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에게 묻다] 갑상선암이 착하다고?…난치성 환자엔 '남의 얘기'

입력 2017-12-06 07:00  

[명의에게 묻다] 갑상선암이 착하다고?…난치성 환자엔 '남의 얘기'
'거북이 암' 논란에 치료 미뤘다가 낭패보는 환자도 증가세
강남세브란스 '난치성 갑상선암연구소' 설립…"치료시기 놓치지 말아야"

(서울=연합뉴스) 장항석 강남세브란스병원 갑상선암센터장 = 얼마 전 60대 여성 갑상선암 환자가 진료실을 찾았다. 상태는 심각했다. 종양 크기가 5㎝를 넘었고, 목 양쪽으로 림프절 전이뿐 아니라 암이 식도와 기도, 폐를 침범한 상태였다.
왜 지금까지 병원을 찾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2년 전 건강검진에서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지만, 갑상선암은 암도 아니고 수술할 필요도 없다는 주변의 말에 그냥 지냈다고 했다. 결국, 이 환자는 기도, 식도 절제를 포함해 무려 8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 후 고용량의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했지만, 폐로 전이된 갑상선암은 이미 시기를 놓쳐 더는 이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불응성 난치성 갑상선암'으로 변해 있었다.
적어도 환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고, 적절한 지침을 내려 초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면 이런 불행한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현재 이 환자는 분자생물학적 표적치료와 항암치료를 동반한 복합치료 중이다.



일반적으로 갑상선암은 10년 생존율이 100%에 달할 정도로 높고, 진행속도가 느려 거북이 암으로 알려져 있다. 거기에 최근 몇 년간 갑상선암을 둘러싼 여러 논란 탓에 갑상선암은 치료받지 않아도 되는 암인 것처럼 자리 잡혔다.
하지만 모든 갑상선암이 다 예후가 좋은 것은 아니다.
미분화암, 수질암 등 일부 갑상선암은 치료도 어렵고 예후가 나빠 환자의 고통이 크다. 또 예후가 좋은 '분화 갑상선암'이라 할지라도 오래 방치된 암은 주변의 중요 장기를 침범하고 원격 전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초기에 치료할 때보다 환자가 겪어야 할 고통이 매우 크다. 병기(病期)가 높아짐에 따라 직·간접적인 의료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15년 주요수술 통계연보'를 보면 2014년도부터 불거진 과다진단 문제 이후 2013년 4만8천948건이었던 갑상선 수술은 2015년에 2만8천214건으로 2년 새 2만건 이상이 줄었다.
하지만 수술이나 환자 수 감소가 이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치료를 미뤄왔던 환자들이 병이 많이 진행돼 앞서 소개한 60대 환자처럼 불행한 상태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전문의들이 체감할 정도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 착한 갑상선암의 다른 얼굴 '난치성 갑상선암'
갑상선암은 크게 정상 갑상선세포의 성질을 가지는 '분화 갑상선암'과 전이가 흔하고, 암이 커지는 속도가 빠른 '미분화 갑상선암'으로 나뉜다. 역형성암과 같은 미분화암과 수질암은 전체 갑상선암의 1% 미만을 차지할 정도로 매우 드물다.
역형성암은 분화 갑상선암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분화도가 나빠져 발생하는 암으로, 진행속도가 매우 빠르고 예후가 불량해 치료하기 어렵다. 수술로 암이 있는 모든 부위를 깨끗이 없애도 1주일 만에 다시 자라남으로써 암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암에 속한다. 이런 미분화암은 치료에도 효과가 거의 없고,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생존 기간 중간값이 3∼6개월에 불과하다.
국내에서 1년에 100명 정도 발병해 희귀암으로 불리는 '갑상선 수질암'도 생존율이 낮다. 수질암은 진단 자체가 어렵고 진단됐을 때 이미 50% 정도의 환자에게서 림프절 전이가, 5~10%에서는 원격전이가 발견된다. 원격전이는 암세포가 처음 발생한 곳에서 혈관과 림프관을 타고 멀리 떨어진 다른 장기에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원격전이 시에는 5년 생존율과 10년 생존율이 각각 26%, 10%에 불과하다.
착한 갑상선암으로 불리는 분화 갑상선암도 병기가 진행되고 재발, 전이가 생기면 난치성 갑상선암이 된다.
2010년 미국암협회에서 발표한 병기에 따른 5년 생존율을 보면, 가장 흔한 형태인 갑상선 유두암의 경우 1, 2기는 생존율이 100%에 달하지만, 3기에서는 93%로 낮아지고 4기에서는 51%까지 떨어진다.
갑상선 여포암도 1, 2기는 생존율이 100%지만, 3기는 75%에 불과하며, 4기는 50%까지 떨어진다.
미국국립암연구소는 요약병기라는 분류를 개발해 암이 시작한 부위로부터 얼마나 퍼져 있는지 범주화해 국한, 국소, 원격, 모름으로 병기를 분류한다.
보건복지부 중앙암등록본부가 2016년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국내의 국한, 국소부위 갑상선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100%로 높았지만, 원격전이가 있는 환자의 경우 생존율이 71.6%로 크게 떨어졌다.
혹자들은 과연 몇 퍼센트의 환자가 그런 일을 당하는지 묻기도 한다.
물론 그리 많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국가나 사회 통계학적으로는 말이다. 또 보험회사나 의료와 관련된 업체들의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 있는 빈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학은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아무리 소수의 사람일지라도 잘 치료했으면 아무런 문제 없이 회복했을 사람들을 방치해 불행한 일을 당하게 한다거나 사망하게 만드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생명은 그만큼 소중한 것으로, 사회자본이나 경제학적 논리로 말할 수 없다.



