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산가옥 재발견] ① 70여년 세월 흘렀어도 곳곳에 남은 일제 흔적

입력 2017-12-10 07:35  

[적산가옥 재발견] ① 70여년 세월 흘렀어도 곳곳에 남은 일제 흔적
수탈 근거지 군산·목포·부산·인천 등 전국에 산재
지역개발에 하나둘 사라져…엄연한 근대사의 한 단면 체계적 관리 시급

[※ 편집자 주 = 1945년 해방 이후 일본인들이 물러가며 남겨둔 건물을 뜻하는 '적산(敵産)가옥'이 최근 들어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낡은 적산가옥이 전시장으로 활용되는가 하면,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로 개조돼 새 생명을 얻기도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 생기를 잃어가던 도시는 적산가옥을 활용한 문화의 숨결을 받아 재생의 희망으로 꿈틀거리기도 합니다. 적이 남긴 가옥으로 아픈 근대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개발과 보존 두 갈래 운명에 놓여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연합뉴스는 새롭게 주목받는 적산가옥의 현재 모습과 한국 근대사의 단면을 간직한 근대 건축물로서의 미래를 조명합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1945년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이 이 땅을 떠난 뒤 남기고 간 집과 건물은 미군정을 거쳐 우리 정부의 소유가 됐다.
적(敵)이 남기고 간 건물이라고 해서 이런 건물을 일컬어 '적산가옥'이라 불렀다.
문화재청은 1876년 개항 이후 건립되고 50년 이상 지난 근현대의 것을 등록문화재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개인이 소유한 건물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도시가 커지면서 대단위 아파트 단지 건립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건물도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최근에야 군산을 비롯한 목포, 인천, 부산지역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일본식 건축물을 보존해 도심재생사업에 활용하면서 관심을 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적이 남긴 '적산가옥'이라는 이름 대신 '일본식 가옥' 혹은 '일본식 건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전국에 남겨진 대표적인 '적산가옥'과 활용 실태 등을 살펴본다.


◇ 쌀 수탈 근거지에 남겨진 일제 흔적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한 이후 쌀 수탈 근거지로 삼았던 군산과 목포에는 여전히 당시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호남의 비옥한 땅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기지 역할을 했던 군산에는 유난히 일본강점기 건물이 많다.
군산 원도심인 월명동과 장미동 일대에는 조선은행과 일본 제18은행, 동국사, 군산세관 등 일본식 건물 170여 채가 당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포목상이었던 일본인 히로쓰 게이사부로가 지은 일본식 목조가옥이 그 대표적인 건물이다.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으며, 일본식 정원과 일본 전통 가옥양식이 잘 보존돼 영화 촬영지로 쓰이기도 한다.
군산시는 원도심 곳곳에 남겨진 근대문화유산을 바탕으로 근대역사 거리를 조성했다.
호남선 출발역이자 종착역이 있는 목포에도 근대 건축물이 많다.

일제가 1900년 지은 일본 영사관(사적 289호)과 대표적인 수탈기관이었던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이 가장 눈에 띈다.
이들 건물을 중심으로 목포에는 오래된 일본식 건물 200여 채가 흩어져있다.
일본과 가까운 부산은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식 가옥이 1만4천 채가 넘을 정도로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다.
199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목조 구조 적산가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 개발로 인해 현재는 많이 사라졌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 부산철도청장이 관사로 사용하던 동구 수정동 일본식 가옥 '정란각'이 대표적 적산가옥으로 꼽힌다
전형적인 일본 고급주택 양식으로 원형이 잘 보존돼 국내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근대 건축물로 불린다.
해방 이후 고급 요릿집으로 쓰이다 정원 부지가 부동산개발업체에 팔렸다.
부동산 개발로 훼손될 처지에 놓였으나 문화재청이 2010년 매입해 2012년 문화유산국민신탁에 관리를 맡겼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6억9천만원을 들여 건물과 시설 등을 복원하고 보수한 뒤 지난해 5월 '문화공감 수정'으로 개관했다.

◇ 개발로 사라지는 근대 흔적…"현황 조사 필요"

광주 동구 금남로 YMCA 앞에는 광주의 근현대사를 묵묵하게 지켜온 고풍스러운 2층짜리 목조 건물이 있었다.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전형적인 일본식 2층 목조 주택으로 한때 금남로의 명물로 불리기도 했다.
병원 건물로 쓰이다 빈집으로 방치되던 이 가옥은 2007년 11월 소유주가 건물을 철거했고, 현재는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일본강점기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문화재적 보존 가치가 있더라도 보존에는 어려움이 많다.
개인 건물일 경우 소유주 동의를 얻어야 등록문화재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과 부산 등 대도시 경우 대단위 아파트 공사 등 막개발로 인해 많은 일본식 건물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축물은 등록문화재 등으로 정부가 관리하고 있다.
그렇지만 개인이 소유한 적산가옥은 정확한 통계 자료나 현황도 없는 실정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일선 지자체에서 도심 재생 차원으로 적산가옥을 개발하는 경우 실태 조사를 하는 것으로 안다"며 "문화재적 가치 등을 평가해서 문화재로 등록하는데 재산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을 줘 건물을 유지하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흔히 말하는 적산가옥은 일제 잔재로 여겨 쉽게 철거해도 관심을 쏟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등록문화재가 아니더라도 국가 차원에서 오래된 건축물에 대한 현황 조사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minu21@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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