를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미국과 중국 모두 이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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