◇ 갑상선암, 치료 적기 놓치지 않는 게 중요
우리나라 갑상선암의 5년 생존율은 거의 100%에 육박한다. 미국·캐나다의 98%, 일본의 93%보다 매우 높은 수준이다. 한국의 갑상선암 수술 및 치료 수준이 우수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갑상선암은 수술이 잘 끝났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갑상선 전절제 수술 후 갑상선암의 재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병행하는 방사성 요오드에 환자가 반응하지 않는 경우 치료가 어려워진다.
암이 진행되고 원격 전이가 발생하면 점차 갑상선 기능이 떨어져 방사성 요오드를 흡수하지 못하게 된다. 반복된 갑상선암 치료에 누적 방사성 용량이 투여 가능한 범위를 초과하는 경우에도 이 치료를 할 수 없다.
이렇게 방사성 요오드 요법이 안 듣는 경우를 난치성 갑상선암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생존 기간은 겨우 2.5년 정도에 불과하며 10년 생존율은 약 10%에 그친다. 이렇게 되면 이제 이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나 거북이 암이 아닌, 생명을 위협하는 지극히 위험한 암이 된다.
이런 환자들에게는 표적항암제만이 유일한 치료 방법이다. 표적항암제는 수술과 여러가지 다른 치료를 해도 안 될 경우 마지막 단계에서 쓰기 때문에, 환자들은 심리적으로 절망에 빠지기 쉽다. 이 때문에 환자들을 위해 처음부터 효과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항암치료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강남브란스병원 갑상선암 센터에는 다른 의료기관들에 비해 난치성 갑상선암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많다. 대부분 방치됐거나 적절한 치료를 못 받고 실패한 경우들인데, 이런 상태가 되면 최신의 치료법을 동원해도 성공률이 낮다. 의료진들도 최선의 치료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이에 강남세브란스병원 갑상선암센터는 진행성 난치성 갑상선암의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고, 초기 갑상선암이 난치성 갑상선암으로 악화하는 원인을 밝히고자 '난치성 갑상선암 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 설립을 위해 환우들 스스로 모금했고, 의료인들도 기부했다.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인들은 이와 별도로 '난치성 갑상선-내분비암 연구회'(ARTEC)도 구성했다.
난치성 갑상선암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순하고 착한 암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치료방법도 없는,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암이다. 난치성 갑상선암 연구소와 난치성 갑상선-내분비암 연구회는 이런 부분을 적극 알릴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환자들의 생명과 삶의 질 향상을 최우선 목표로 연구와 사회·정책적인 활동을 이어 나갈 예정이다.



◇ 장항석 교수는 1989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 미국 뉴욕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에서 두경부 종양학과 내분비 외과학을 주제로 연수했다. 이후 연세의대 외과학교실 교수를 거쳐 2010년부터는 강남세브란스 갑상선암센터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대한갑상선-내분비외과학회에서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7년 난치성 갑상선-내분비암 연구회를 발족해 갑상선암 환자들의 치료와 국내외 학술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bi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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